우산 없이 비올라 샘터어린이문고 72
허혜란 지음, 명랑 그림 / 샘터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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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쭉, 10년 정도 피아노를 쳤다. 엄마의 절친한 친구가 내 피아노 선생님인 덕에 나는 고급 교습을 1대 1로 받는 행운을 누렸다. 10년이 쌓인 결과로 나는 언제든 원하는 곡을 마음껏 칠 수 있을 실력이 생겼다.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슬럼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때 선생님은 내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줬다. 어찌나 어렵고 자세가 불편하던지, 음계를 외우도록 붙인 인덱스 스티커를 뗄 때 쯤 바이올린을 포기하고 다시 피아노에 매진했더랬다. 그런 이유로 내게 바이올린은 포기의 상징과도 같았다.

올해부터 아이와 함께 바이올린을 배운다. 가족 오케스트라의 일환으로 재미삼아 신청했는데 운 좋게 무료로 강습을 듣게 되었다. 어라. 그런데 바이올린이 좀처럼 힘들지 않다. 두 개의 현으로도 (아직 그까지만 배웠다) 이렇게 많은 곡을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춤추게 했다.

빗속에서 비로소 자유로이 자신의 소리를 내게 된 선욱이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어린 날의 나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던 그것. 선욱이가 할머니와 지내며 가랑비에 젖어들듯 시나브로 흡수한 진정한 자유와 즐거움, 몰입. 우산없이 비올라는 선욱이 자신과 편안하게 마주하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따스하게 녹아있다. 마음 속으로 내 아이에게도 그런 자유로움과 편안함으로 기억되는 바이올린이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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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굉장한 세계 - 경이로운 동물의 감각, 우리 주위의 숨겨진 세계를 드러내다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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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소위 벽돌책이라 불리는 책들은 두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책이 안에 담고 있는 내용들의 무게를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어크로스의 600p club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이 멋진 책을 완독하는 달콤함을 만끽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매일 적은 양의 페이지를 소화하고(매일! 이게 중요하다!) 각 장 별로 미션지의 답을 고민하는 과정은 내게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저자 에드 용은 우리에게 우리 주위의 다양한 동물들이 지닌 감각의 세계를 하나하나 친절하게 소개한다. 냄새와 맛, 빛, 색깔, 통증, 열, 촉감과 흐름, 표면 진동, 소리, 메아리, 전기장, 자기장, 그리고 감각 통합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우리가 감각이라고 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오감의 잣대는 잠시 내려놓는 편이 좋다. 다양성에 대한 열린 마음과 풍부한 상상력이면 충분하다.





다시 그 동물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그들이 경험하는 감각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힘들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이토록 굉장한 감각 세계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여러 감각을 가진 우리가 서로 ‘공존’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고 발전시킨다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들의 감각 세계를 심각하게 교란시키고 방해하는 빌런의 역할을 자처했다. 감각 오염의 주범은 인간이다.





p. 511. 우리는 ‘동물들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빨리 망각하고, 결과적으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영향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어요.





p. 524. 감각을 더 잘 이해하면 우리가 자연계를 어떻게 더럽히고 있는지 알 수 있고, 그것을 보존하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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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내가 됩니다 - 단단한 나로 자라나는 단어 탐구 생활 폴폴 시리즈 2
지혜 지음 / 책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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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생각하는 기적(奇跡)에 대해 종종 말한다. 기적의 사전적 의미는 “1.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2. 신(神)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그런데 나만의 단어 사전에 기록된 기적은 “사람이 변하는 일”이다. 개구리가 갑자기 사람이 되는 건 내게 기적이라기보다는 마술에 가깝다. 진짜 기적은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평생 이어온 나라는 사람이 변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단어는 고정불변의 뜻을 가진 단단한 벽이 아니라 말하는 저자는 파주에서 걷는 생각이라는 창작 스튜디오를 열었다. 단어에는 틈이 있고 삶은 고이지 않고 흐른다는 그녀. 이 책은 저자의 삶이 단어의 틈을 찾아서 통과하고 흔적을 남기고 모양을 바꾼 기록이라고 직접 밝히고 있다. 각자의 삶이 흐른 단어는 또 다른 모양이 될 거라며, 독자들에게 단어의 틈을 찾아 흐르고 남기고 만들고 모으길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단어, 기적처럼 나만의 의미를 담은 단어들이 몇 있다. 체계적으로 정리해본 적은 없지만 고정불변의 사전적 의미보다 나만의 의미가 담긴 단어가 온전히 내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저자가 책을 통해 보여주는 생각의 흐름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묻어있는 태도가 몹시 좋았다. 이 짧은 몇 문장들에 이미 그녀가 무작정 좋아져 다짜고짜 인스타부터 찾아 팔로우를 했다. 책을 이제 막 펼쳤을 때의 일이었다.





