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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내가 됩니다 - 단단한 나로 자라나는 단어 탐구 생활 ㅣ 폴폴 시리즈 2
지혜 지음 / 책폴 / 2023년 3월
평점 :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생각하는 기적(奇跡)에 대해 종종 말한다. 기적의 사전적 의미는 “1.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2. 신(神)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그런데 나만의 단어 사전에 기록된 기적은 “사람이 변하는 일”이다. 개구리가 갑자기 사람이 되는 건 내게 기적이라기보다는 마술에 가깝다. 진짜 기적은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평생 이어온 나라는 사람이 변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단어는 고정불변의 뜻을 가진 단단한 벽이 아니라 말하는 저자는 파주에서 걷는 생각이라는 창작 스튜디오를 열었다. 단어에는 틈이 있고 삶은 고이지 않고 흐른다는 그녀. 이 책은 저자의 삶이 단어의 틈을 찾아서 통과하고 흔적을 남기고 모양을 바꾼 기록이라고 직접 밝히고 있다. 각자의 삶이 흐른 단어는 또 다른 모양이 될 거라며, 독자들에게 단어의 틈을 찾아 흐르고 남기고 만들고 모으길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단어, 기적처럼 나만의 의미를 담은 단어들이 몇 있다. 체계적으로 정리해본 적은 없지만 고정불변의 사전적 의미보다 나만의 의미가 담긴 단어가 온전히 내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저자가 책을 통해 보여주는 생각의 흐름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묻어있는 태도가 몹시 좋았다. 이 짧은 몇 문장들에 이미 그녀가 무작정 좋아져 다짜고짜 인스타부터 찾아 팔로우를 했다. 책을 이제 막 펼쳤을 때의 일이었다.
16가지 단어(취미, 후회, 노력, 자아, 존엄성, 특별, 공부, 불확실, 소녀, 동물, 장애, 감정이입, 혐오, 커버링, 상처, 환대)에 대한 그녀만의 생각을, 삶의 흔적을 하나하나 마음에 꾹꾹 눌러가며 읽었다. 나에게 각 단어들은 어떤 모양새로 자리잡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도 길었다. 한 권의 책으로 참으로 오랜 시간 다양한 갈래의 길로 사유할 수 있었던 모든 순간이 설레었다.
학교를 간 뒤 아이가 쓰는 단어의 폭이 꽤 넓어졌다. 이런 단어도 알아?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날이면, 때때로 그건 무슨 뜻이야? 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 때마다 아이는 자신만의 단어 사전으로 답을 내놓는데, 그게 퍽 합당하고(뜻이 제법 잘 통한다) 사전적 의미보다 더 섬세하고 정돈되어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면 자연스레 아이의 삶과 생각이 녹아있는 그 단어를 있는 그대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굳이 사전적 의미를 들추려 하지도 않는다. 아이는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자신만의 삶이 흐른 단어를 수집하고 있다.
내게 다정함이란 단어는 내 아이 그 자체와 맞닿아 있다. 책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나를 보고는 자기가 직접 책을 들어주며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도와주는 아이, 여러 꽃을 배경삼아 찍은 사진 중에 특별히 예쁘다고 느끼는 사진을 감각적으로 골라 권해주는 아이, 나의 사소한 다침의 순간에 ‘괜찮아?’ 물어오는 아이, 나의 실수와 잘못에도 ’일부러 한 거 아니잖아. 괜찮아‘ 너그러이 웃어주는 아이, 하루아침에 엄마가 바퀴벌레가 되어도 쓰다듬어주고 이뻐해줄 거라고 진심으로 상상하며 답하는 아이. 네가 다정함이 아니면 무엇일까.
부디, 모두가 마음을 열고 이 책과 함께하길 바란다. 읽고 쓰는 동안 나의 삶을 마주하고 나만의 단어들 틈새로 통하는 싱그러운 바람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 책과 함께라면 누구든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