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전쟁 -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
신재식 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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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와 종교학자와 신학자, 셋이 대화를 한다는 것은 많이 어색해 보인다. 같은 나무의 가지들이고 같은 고통을 느끼고 같이 새로운 변화해 가야 하는 분야임에도 마주 선 모습이 낯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분야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다. 한쪽은 합리적 사고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한쪽은 관념적이고 신비적인 사고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과학은 절차와 과정을 영역으로 삼고 종교는 가치와 의미를 영역으로 삼는다. 서로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고수하면서도 치열한 다툼을 한다. 그럼에도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같은 땅과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빛을 쪼이며 살아야 하기에 그래야만 한다. 계시록과 아인슈타인과 다윈이 한 위의 말들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한 말들이지만 그들이 서 있는 자리는 같은 자리라는 점은 잊지 않아야 할것이다.


대체로, 나는 신재식의 시각과 설명이 가깝게 다가 온다. 그는 ‘하나님은 시간 속에서 세계와 관계 갖는 역동적인 신’이며, 우주와 역사가 열려 있고 약속이 있다는 ‘종말론적 개방성’(p424)을 주장한다. 창조과학과 지적 설계론의 문제는 이것들 중단시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생명에 대한 설명은 한 가지 수준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진화론적 유신론>을 지향하는 신재식은 두 가지 태도를 갖는다. 하나는 역사-비평적 성서해석을 따른다는 것, 또 한 가지는 진화와 창조를 양자택일의 관계로 보지 않고 신학에 유용한 개념으로 본다. 신재식이 언급하듯이 안타까운 점은 신학은 post-modern에 와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pre-modern을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p442). 교회는 늘 뒷북이다. 주류에 있어서 일까. 변화는 변방과 가장자리에서부터 시작하기 마련인데 교회의 뒷북은 이런 측면과 연관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과학과 종교, 둘은 구분이나 구별은 되나 분리는 못한다. 거기엔 중첩되어서 복잡하고 모호한 부분들이 많다. 인간에게, 생명계 전체가 모호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이 땅과 세상, 우주와 역사에 시공을 지나면서 그 모든 게 뒤섞여 있다. 서로 겹치고 맞물려 있으며 수천 년 시간의 역사를 거치며 퇴적되어 있다. 따라서 종교는 더 크게 자신을 열어야 하고 과학은 더욱 겸손하고 신중해야 한다. … 무엇보다도 과학이란 틀, 종교라는 틀에 갇혀 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 후반에 김윤성이 말하듯이 ‘궁극성에 대한 추구’의 정신적 삶의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하며, 경이와 경외의 경험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는 합리적인 이해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신비적, 영성적, 경건한 자연주의자이고 싶다. 과학과 종교를 분리하지 말자. 서로 공명하면서 우주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더듬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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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4-27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