16가지 단어(취미, 후회, 노력, 자아, 존엄성, 특별, 공부, 불확실, 소녀, 동물, 장애, 감정이입, 혐오, 커버링, 상처, 환대)에 대한 그녀만의 생각을, 삶의 흔적을 하나하나 마음에 꾹꾹 눌러가며 읽었다. 나에게 각 단어들은 어떤 모양새로 자리잡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도 길었다. 한 권의 책으로 참으로 오랜 시간 다양한 갈래의 길로 사유할 수 있었던 모든 순간이 설레었다.





학교를 간 뒤 아이가 쓰는 단어의 폭이 꽤 넓어졌다. 이런 단어도 알아?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날이면, 때때로 그건 무슨 뜻이야? 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 때마다 아이는 자신만의 단어 사전으로 답을 내놓는데, 그게 퍽 합당하고(뜻이 제법 잘 통한다) 사전적 의미보다 더 섬세하고 정돈되어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면 자연스레 아이의 삶과 생각이 녹아있는 그 단어를 있는 그대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굳이 사전적 의미를 들추려 하지도 않는다. 아이는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자신만의 삶이 흐른 단어를 수집하고 있다.





내게 다정함이란 단어는 내 아이 그 자체와 맞닿아 있다. 책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나를 보고는 자기가 직접 책을 들어주며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도와주는 아이, 여러 꽃을 배경삼아 찍은 사진 중에 특별히 예쁘다고 느끼는 사진을 감각적으로 골라 권해주는 아이, 나의 사소한 다침의 순간에 ‘괜찮아?’ 물어오는 아이, 나의 실수와 잘못에도 ’일부러 한 거 아니잖아. 괜찮아‘ 너그러이 웃어주는 아이, 하루아침에 엄마가 바퀴벌레가 되어도 쓰다듬어주고 이뻐해줄 거라고 진심으로 상상하며 답하는 아이. 네가 다정함이 아니면 무엇일까.





부디, 모두가 마음을 열고 이 책과 함께하길 바란다. 읽고 쓰는 동안 나의 삶을 마주하고 나만의 단어들 틈새로 통하는 싱그러운 바람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 책과 함께라면 누구든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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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가 말하는 Z세대의 모든 것
박다영.고광열 지음 / 샘터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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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뒤로 새로 맺는 인연은 주로 부부동반 모임을 통해서였다. 남편과의 나이 차이 덕에 나는 거의 막내뻘이었다. 대학원생 시절부터 막내 역할을 자주 맡았던 터라 별 특이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아이를 낳고서는 아이를 중심으로 맺게되는 인연들이 많았다. 대다수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었고, 그 덕에 나는 평생 가져보지 못한 언니와 형부들이 생겼다.


다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면 종종 나 혼자 섞이지 못하는 추억 이야기나 문화 공유가 있었다. 혹은 새로운 무언가를 그들에게 내가 전달하는 입장일 때도 많았다. 나에게는 익숙한 것들이 그들에게는 생소하거나 신선한 것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유행어처럼 나오는 말은 “역시, mz잖아” “mz라서 그래” 였다.


