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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비의 남자 ㅣ 펄프픽션 2
이경자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글쎄.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 참 어렵다. 아니 당황스럽다고 하는 게 맞을까? 2006년 출간되어 그 해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던 박현욱 작가의 <아내가 결혼했다.> 이후 최고의 문제작을 만났다. 아니 그보다 훨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은... 이경자 작가의 <귀비의 남자>
제목만 놓고 보았을 땐 애뜻한 남녀간의 로맨스이거나 여름 시즌을 겨낭한 추리 혹은 스릴러인줄로만 알았다. 개인적으로는 추리물이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또 내용적으로도 얼굴을 화끈 달아오르게 하는 당황스럽게 만드는 책이었다.
여기 귀비라는 한 여자가 있다. 귀비의 남자인 남편은 의사로, 당시 의사와 간호사 관계로 만난 그녀는 아마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영유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수술중 의료사고로 일으켜 환자가 죽는 바람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이제 그녀는 시어머니와 아들, 딸들을 부양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생업의 전선으로 뛰어들게 되어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여러 사내들과 만났다면 혹은 남편이 회복 불가능 환자가 되어 외로워서 한 때 그랬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귀비는 "난 남자가... 그냥 정말 좋아. 새로운 남자를 만나 깊이 빠지면... 그 남자와 내가 서로 분간이 안 되는 순간들이 생기거든. ... 이상해. 좋아." "낯선 남자의 기운, 살 냄새, 그리고 몸이 다른 몸을 그리워하는 취기였다. 흥미롭고 흥미로웠다."
그녀는 여러 사내와 정을 통한다. 어린 시절 강간경험에서부터 최근의 남자 구도섭에 이르기까지. 슬픔을 간직한 그들. 작가는 귀비의 몸과 맞닿음으로써 (전직 간호사였던 신분이 발휘되는 것인가?) 마음적으로 고통 내지 슬픔을 서로 치유받고 해주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 정호응 홍익대 국교과 교수의 '보살의 사랑'이라는 제목인 해설, 이경자론에서 이를 "타인의 슬픔을 껴안아 슬픔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녹이는 그녀의 사랑은 보살의 사랑이다."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과연 정호응 교수의 해설처럼 이러한 행위를 보살의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사회의 윤리성과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에 반하는 것을 어찌 치유라 보살의 사랑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귀비에게 돌을 던질 순 없다. 그리고 돌을 던져서도 안 되는 것이다. 각자의 삶은 다양하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임은 틀림없으며 성적 자유를 선택할 권리 또한 세상의 시선에서가 아닌 각자 개인의 몫이다. 한편 이경자 작가의 전작들을 볼 때 그동안 불합리한 결혼제도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의 폭력을 비롯한 억눌려져 왔던 여성들의 항변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허나 이를 두 팔 벌려 포옹하고 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치유라는, 사랑이라는, 여성의 성적 자유의 이름하에 과연 용인할 수 있을까? 불편한 감이 들지만서도 계속 읽고 있노라면 김승옥 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 이 떠오른다. 나, 안의 무관심보다야 귀비의 타인의 슬픔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 훨씬 더 값지고 훌륭하다 할 수 있겠지만 불륜을 미화하고 조장하는 것에는 참기가 힘들다. 퇴폐적인, 즉 우리 시대 위기의 발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손안에 꼭 들어가는 아담 사이즈이고 흡입력 있는 문체로 출근 시간 지하철에서 다 읽었지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묘사로 인해 읽는 내내 민망해 했다는 (거기 아저씨, 어이 아가씨 훔쳐 보지 마셈. 땀 삐질삐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