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 - 불안과 고통에 대처하는 철학의 지혜
존 셀라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복복서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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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윤리시간 처음으로 에피쿠로스를 접했었지요. 선생님께서는 너무 단순히 도식화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출제 빈도는 높지 않는다면서. 물론 기억의 왜곡은 있겠지만, 에피쿠로스 학파는 궁극적으로 아타락시아를 추구하는데, 쾌락주의와 연결시켜 쾌락은 타락할 수 밖에 없으며, 그와는 반대로 스토아학파는 아파테이아를, 금욕주의는 아프다로 배웠던 것 같아요. 물론 덕분에 지금까지 암기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 크나큰 오해를 했던 것 같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하면 육체적 쾌락 내지 퇴폐적인 방종 쯤을 주장하는 것을 연상했었는데, 에피쿠로스가 이야기하는 아타락시아란 정신적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상태, 즉 근심없음, 평정을 말합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해탈과 열반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누가 쾌락주의란 용어를 붙여 썼는지.

"인간의 고통에 치료법을 제시하지 않는 철학자의 말은 공허할 뿐이다." 에피쿠로스가 남긴 말입니다. 참으로 멋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고통과 불안을 외면하는 철학이나 종교는 쓸모 없을 뿐이죠. 그것은 괘변 또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에피쿠로스가 제시한 치료법은 무엇일까요?

에피쿠로스가 제시한 처방은 바로 즐거움입니다.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료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에피쿠로스가 분류한 네 가지 쾌락의 유형은 먹는 행위와 같은 동적인 육체적 쾌락, 배고프지 않은 상태와 같은 정적인 육체적 쾌락, 친구들과의 즐거운 대화와 같은 동적인 정신적 쾌락,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상태와 같은 정적인 쾌락이 있으며, 이 네 가지는 모두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유형, 즉 불안도 걱정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정적인 정신적 쾌락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필로데모스가 에피쿠로스 철학의 정수를 요약 정리한 [테트라파르마코스] 즉 '네 가지 처방'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신을 두려워마라.

죽음을 염려하지 마라.

좋은 것은 구하기 어렵지 않으며,

끔찍한 일은 견디기 어렵지 않다.

내일을 통제할 수 없는데도 우리는 내일을 위해 오늘의 기쁨을 미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런 유예 속에 낭비되는 것이지요.마음을 괴롭히는 일에 벗어나 지금 당장 이 삶을 즐기길 바랍니다.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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