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 가다 / 김경윤 지음. 탐. 2014.
◆ 책 속 한 구절
내가 태어나 이렇게 넓은 곳을 본 적이 있던가?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저 너머 세상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우물 안 개구리라더니 내가 그 꼴이구나.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갑자기 해방된 느낌이었다. (p.32)
“오늘 장대에 올라보니 함부로 높은 지위에 오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오르지만, 오르면 겁이 나고 외롭고 위태롭게 됩니다. 이제 내려가고 싶어도 앞이 천 길 낭떠러지니 제 마음대로 안 되지요.” (p. 53)
만약 세상에 태어나 수많은 사람 중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 하나 없다면 그 얼마나 외롭고 불쌍한 인생이겠느냐.
사람들은 신분이 높고 처지가 좋은 사람에게는 아는 척을 많이 하지만, 그 사람이 신분이 낮아지고 처지가 곤란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외면하지. 동무인 줄 알았더니 진짜 동무는 아닌 것이야. 내가 어떠한 처지가 되든, 거지가 되어 몰골이 형편없어져도 나를 알아보고 반기는 동무가 하나쯤 있따면 세상은 살맛 나지 않겠느냐. (p. 73)
나라의 크기는 땅덩어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 크기에 달려 있느니. (p. 87)
“배움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책 속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민감하게 느끼고 다양하게 생각하다 보면 뭐든 배울 수가 있지. 피곤한데도 밤늦도록 시중을 드는 네가 기특해서 특급 공부법을 알려 준 것이니, 매사에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사물을 관찰해 보거라.” (p. 99)
“정답이 없다가 정답이다. 우리는 고작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 우리의 지식을 자랑하지만, 그 반대 사례를 만나고 나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단다. 그런 일이 어찌 동물들 간의 관계 뿐이겠느냐. 사람들 사이에서도, 앎과 앎 사이에서도 그런 충돌이 일어난단다. 그러면 창대야. 어찌하면 좋겠느냐?”
“모르겠네요.”
“맞혔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참된 앎이다.” (p. 107)
“그래, 오늘은 모른다는 것 하나만 배운 것으로 하자. 그렇지만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부란다. 공자님께서도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된 앎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 (p. 109)
“나는 너에게 말을 이야기했는데, 너는 사람을 떠올리니, 필시 너도 공부를 했더라면 크게 될 인물이었을 것이다. 비록 태생은 천하지만 조선으로 돌아가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거라. 신분에는 귀천이 있지만 공부에는 귀천이 없는 게다. 맹자께서 모든 사람들에게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키울 수 있는 좋은 마음과 좋은 능력이 있다 했는데, 내 너를 보니 맹자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왠지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p. 125)
한 방면에 미치면 반드시 높은 수준에 미칠 수 있는 법이다. 책 공부만 공부가 아니니라.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 제일 자신 있는 것을 더욱 깊고 넓게 파고드는 공부가 진짜 공부지. (p. 126)
나리의 지식은 그저 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관찰하여 쌓은 것이고, 그렇게 관찰한 사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쓰려는 나리는 진짜 학자의 모습이었다. (p. 126)
무릇 여행을 할 때에는 무작정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는 곳의 다양한 정보들을 알고 가야만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여행할 수 있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알게 되니, 너희도 이번에 청나라에서 본 것들들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올 일이 생기면 잘 써먹도록 하거라. (pp. 151-152)
나리와 함께 한 시간이 정말 좋았다고,
나리로 인해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었다고,
나리 덕분에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었다고,
너무나 감사하다고. (p.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