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카고메 카고메
바구니 속에 든 새는
언제, 언제 나오나.
날 밝은 밤에
학이랑 거북이 미끄러졌다.
바로 뒤에 있는 건
.
.
.
누구?
놀이요로 시작하는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카고메 카고메'는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린 아이들이 '카고메 카고메'를 부르며 빙빙 돌다가 '바로 뒤에 있는 건 누구?'에서 멈추면, 원 가운데에 선 술래가 자기 뒤에 누가 있는지 맞추는 아이들의 놀이이다. 여기서 '카고메 카고메'는 놀이 형태 그대로 술래의 주위를 '둘러싸라, 둘러싸.'라는 뜻이 될 수 있다. (역자 후기 참조) 우리 나라의 숨박꼭질과 비슷한 놀이인 카고메 카고메. 요코미조 세이시의 <악마의 공놀이 노래>에도 놀이요를 배경으로 한 살인사건이 벌어져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가 되나 싶었으나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단순하게 그렇지 않았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는 놀이요의 유래에 얽힌 이야기로 전개되어 조금은 지루한 면도 없진 않지만 (물론 장편과 단편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으나)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놀이요에 대해 알고 가야 하는 지루함 없이 긴박하게 돌아간다. 하나의 사체를 둘러싸고 어린 남매가 나흘간 겪는 이야기이다. 친구 사이인 야요이와 사쓰키. 그리고 야요이의 오빠 켄. 이후 벌어지는 사건은 과히 충격적이다. 그 누구라도 너무나 쇼킹해 눈을 막고 싶은 지경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아이들이 소리 흔적없이 사라지는 마을. 연일 행방불명 사건으로 동네가 떠들석하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아이들이 유괴되어 행방불명이겠거니 그래서 주인공 혹은 등장 인물들이 유괴되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아니다. 더욱 끔찍한 진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사체 유기와 시체 은닉... ㄷㄷㄷ 활자를 따라가면서 마치 내가 숨박꼭질하는 것처럼 들킬까 두려워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
살해당한 소녀, 사쓰키... 죽은 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다만 쫓아갈 뿐이다. 아무 이유없이 살해당한 사쓰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이 죄란 말인가? 과연 사쓰키의 사체가 경찰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발견되어서 범인을 잡아서 그 한이 풀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밝혀진 진실은 정말이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 순간을 접하고 헉! 외마디 비명밖엔 지르지 못하겠다. 뇌를 자극하는, 너무나 충격적이라 도저히 믿어지지 않기에 더욱 느끼려고 하는, 그리고 그 느낌을 위해 오감을 집중했을 때 느껴지던, 등골마저 서늘하게 만든 밝혀진 진실은 마주 대하기 힘들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반전. 하지만 반전의 비밀은 이미 주어 줘 있었다. 다만 그가 탄탄한 구성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나의 뇌와 신경을 마취시켰을 뿐.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오츠 이치가 17세 때 데뷔한 작품이란다. 정녕 이것이 17살 소년이 쓴 소설이 맞는가?
아무리, <ZOO>등 오츠 이치의 작품들을 읽어 오츠 이치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더라도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감당하기 힘들다. 이 단편을 읽었다면 같은 책에 실린, 다음 작인 유코에게 빠져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무더운 여름, 당신의 오감을 만족시킬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