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벌거숭이 망아지 마냥 봄 봄 봄을 즐기며 꽃타령만 하다가 집어든 글.
겉 모습에서 살포시 보여주던 커팅된 여인을 기본으로 삼은 표지를 제끼면, 겹겹이 쌓인 유채화처럼 꽃 가득한 예쁜 표지. [숨은 봄]을 다 읽은 후에는 많은 말을 감춰놓은 듯한 표지에 오호~
설움에 울부짖으며 분노를 삼키고, 빼앗기고 강제당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와중에도 절망속에 사랑이 있고, 욕망이 있으며 희망이 있었다.
'해방둥이' 은봄이가 보내는 계절은 우리의 지난 시간이였기에 좋은 놈, 이상한 놈, 나쁜 놈.... 을 흑과 백으로 나눌수 없었고, 한쪽 팔은 좌로 또 한쪽은 우로 뻗쳐 있었던 과거를 공유했기에 그 누구도 욕하면서 읽을 수 없었던 글이기도 하다. 혼란했던 시절이였다.
선조들의 유산은 물론이거니와 삶의 터전까지 뺏았기고 힘든 삶을 이어가며 부초처럼 떠도는 은봄이 아팠고, 부끄러운 배경에 어찌하지 못하고 싫어 했으면서도 내 보기엔 결국 그 속에서 누리며 살며 '반항'이라는 몸짓을 거듭하던 진언이 안타까웠다. 어린 아이처럼 '괴도 뤼팡'에 의지하며... 그래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그럼 된 거다.
묵직하게 짚어가는 지난 시절에 차마 로맨스의 달달함을 기대조차 하지않고 읽은 겨울 뒤에 숨어있는 봄 이야기.
최근 가볍게 잊혀지는 소모성 짙은 로맨스 글을 많이 봤는데, 드디어 대어를 낚았다. 쓰잘데기없이 강제된 피폐글도 아니고, 1945년 에서 201X 년 까지 긴 여정을 따라가는 가슴이 꽉 채워지는 이런 여운이 남는 로맨스가 좋다면 적극 추천.
예나 지금이나....
도둑놈들은 말을 참 잘하고, 이유도 참 그럴싸하다.
"남의 나라처럼 말씀하십니다?"
"글쎄, 이 나라를 내 나라라고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대답하면 너무 솔직한 건가? 내 아내도 충고 하긴 하드만. 내가 지나치게 솔직하다고. 뭐, 그건 그렇고 이 나라가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해도 나는 눈 하나 깜짝하고 싶지 않네. 일본의 지배도 허락한 나라가 미국인들 대순가? 내가 믿는 건 돈이네. 미국에서 절실하게 보고 듣고 느낀 건 이념도 사상도 아닌 순수한 돈의 힘이지"
"허락이라고 했습니까?"
"아닌가?"
도환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김구나 박헌영이나 이승만이나 결국은 권력을 탐하는 인간일 뿐이지. 민족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이념 따위가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무슨 소용 있을까. 실상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자네 글에서 어떤 허무주의를 느꼈어. 솔직히 자네 같은 로맨티시스트가 사창가 시궁창 같은 세상을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야."
- 본문 p42.
돈을 쫓는 어느 도둑놈의 말 중에서...........
그리고,
은봄이.
"저..... 신부님. 신부님은 제 머리 위에 있는 뿔이 안 보이세요?"
"뿔?"
"제 머리 위에 뿔이 있대요. 빨갱이들은 그렇대요. 어른들은 볼 수 있대요."
- 중 략 -
"신부님, 아빠가 빨갱이면 저도 빨갱이인가요?"
- 본문 p95 은봄과 토마스 신부의 대화 중에서....
몰입되어 읽으면서, 강원도 산골시절에 울컥했던 부분.
근데, 세상의 불합리함은 지금도 마찬가지.
세상을 많이 보고, 잘 배웠다 자부하면서도 자신들과 의견이 다르거나, 행동이 다르면 여전히 '마녀사냥' 하고있다. 어쩌면, 세상 모두의 머리에는 뿔이 달린 도깨비를 여분으로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생은 씁쓸하고 재밌다는 서경이 생각난다. 여하튼, [숨은 봄]은 아마도 여러번 다시 꺼내어 볼 듯 하다.
심윤서[숨은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