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가 가진 것 중엔 출신 빼고는 제가 높이 살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늘 자기가 불행하다 여기지 마십시오. 여름에 덥지 않은 데다가, 겨울에 춥지 않으며, 잘 먹고, 잘 자고, 노복들이 무리를 이루는데 도대체 불행할 게 뭐란 말입니까? 하늘이 전하께 무심하다고 여기실 때 왜 다른 사람들은 보지 않으신 겝니까? 전하께선 어려서부터 호의호식하셨지만, 다른 이들은 어려서부터 종노릇을 하며 살았단 말입니다." 이 말에 흥경은 몹시 화를 냈다. "네놈이 본태자를 천민과 비교한단 말이냐?" 선보는 새카만 두 눈으로 그를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전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상처를 입으셨더라도 황제 폐하께서 전하를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그러셨지요. 폐하께선 어질고 의로우신 임금이시며 백성을 사랑하시길 아들과 같이 하신다고요. 허니, 전하께서 거리낌 없이 천민이라 하시는 걸 들으시면 기뻐하지 않으실 거예요." "네놈은 본태자를 업신여기면서 글동무를 하겠다고 궁에 들어왔단 말이냐?" "궁 안 선생이 잘 가르치니까요. 우리 형은 제가 궁에 들어간다는 이야길 듣고 몹시 부러워하던걸요."
"폐하께 가서 아뢰세요. 폐하께서 믿으시는지 보시지요……. 제대로 말하자면 저는 태자 전하를 업신여긴다고 한 것이 아니라, 전하께서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만한 구석이 없다고 했어요. 전하께서 상처를 입은 것은 다른 사람이 해쳐서도 아닌데, 전하께선 다른 사람 탓을 하고 계시잖아요. 폐하께선 늘 전하를 위해 걱정하시는데, 전하께선 반대로 폐하를 걱정하신 적이 없으시지요. 폐하께선 고르고 골라 저를 전하의 글동무로 삼으셨지만, 전하의 눈빛에서 저는 바로 알아챘어요. 전하께선 다른 사람의 마음 씀씀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신단 걸 말이죠. 전하께선 저를 다섯 살 먹은 바보로 여겨 속이기 쉬울 거라 여기신 데다가, 저를 구워삶으려 하셨잖아요. 우리 아버지가 어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전하께서 제 앞에서 불쌍한 척을 하셔서 제게 동정을 구하시면, 제가 그걸 믿고서 돌아가 아버지께 알려드릴 수 있을 것이며, 제 아버지께서 이를 알고 돌아가 폐하께 아뢸 수도 있으니까요. 전하께선 이렇게 다른 사람의 성의를 망가뜨리기만 하셨으니, 무슨 근거로 남들이 존중해야 한단 말입니까? 태자 전하, 다 물으셨사옵니까? 다 물으셨으면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사옵니다."
"내 듣기론 너희 아버지 어머니는 서로 몹시도 은애하신다 들었다. 네 아버진 첩실조차 없다지. 어쩐지 네가 이리 천진난만하다 했어. 궁 안에선 술수를 부리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전하께선 아마 모르시겠지만,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저희 아버지께 얘기했었습니다. 그분처럼 일하면 좋은 결말을 얻지 못한다고요. 그런데 이런 얘길 했던 사람들의 시체는 다 차게 식었지만, 제 아버지께선 여전히 잘 살아계십니다. 전하께선 자기를 높이 보시고, 폐하를 낮잡아 보시네요. 폐하께선 전하를 보호하고자 하시니, 반드시 보호하실 겁니다. 우리 아버지가 바로 폐하께서 돌보시는 사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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