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 - 전2권 세트 -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전, 그 어느 때라도 을지문덕이라는 존재에게 관심을 기울였던 때가 있었는지를.

 

기억1>

초등학교 2학년 때쯤 집안에 가득 꽂힌 낡은(큰집에서 물려준) 100권의 책 중에 우리나라 위인의 한사람으로 자리잡고 있어 예의상 읽어준 그의 위인전

 

기억2>

역시 초등학교 어느 때쯤, '을지문덕=살수대첩=고구려'를 싸잡아 외우면서 이름이 특이하다, 살수가 뭐냐, 고구련지 백제인지 헷갈린다 등 투덜투덜

 

기억3>

중학교 때 초등학교 지식에 얹어서 을지문덕이 살수대첩에서 무찌른 대상이 수나라였다는 것과 수문제, 수양제를 끝으로 수나라의 운명이 다했고 수나라가 망하는 데 고구려 원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대해 크게 기뻐했던 일.(남의 나라 망하는 게 뭐 그리 좋다고 좋아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나라가 위대했다고 하면 뭐든 다 좋았다.)

 

이후로는 을지문덕에 대해 전혀,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김진명씨가 소설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에 대해 알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내 기억 속에 자리잡는 것 이상을 기억하는 이는 그다지 많음은 확실하다.

 

그런 상태에서 그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 김진명씨는 왜 그를 주인공으로 선택했을까?

 

그가 지금까지 써온 소설보다 이 소설은 상당히 먼 시간을 소급해 올라가야 하지만 우리의 애국충정을 살리고 국가적 기개를 높이는데 이순신에 버금가는 인물로는 그가 적격이다.

 

더구나 역사적 사료가 극도로 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적 상상력이 많이 개입할 수 있다는 여지가 있다는 것으므로 소설의 극적 재미를 살리는 데는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일까?

 

처음 몇 장을 읽으며 '이거 무협소설 아니야?'라고 여겨질만큼 내용이 부실하게 여겨졌다. 장수 한명이 수십명도 아니고 몇천명을 상대로 싸운다는 건 아무래도 뻥이 너무 심하다.

 

그러나, 역시 감동 잘하고 감정이입 잘되는 나의 특성상 무협환타지소설스러운 이 소설에 금방 녹아나서 한시간여만에 한권을 뚝딱 해치웠다.

 

그러면서 정말로 궁금해졌다.

과연 문덕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지 말이다.

이 소설에서 문덕은 모든 계략에 능하고 인정이 많으며 칼을 앞에 두고도 태역작약할 수 있는 도를 깨친 사람이다. 너무 능력이 많아서 비현실적인 인물이 되어버린 무덕이란 사람이 아니라 진짜 을지문덕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역사는 가끔 이렇게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손을 내민다.

캐캐묵은 역사는 쓰디쓴 먼지처럼 맛이 없지만 소설이라는 달콤한 중개자를 통해 대중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이전 칼의 노래를 통해 동상처럼 굳혀진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만나며 왠지 감격스러웠던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을지문덕을 만나게 되어 무척이나 기쁘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것은 작가의 필력의 부족함이랄까.

이야기꾼으로서 그는 분명 커다란 재능을 가지고 있어 독자를 흡입할 수 있으나 그가 창조해낸 인물은 현실과의 괴리를 가진 꾸며진 인물로 보여질 때가 많다. 다시 말해 이 책에서 보여지는 인물들 역시 말투나 행동이 너무나 '소설 속의 주인공'답게 묘사되어 인물의 희노애락에 함께 동조할 수 없고 그 안의 주인공이 진정 옛사람일 것이라는 즐거운 착각을 불러일으키질 못한다.

 

예기치 않게(늘 이 사람의 책은 주변 사람을 통해 예기치 않게 읽는다.) 이 책을 읽게 되어 기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앞으로 그가 만들어낼 소설 속 세상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면서도 그가 좀더 더 작가적 역략을 키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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