그럴 때마다 그 mz가 미즈는 아니죠? 하는 농담으로 넘겼다. 사실 내가 mz세대에 속한다는 것도 몰랐다. 이상하게 묘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고야 깨달았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나는 밀레니엄 세대(m)이고, 내가 떠올리는 mz세대의 이미지는 z세대의 전형이었던 것.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는 mz가 아닌데? 하는 반감이 생겼던 거다. 구분상 나는 mz가 맞다. 다만 책에서 z세대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 많은 것이 다르다. (그리고 나에게 mz라고 하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m세대에 속한다.)


대학에 가면 일상 속 막내뻘이던 나는 강의실 안에서 교수님이라는 이름이 붙음과 동시에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된다. 내가 만나는 그 아이들이 바로 z세대들이다. SNS 상에서 z세대를 풍자하는 밈들을 볼 때마다 불편했다. 적어도 내가 만난 z세대는 그렇지 않았거니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강점들이 이상한 틀로 해석되고 있어 못내 안타깝기도 했다.


읽는 내내 공감과 감탄을 반복했다. 직업 특성상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많은 친구들과 접해 있다보니 그들의 곁에서 내가 많이 물들어 있었음을(어떤 대목에서 내게 mz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잘 알지 못했던 그들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있었음을(사실 닮고 싶은 점들이 많았다) 동시에 느끼는 재미가 쏠쏠했다.



갓생을 원하는 그들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에 매진한다. 기록을 중요시하고, 진짜 속내는 이웃이 거의 없는 블로그나 찐친만이 연결된 부계정에 남긴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해 검색할 줄 알고, 취업에 있어 저녁이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다. 깊고 찐득한 인연보다는 느슨한 관계 속에 지속되는 유대감을 선호한다. 그들에게 MBTI는 과학이고, 레트로가 주는 매력이 몹시 크다. 정당하고 적합한 대우 속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애사심도 생긴다(그들에게 정시퇴근은 그런 의미다. 이기심이 아니다).


다르다, 이해할 수 없다, 더 나아가서는 틀렸다, 이상하다고 판단하기 전에 우선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물론 그건 z세대도 마찬가지. 누군가 중년들이 말하는 중년들의 모든 것, 같은 책을 써 주 면 좋겠다. 서로가 책으로나마 깊은 속내를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대감을 쌓으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들을 이해해보는 시간을 먼저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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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안녕 샘터어린이문고 71
박주혜 지음, 김승혜 그림 / 샘터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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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제작 회사, (눈물을 잘 흘리지 않고 눈을 자주 깜빡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토끼가 눈썹에 쓰는 화장품 개발에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동물 실험실에서 일하던 ‘모두’씨가 99마리의 토끼의 죽음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 토끼와 함께 회사를 도망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토끼에게 ‘안녕’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 모두씨는, 도심을 벗어났던 그 순간의 경험과 인연들을 발판 삼아 위로와 희망, 응원이 가득한 빵을 만들어 파는 빵집을 연다.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듬뿍 담긴 그 빵들에는, ‘모두’씨와 토끼 ’안녕‘의 경험들이 녹아있다. 책의 마지막, 비로소 평온함 속에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만끽하는 모두씨의 얼굴에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미소가 번진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즈막히, 모두씨의 안녕을 빌었다.



🔖 p. 72-73. 이제는 생각해 보게 돼요. 내가 좋고 평안한 이 순간에 누군가의 불행이 끼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누군가가 또 다른 내 이웃은 아닐까. 고기 반찬을 좋아하는 나는, 힘든 날이면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고개를 떨궈요.
세상에는 다양한 존재가 있어요. 강한 존재도, 약한 존재도 있어요. 저는 누군가에게는 강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약한 존재이기도 해요. 약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존재들이 어딘 가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으며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여러 생각들을 가지런히 모았다. 나의 평안에 끼어있을 지도 모를 누군가의 불행을 털어내 보았다. 우리 어른에게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안녕’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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