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변과 만변 거젠슝, 중국사를 말하다
거젠슝 지음, 김영문 옮김 / 역사산책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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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변(萬變)'의 역사 속 '불변(不變)'의 진리
- [불변과 만변](2021), 거젠슝, 김영문 옮김, <역사산책>, 2022.


"분열 시기에 어떤 정권이 통일을 목표로 삼았거나 최종적으로 통일을 실현했다면 그 정권은 반드시 자신을 '중국'으로 간주하는 동시에 상대방을 '비중국'으로 간주했다. 다시 통일을 이룬 뒤 앞의 정권은 이후 정권에 의해 중국으로 인정되었다. 예컨대 당나라는 (남북조 시대의) [북사]와 [남사]를 동시에 편찬했고 원나라도 [송사]와 [요사]를 동시에 편찬했다. 이 역사책들이 후세에 모두 '정사'로 인정된 것은 이들 정권의 포괄 범위가 일찍부터 '중국'으로 인정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 [불변과 만변], <8장 11절>, 거젠슝, 2021.


10세기 중국에서 5대10국을 끝내고 송나라를 건국한 송태조 조광윤에게 남쪽의 남당국 군주 이욱과 오월국 군주 전숙은 스스로의 땅을 보전하기 위해 납작 엎드렸다. 후주 세종이 죽자 세종이 신임하던 대장군 조광윤이 후주의 왕족인 시씨를 배반하고 새왕조를 개창한 후 중국의 북쪽을 장악하자 남쪽의 두 소국들은 스스로를 왕이 아닌 제후로 셀프강등시키면서 목숨을 구걸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들은 송나라 조씨 가문의 확고한 계획을 바꿀 수 없었다. 남당의 군주와 그보다는 조금 운이 좋았던 오월국 군주는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에서 보듯 부드러운 천하통일 카리스마의 끝판왕인 송태조 조광윤의 '아량' 덕에 목숨은 부지했지만 이후 그의 제위를 이은 송태종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송나라의 목표는 단 하나였기에 이 소국들의 운명은 시기가 문제였지 이미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조광윤이 개국한 송나라 '불변'의 목표는 바로 중국의 '천하통일'이었다.


중국의 역사, 지리, 인구사에 정통하다는 푸단대학 교수 거젠슝은 2021년에 [불변과 만변(不變與萬變)]이라는 책을 통해 중국 역사 속 '불변'의 개념들로 '만변'의 역사를 꿰뚫고자 한다.

그는 3천년 전 주무왕이 낙양에서 선포한 '중국'이라는 중심어를 시작으로 이 '중국'을 지속시키려 했던 '뼈대(같은책, <1편>)'로서 강역과 도성(수도), '혈육(<2편>)'으로서 인구이동, '정신 중추(<3편>)'로서 '천하(<8장>)' 가치관의 세 가지 바늘을 무기로 장대하고 복잡한 중국사를 씨실날실로 간단하게 엮어낸다.

저자에 의하면, 중국의 강역이나 인구는 기존 중화주의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흉노와 선비, 거란 및 여진과 몽골 등 유목민족이라 하더라도 중원의 농경민족인 한족의 문화와 습속을 따르고 이에 동화되는 한 이것이 미치는 강역은 '중국'이었고, 이 '중국'으로 이주하여 모인 수많은 민족들이 모두 '중국인'이었다는 주장이다. 당연히 결론은 '일대일로' 정책으로 실크로드와 해상무역로를 새로 연결하여 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중국'으로 포괄하려는 현재 중국주의의 역사적 정당화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한반도와 요동의 역사를 중국의 지방정권사로 포섭하려는 동북공정이 그 지류다. 따라서 '만변'의 역사를 '불변'의 키워드로 해석하고 서술하는 저자의 보편적 역사관은 동의할 만 하다 해도 이 책은 조선의 오랜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인식하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이 책의 역자이자 견위의 [초한연의]와 [삼국지평화] 등을 번역한 중국학자 김영문 선생님이 세세하게 각주를 달아 비판하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걸러서 읽으면 된다.

이 책은 중국의 강역과 최초 통일 정권인 진시황의 진나라, 초한전쟁의 분열을 끝낸 유방의 한나라, 전제군주 체제의 가장 한심한 말로를 보여준 사마씨 진나라의 분열과 이로 인해 본격적으로 등장한 소수민족의 이동이자 격렬한 분열 시기로서 5호16국과 당나라 및 5대10국, 그 이후의 송-명-청나라 권력교체기 등의 역사를 조명한다.
저자가 '분열'의 역사를 특히 강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천하통일'의 결론을 말하기 위해서다.


"후한 원년(25년) 8월 5일, 호현(허베이 바이샹현 북쪽) 남쪽 토단 위에서 유수가 황제 보위에 올라 연호를 건무라고 선포했다. 하지만 당시 유수의 일부 모사와 장군을 제외하고는 그가 십몇 년 후 천하를 통일하고 한나라를 회복해 국운을 다시 200년 더 연장하리라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불변과 만변], <8장 8절>, 거젠슝, 2021.


