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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정환 옮김 / 자유문학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요즘 매일밤 학교 운동장을 돌고 있다. 하루에 10바퀴를 조금 못채우는데 말 그대로 운동장을 돌고 있을 뿐 힘을 들여 내 발의 보폭을 넓힌다거나 숨가쁘게 뛰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8월의 무더위를 이겨보려는 노력도 아니요, 나는 단지 걷고 싶었고 생각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운동장의 둥근 라인을 따라 나의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밤의 어둠 속에 내가 잠겨가는 기분이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의 하나다. 오래전 상실의 시대를 읽은 후 하루키에 대한 감각이 전무해진 상태에서 갑자기 만난 스푸트니크의 연인. 소개글에서 나와 있듯, 사랑에 빠진 모든 연인들은 결국 지구의 궤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처럼 각자의 궤도를 도는 것이라는 사실에 순간 아연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소유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었던가?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도 결국은 자신의 궤도를 이탈할 수 없는 인간과 인간,
운동장을 걸으며 나를 스쳐지나가며 달리고 걷고 뛰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이 책을 떠올린다.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그렇게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며 운동장을 돌고 있다. 나의 삶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람들, 그 관계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사람과의 만남으로서 나의 존재를 느끼고 살아가려는 시도는 어리석음이 아니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