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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형제의 숲
알렉스 슐만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12월
평점 :

세 형제의 숲은 알렉스 슐만의 첫 소설책으로 세 형제의 특별하고도 먹먹한 24시간을 담고 있는 이야기다.
24시간이라는 시간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일상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한 올, 한 올 정교하게 짜인 이야기들에 몰입도가 높다.
세 형제의 과거 일상은 개구지기도 하고 흔한 일상일 수도 있지만 지루할 틈이 없이 묘사와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간이 거꾸로 가는 점은, 앞선 이야기들 위에 이야기들이 또 쌓아지며 더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 궁금증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모든 것을 매듭짓는 사건은 뒤통수가 얼얼하다 못해 와르르 무너졌다.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말이다.
오늘은 나의 마음을 비롯해 각국의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은 세 형제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세 형제의 숲, 함께 걸어보자.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유언으로 다시 만나게 된 세 형제의 첫 모습은, 첫째 닐스와 셋째 피에르가 주먹다짐하는 것을 둘째 베냐민의 신고로 등장한 경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뒤로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서로를 향한 오해와 앙금을 풀어나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독자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 이후의 모습을 통해 이 가족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측하고 퍼즐을 맞추듯 그려낼 수 있다.
과거의 특정 사건으로 인해 가족은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고, 균열이 가고 무겁게 침식한다. 이전과는 달라진 집의 분위기와 풍경, 서로를 향해 닫아버린 마음의 문까지.
나중에 베냐민의 심리치료를 통해 그 사건의 진실이 정확히 무엇인지 드러난다. (이것은 스포하고 싶지 않아 기록하지 않겠다. 단언컨데 그 진실을 알고 나면 책을 한번 더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유언에 따라 돌아가게 된, 어린 시절 머물렀던 그 숲에서 세 형제는 다시 시작한다.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세 형제가 지내던 그 숲의 모습을 섬세한 문장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 형제의 과거와 현재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소설 속 펼쳐지는 배경을 세세한 문장의 표현들로 더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정교하고 촘촘한 문장이 그려내는 풍경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숲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손끝을 스치는 바람과 귓등을 스치는 소리, 우거진 나무들 숲 사이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까지. 서늘한 그 감촉이 글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 같다.
마치 사진을 보듯.

세 형제는 이날 고개를 들어 별을 보라는 아빠의 말에 따라 깊은 숲속 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에 빠진다.
은하수는 우주가 팽창하는 소리를 냈고 세 사람에 세상에 중심이 서 있는 것 같다는 기분에 빠져 있을 때, 아빠는 차에 치인 무스를 치우고 있었다.
같은 날 같은 풍경에서, 서로 다른 상황 속에 다른 기억을 갖게 된 것이다. 세 형제의 숲에서는 이처럼 가족이 서로 다른 아픔과 기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산다.
그리고 그 아픔들이 드러나고 충돌하며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 또한 함께 치유받는다.
사실 위에서 소개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아닌 진심으로 충격으로 남은 장면이 있지만, 그것은 스포를 하는 행위가 될 것 같아 빼기로 했다.

담담하고 편안하게 툭 내 던지는 그 문장에서 한동안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 문장 하나로 앞서 가족들이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했고, 서로를 오해했고, 마음 아파했는지 알 것 같았다. (식스센스급 반전이다)
우리는 말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절대로 알지 못한다. 알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추측일 뿐 사실이 아니다.
나 또한 하나뿐인 남동생이 있는데 그와의 관계가 어릴 때만큼 썩 좋지가 않다. (그렇다고 어릴 때 엄청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다.)
어쩌면 그 관계에도 뭔가 불편한 오해와 이끼가 끼어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을 잠시 했다. 어린 시절에 멈춰있는 그 시간들을 되돌려 봐야겠다. 그리고 오늘은 전화 한 통을 해 봐야겠다.
당신에게도 어린 시절 멈춰있는 시간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움직여 보길 바라본다. 세 형제의 숲, 그 걸음의 시간이 즐거웠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