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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심층을 보다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B] 종교 심층을 보다, 오강남 / 현암사
프랑스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누군가는 포도주를 담글 때 아무 포도나무의 열매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비옥한 땅에서 자란 포도나무가 아니라 반드시 척박한 땅에서 일정한 연수가 된 포도나무의 열매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비옥한 땅에서 자란 포도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표층의 오염된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그런 나무에 달린 열매는 좋은 포도주가 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척박한 땅에서 자란 포도나무는 생존을 위해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하고 지표의 오염된 양분이 아닌 깊은 곳의 수분과 양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포도의 질이 좋을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오강남의 <종교, 심층을 보다>를 읽고 나자마자 떠오른 이야기다. 심층으로 뿌리내리기보다 표층에서 머물러 오직 성장 만을 쫓는 사회이다. 인류는 과연 심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국가대표 선수를 올림픽과 월드컵에 내 보내고 열광하듯이 정신과 종교 분야도 그렇게 대표선수를 파견하는 것으로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종교들과 그 가르침들은 표층에 머물지 않고 깊은 심층까지 내려 가서 끌어 올린 고귀한 열매들이다. 나를 비롯하여 오늘의 사람들도 심층까지 내려가지 않고 표층에서 머물러 있으려 한다. 표층에 머물러서 얻은 열매로 아무리 애써봐야 깊은 맛의 포도주가 나올 수 없다. 예수가 가르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나왔듯이 표층에 머무는 종교와 신앙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소개된 인물들은 이름만 불러도 벅차다. 플로티노스, 아빌라의 성 테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이슬람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 빈 배 이야기를 가르친 장자, 겸애의 묵자를 더 살펴보고자 한다. 누구보다 류영모와 함석헌 두 스승이 있어 든든하다.
새롭게 알게 된 분들, 스치듯 들었던 분들도 다시 알게 되어 좋다. 이 분들의 사상과 가르침을 어떻게 다 헤아려볼 수 있을까. 허락된 날까지 힘을 다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 뿐이다. 드러난 모습이 있어 보이기보다 안쪽이 단단한 삶이 되고 싶다. 많은 열매를 맺기보다 하나라도 좋은 열매를 내어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