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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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은 '분업(分業)'으로 평범해진다
-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민음사>, 2013.


1.

'회사'라는 곳이 내 예상과 달리 '민주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종강한 1999년 12월 둘째주 목요일에 단편소설 한 편을 21세기 첫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교문을 나선 나는, 그 주 토요일에 대기업 손해보험회사의 신입사원 연수에 들어갔다.

21세기 첫 1월에 첫 발령을 받았을 때, 팀장인 과장급은 30대 후반이었고, 부서장은 40대 초반이었는데, 27세 신입사원이었던 내 눈에 비친 '회사'의 첫인상이 믿을 수 없게도 애초 생각했던 것과 달리 '민주적'이었다.

소설을 쓰고 싶던 이십대의 내게, 
세상은 불평등하고 그래서 부조리했으며,
더군다나 군사독재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당시 우리 사회는 학교든, 가정이든, 어딜 가든 다 모두 다 '군대'였다. 

그런데, 처음 만난 회사는 내가 짐작했던 것에 비해 의외로 '민.주.적'으로 보였단 거다.

물론,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2.

아마도, 군대문화에 찌든 사회라는 곳을 지레 짐작하고 심각하게 예단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군대 고참이나 상관 같을 줄 알았던 회사 선배들은 생각보다 선했고 내게 잘 해주었다.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이고, 사회는 군대의 연장이다'라고 군생활 할 때 숱하게 들었기 때문에 그 반작용으로 회사가 그리 보였을 수도 있었겠다.

군대와 회사의 차이점이 있다면, 군대는 되도록 빨리 뜨고 싶은 시한부 생활이었던 반면에 회사는 오래 버티고 싶었다는 거였다. 그러니 군대는 길어야 2년 볼 거 서로 막 대하는 거였고 회사는 대부분 평생 붙어있고 싶으니 서로 대놓고 그럴 수 없었을 거다. 물론 군대가 회사인 직업군인은 그런 경계가 없겠지만, 의외로 '민주적'으로 보이던 회사는 대놓고 까댈 수 없는 대신 주로 뒤에서 '작업'들을 해댔다.  평판이 그렇게 빨리 회자되었고 인사고과가 그렇게 이루어졌다. 회사마다 있었을 '밤의 황제 또는 대통령'들은 그렇게 양산되었다. 술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럼에도 윗 사람 비위를 맞출 줄 몰랐기에 술도 먹고 먹은 술만큼 욕도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저가 작가와 요나만 입을 다물면 이 사건에 대해 떠들 사람은 없다고 자신하는 이유는 나머지 사람들은 '분업'화된 시스템 때문에 아주 부분적으로만 이 일과 연루되었기 때문이었다."
- [밤의 여행자들], <5. 마네킹의 섬>, 윤고은, 2013.


윤고은의 소설 [밤의 여행자들](2013)은 '정글'이라는 여행사에서 한 때 잘 나가던 여행 프로그래머 고요나 과장이 회사에서 밀려나고 본인도 모르게 사라지는 잔혹한 현실을 '재난 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려내는 일종의 우화다.

베트남 '무이'라는 곳은 땅이 크게 꺼져내리는 싱크홀로 많은 사람들이 재난을 당한 곳이라며 여행사 '정글'의 인기 여행지 중 하나였지만, 이제 재난이란 게 지구상 곳곳에 만연하다보니 식상해지고 있었다.
찾아보니 베트남에 '무이 네'라는 섬은 있는 거 같은데, 소설 속 '무이'라고만 한 걸 보면 우화소설답게 '어디에도 없으나 어디에도 있는' 가상의 공간을 설정한 듯 하다.

여기서도 역시,
내 소설의 주된 세계관인 '부재(不在)'가 등장한다.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덧 사라지고,
없는 것 같은데 어디에서나 도사리고 있는.
만연한 '부재'.

'어디에도 없으되, 어디에나 있는' 그 재난의 공간은 스스로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새로운 계획적 재난 상품을 연출하는데 결국 그런 인위적 작업 과정 자체가 진짜 재난의 원인이 된다.

