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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안에서
아드리앵 파를랑주 지음, 신유진 옮김 / 보림 / 2025년 5월
평점 :
아드리앵 파를랑주님의 작품은 정말 하나하나 뜯어볼수록 놀라운 작품이 많은 것 같아요.
가름끈 하나로 매 페이지 새로운 <리본>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고,
구멍이 뽕뽕 뚫렸는데 인생이 진행되는 <봄은 또 오고>는 친정엄마도 놀라신 책이었죠~
이번엔 <그늘 안에서>입니다.
책을 받아보니, 와하! 이번에도 예술이네요!!
일단 판형이 가로로 길고, 펼침 제본입니다.
내용이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고, 가로로 긴 책이다보니 양쪽 페이지가 한눈에 안들어와요. 그래서 한장 한장 넘기다보면, 나의 시선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훝게되니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책 페이지를 보는 것 자체가 시간이 필요한 일인거죠.
펼침제본 가운데는 바위가 있어요. 그리고 태양은 보이지않는데 바위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방향이 바뀌며 시간의 흐름과 그 안의 공간과 더위의 메마름이 느껴져요. 더구나 페이지마다 색이 바뀌며 그때마다의 느낌이 다릅니다. 색상은 대놓고 강렬하지않는데, 느낌은 강렬해요~~ 작가가 어떻게 이런 책을 구상했을까, 그 상상과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일까 무척 궁금합니다.
시작은 황야처럼 넓직한 땅에 가운데 덩그러니 바위 하나,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터벅터벅 걸어옵니다.
바위의 그림자와 아이의 그림자가 비슷한 크기입니다. 바위 그늘에 온전히 자기를 내려놓고 누워서 쉽니다.
조금 있으니 해가 강해지며, 그 바위의 그림자안으로 그 안에 뱀이 찾아오지요요.
헉! 귀여운 강아지나 토끼도 아닌, 뱀이라니.
보통 뱀을 보면 꺅하고 소리지르며 피하고 도망갈텐데,
여자아이와 뱀은 바위의 그늘에 조용히 같이 있습니다.
서로 마주보고 있어서 긴장감이 흐르는데, 공격하겠다라기보단 마치 각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느낌입니다.
여자아이와 뱀이 있는 공간에 여우가 도착합니다.
여우의 혀는 축 늘어졌고 털은 타들어갑니다.
그림속 여우의 음영과 한줄의 글에서 여우가 얼마나 지쳤는지 고스란히 느껴지지요.
더 짧아진 바위그늘에 소녀와 뱀, 여우가 함께 합니다.
소녀는 처음에 혼자 있을 때는 누워있다가
뱀이 오니 앉으면서 뱀에게 공간을 내주고,
여우가 오니 더 몸을 움츠려 여우에게 공간을 내줍니다.
뱀 역시 자기가 있던 자리에서 자리를 옮겨 여우가 있게 하지요.
서로 자리를 갖고 싸우거나 내쫓지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고, 강렬한 태양을 피해 다들 한숨 돌리지요.
동물들은 배고픈 상태가 아니면 굳이 사냥하며 공격하지 않는다하니
생태계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들은 보이지않는 선을 지키고 있고, 배려하고 있지요.
오후가 되자 토끼가 오고, 또 다른 동물이 오고... 계속 누군가 옵니다.
점점 바위그늘에 함께 하는 이들은 많아지고 자리를 좁아지지요.
바위 그늘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들은 어떻게 함께 이 자리에 있을까요?
책장을 넘기며 어떻게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고 함께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꼭 앉아있을 것만은 아니며, 꼭 하나가 한자리만 있어야하는 것도 아니며,
함께 같이 있으면 되더라고요.
함께 같이 있게 허용한다면 서로 다 같이 있을 수 있고,
우리가 흔히 '더이상은 안돼, 못해'라고 하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어쩜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쩜 안되는게 아니라 되게 하는 것을 생각하지않으려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책의 그들은 타들어가는 더위 속 그들은 그저 다 살려고 하는거고,
나 살자고 남을 몰아내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지금 내어줄 수 있는 만큼 내어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나누고 있더라구요.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소감은....
왠지 모르게 찔려서 약간 반성의 느낌이 듭니다^^;;;;
정말 함께 하기에, 안되는 것인가, 그게 다인가에 대해 물음표를 찍게 됩니다.
누워있다 자리에 앉고, 내 위에 다른 동물을 얹어 조금 곁을 내주면 될수도 있는 것을...
나와 다르고,
어쩌면 적대적인 관계라도,
서로에게 자비의 시선으로 함께 해야할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좀 더 크게 보고, 유연해져야할 것 같아요.
정말 공존과 상생을 원한다면,
당연히 본질과 있는 그대로 봐야할거고,
좀 더 보탠다면 연민과 자비의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묘하게 요즘 정치 상황도 생각이 나고요...
그들도 이걸 보고 좀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 자리에 왜 있는지 초심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서로 다른 편에 서 있어도, 국민을 대표해 나라를 먼저 생각했으면...
정치도, 언론도,
국민을 도구화 시키지말고, 국민에 대한 연민과 자비를 먼저 생각했으면....
그림책의 물성을 잘 활용하는 작가이기에 늘 기대가 되고,
이번 작품 역시 단순한 그림과 글 안에서도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져주네요.
이책을 혼자 보고 자신이 느끼는 점도 많은데,
여럿이 보고, 많은 이들과 나누면 훨씬 더 깊게 나누기 좋을 것 같아요~^^
** 제이포럼 서평단으로 당첨되어 출판사에서 책만 제공받았고,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으로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