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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난 창
박지향 지음 / 좋은땅 / 2023년 7월
평점 :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해가 지는 서쪽,
그곳으로 난 창으로
바라보는 밖의 모습은 어떨까.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움일까,
푸르게 젖어가는 쓸쓸함일까,
어둠을 수놓는 별빛의 반짝거림일까.
서쪽으로 난 창은
사업 실패 후 캐나다 리타이어먼트,
즉 양로원에 입사한
저자가 만났던 노인들의 이야기다.
노인들의 삶은 아름답기도 했고,
쓸쓸하기도 했고,
반짝거리기도 했으며,
나의 두 눈을 왕창 적셔놓기도 했다.

잘 살기 위해 매 순간 죽음을 기억할 순 없지만 누군가의 영정 사진 속에 내 사진을 넣으면서 삶의 순도는 높아지고 무게는 가벼워졌습니다.
하지만 죽음과 가장 맞닿아
있던 곳에서 만나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눈물은 많이 쏟았을지언정,
결코 그들의 이야기가
비극이지 않았다.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이야기들,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
나이가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삶의 진리와,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까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야기를
오늘 하려고 한다.
서쪽으로 난 창,
그곳을 함께 들여다보자.

죽음
죽음이란 건
태어날 때부터
우리와 맞닿아 있는 존재지만,
대부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늙어서 죽음을 마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이 먼발치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남은 시간이 많은 줄 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서쪽으로 난 창을 읽으며
그 죽음이라는 게
내 등을 마주 대는 듯한
서늘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시간이
얼마큼 남았는지 모른단다'라는
까끌까끌한 목소리가 맴도는 것 같다.
그리고 잠시 멈춰 생각을 한다.
만약 나의 시간이 당장 오늘로 끝이라면,
나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자 그 서늘함은
마음에 감사함과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향기
나이가 들면 육신은 점점 약해진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었던
나의 능력들이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나 허탈하고
괴로울 수 있을 텐데,
냄새로 바라보는 세상이
여전히 아름답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런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움을 향기로 위로하고,
늙지 않는 후각에 기뻐하는
그 마음을 나는 가질 수 있을까.
가진 것에 감사하고 누리는
그 아름다움을 나는 가질 수 있을까.

추억
추억이라고 하면
거창한 게 떠오를 줄 알았는데,
나 또한 소소한 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바라보던 밤하늘,
친구와 나누던 손 편지,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눈발이 흩날리는 하늘을 찍던 그날.
그 사소한 것들이 모두 모여
지금의 행복이 되고,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뭔가 콧잔등이 시큰하다.
'행복이란 게,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면 인생,
그것도 별거 없구나.
그저 소소하게 쌓아가는
행복만으로도 충분하구나.

후회
사실 자신 있지 않다.
나는 내 인생의 말미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다해,
치열하고 뜨겁게 사랑했으니
미련도 후회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부디,
털끝만큼의 후회도 없는 삶을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의 끝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언어
나이가 하나씩 내 안에 차오를수록,
사용하는 언어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마구 사용했던 단어들도
조심스러워지고,
'솔직'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내뱉던 날카로운 말들도
한번은 삼키게 된다.
나는 이런 나의 변화를 두고,
'나이를 먹으니 참 소심해지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해 위로받았다.
언어가 자신의 입술로 그리는 자화상이라면,
나는 잘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직도 한참 부족하지만,
타인의 눈으로 그리는 초상화가
아름다워질 때까지
나는 나의 언어를 더 갈고닦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열매가
나이 들어서 빛을 내길 기대해 본다.

사랑
내가 20대 때 서른 살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육신의 죽음이 아닌,
정신의 죽음이었다.
나의 젊음은
20대가 끝이라고 생각했고,
서른이 되면 젊음이 모두 타버렸으니
그건 죽음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나이가 든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보거나 들으면,
상당히 거부감을 일으켰다.
사랑은 젊음의 표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40대의 문턱을 막 넘은 지금,
그때의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닫는다.
사람은 평생을 거쳐
사랑할 자격이 있다.
소녀든 할머니든,
소년이든 할아버지든.
오히려 젊음에 불태웠던 사랑과는 다르게,
비우고 채워내는 사랑으로
더 애틋할 그들의 사랑을 응원한다.

은혜
이 책의 '결'에서 살짝 빗나갈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가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에
우리나라를 헌신과 사랑으로
일으켜 세워준 선교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불과 100년도 안되는 시간을 딛고
이만큼 우리나라가 살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사랑으로
이 땅을 밟아준
타국의 선교사들의 힘이 8할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어딘가에서 또 사랑을 나누고 있으실
그분들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저 베풀어주는 은혜에 감사함을 느끼고,
그 은혜를 또 나눌 때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더 살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틀을 거쳐 천천히 곱씹어 나간
서쪽으로 난 창.
유쾌한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와 화가 나는 이야기.
참 다양한 이야기를
가슴 절절하게 영혼을 울려준 작가님께
감사함을 표한다.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에
오늘 나의 하루도 단단해지고,
나의 삶도 익어간다.
당신도 이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해가 뜨는 동쪽 창가도
눈부시게 아름답겠지만,
해가 지는 서쪽 창가도
찬란함으로 물들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길.
우리의 인생도 찬란함으로 물들길 기도해 본다.
*본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쓰인 글입니다.
아름다운 책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