결말은 같다.
재난을 조작하고 창조하던 '폴'이라는 거대한 배후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어디에도 존재해 왔으며, 인재였든 자연재해였든 조금이라도 연루된 자들 모두를 삼켜버린다. 이 재난은 생계를 위해 재난 조작에 참여한 '무이' 섬의 원주민들은 물론, 회사에서 퇴물이 되어 어느덧 그곳으로 출장을 갔다가 어이없게 되돌아갈 길을 잃은 여행사의 설계자인 고요나 과장과 재난 시나리오 작가 및 재난 기획의 배후인 '폴'의 대리인과 같은 현지 매니저까지도 모두 파멸시키고 만다. 

그들 모두는 '무지'했다.
재난 조작의 거대한 프로젝트 중 극히 일부분만 담당하는 '분업'을 통해 죄의식을 분담했고 아마도 '나만 그런가, 뭐'라는 생각으로 무심하게 조작된 재난에 가담했다. 원주민들은 생계를 앞세워 사기를 합리화했고, 여행사 직원 고요나는 청춘을 바친 회사에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눈을 감았다. 심지어는 그 새로운 재난의 드라마를 썼던 작가 조차도 자기만의 이야기에만 몰두했지 현실이 되고 만 재난이 시나리오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렇게,
'악(惡)'은 '분업(分業)'으로 평범해진다.


3.

이십대에 대학에서 들었던 노래 중에 '새세대 청춘송가'란 게 있었다. 

'내가 철들어간다는 것이 내 한 몸의 평안을 위해 세상에 적당히 길들어지는 거라면 내 결코 철들지 않겠다'고 담대하게 선언하는 청년의 노래였다. 이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자주통일운동 청춘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나 스스로 생각했더랬으나 사회에 나와 한참을 지나서까지 노래의 가사가 가끔 생각나곤 했다.

어느덧 그 노랫말을 더 이상 진지함이 아닌 희극적으로 되뇌이는 나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나는 '철들어' 있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사회에서 내 자리를 찾고자 기를 쓰면서 어느덧 나는 체제에 철저히 종속되었다. 2000년대에 진보정당과 2010년대에 노동조합도 기웃거렸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어디에 있든, 나는 여전히 체제의 노예였다.

2012년이었던가.
내가 노동조합 상무집행간부를 맡았던 첫 해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함께 살자!"며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할 때, 박근혜 정권이 그 자리에 느닷없이 화단을 설치한다고 노동자들을 내몬적이 있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연대투쟁을 갔던 나는 거대한 배후인 박근혜 정권보다도,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해고 노동자들을 밀쳐대며 열심히 화단 만들 땅에 삽질을 해대던 서울 중구청 공무원들이 더 싫었다. 그들 힘없는 공무원들의 머릿속에는 집에서 아빠만 바라보는 가족만 있었겠지만 그때 그곳에서 그 가장들의 생계형 삽질은 분명 '악'을 행하고 있었다.

뜬금없지만, 만약 내가 일제강점기를 살았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싶었다.
독립운동을 했을까, 친일을 했을까.

아마도 이광수나 서정주 같은 친일 지식인들의 변명처럼 진짜로 해방이 될지 몰랐을 테니, 사회에서 내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며 '순리'에 따라 '친일'을 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면 지금 태어났음에 안도의 한숨을 고르게 된다. 

'분업'은 '무지'를 낳고, '무지'로 인해 나도 모르게 '악'을 행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가 시키는 대로만 성실하게 이행했을 뿐"이라고 줄곧 자기 스스로를 변호했다던 독일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은 '악마'와 같은 유대인 학살 기획자였지만, '분업'으로 '무지'했고, 그만큼 '평범'했다고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기록했다고 한다.
이른바, '악의 평범성'이다.

'악(惡)'은 '분업(分業)'으로 평범해진다는 생각을 노래 가사처럼 되새기며, 다음 책으로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이제 비로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디,
그 속에 내가 없기를.

***

1.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민음사>, 2013.
2. [친일문학론](1966), 임종국, <민족문제연구소>,2013.
3.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1963), 한나 아렌트,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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