특히, '천하통일' 가치관의 중요성을 서술한 이 책 3편 8장의 <천하> 장에서 진시황의 표준화 통일정책과 한고조 유방의 유연한 전략은 다소 진부한 내용이나 후한을 건국한 광무제 유수가 전반부 2백년에서 끊어졌던 한나라 유씨 정권을 부활시켜 후반부 2백년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한 요인으로 그의 비타협적인 '통일관'을 들고 있다. 전한의 맥을 끊은 왕망의 신나라가 무너진 후 민중들이 다시 한나라 부흥을 꿈꾸며 하나같이 유수를 추대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녹림군과 적미군 등의 다수 농민반란군의 봉기 과정 및 유씨 황족으로서 왕망 이후 제일 먼저 장안을 점령한 경(갱)시제 유현이나 두융과 외효, 공손술 같은 여러 반란 지도자들간 치열한 쟁투에서 결코 유수가 유력한 후보가 아니었다는 객관적 배경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결국 광무제 유수가 승리한 이유는 결코 지역할거에 머물지 않고 경쟁자들을 철저히 복종시키거나 섬멸해 버리는 타협없이 뚜렷한 천하통일 의지였다. 이 '불변'의 목표는 진시황과 한고조 유방, 광무제 유수와 송태조 조광윤, 명태조 주원장과 청나라 강희제 등이 중국의 강역과 인구를 '만변'으로 번창하게 했던 주요 동력이었다.

유방과 주원장, 조광윤 못지 않게, 격변하는 분열 정국에서 비타협적 통일관으로 역사의 획을 그은 광무제 유수의 매력을 새삼 발견한 건 이 책을 통해 내가 개인적으로 얻은 수확이다. 


"한고조 유방은 저속했고, 한무제는 패기가 있었다. 지식인 출신이었던 광무제 유수는 문화적 소양이 풍부했다. '유학자는 나라의 보배'라는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유수는 유학자를 중시하고 격려했기 때문에 후한시대 군신들은 유학자다운 기상을 지니고있었다. 백정, 도적, 무뢰배 출신으로 이뤄진 전한시대의 개국공신들과 비교하자면 천양지차였다. 문신을 장려하고 발탁하는 '문치'의 풍조 때문에 후한시대에는 강직하고 절개있는 문인 대신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또 이 때문에 후한이 위기 상황이나 힘들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무너지거나 멸망하지 않고 200여 년을 버틸 수 있었다."
- [후한서], <광무제기>, 범엽, 5세기.


남북조 시기 남조 유송의 역사가 범엽의 [후한서]는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그리고 진수의 [삼국지]와 함께 중국 역사 '25사' 중 최고의 '4대 정사'로 꼽히는데 이 중 후한의 개국자 유수의 일대기를 다룬 본기인 <광무제기>를 보면, 유수는 한고조 유방의 9대손이었으나 전한 개국 후 이미 10만명 가까이 되던 유씨 집안 일족에 불과하여 유수의 부친은 지방 현령직이었다. 다만 유수는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했고 난세를 맞아 어쩔 수 없이 거병을 했지만 유학자를 중시한 지식인 출신이자 문화적 소양이 풍부했다. 농사일에도 성실하여 그의 형 유연이나 경(갱)시제 유현과 달리 유수가 28세에 거병을 했을 때 민중들은 '조심성 많고 신중한 사람까지 그런 일을 벌이다니'라면서 수긍했다고 한다. 역시 유수는 다니는 지역마다 민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유수는 난세의 군웅할거 시기에 군사를 일으켜 유일한 '천자'가 되고자 하는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결국 실현했지만 천하를 평정하고 후한의 황제가 된 후에는 부드러움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범엽은 비록 광무제 유수가 도참설 같은 미신에 다소 의지하기는 했지만 후한이 이후 200년을 이어갈 수 있었던 토대를 광무제 유수의 너그러운 문치주의로 평가하고 있다.

역사서가 권력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중요한 근거이며, 그 시초가 공자의 춘추필법임을 명백히 하고, 이 편집된 승자의 역사기록이라는 "사료 가운데서 표면을 뚫고 내면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역사에 대한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옛 역사를 해석하고 인식"(같은책, <맺음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 거젠슝의 결론은 내가 믿고 읽는 역자 김영문 선생님의 지적(같은책, <옮긴이의 말>)처럼 현대판 중국주의를 내포한 이 책 자체의 역사서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므로 동북공정처럼 우리에게 불편한 내용 일부를 담고 있기는 해도 '만변'의 역사 속 '불변'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저자 거젠슝의 역사서술 기법의 매력은 참신하게 읽힌다.

중국의 인기 역사가 이중톈이 추리소설의 기법으로 장대한 중국사의 주요 에피소드를 엮어 새로운 중국 '통사'를 집필하는 것처럼, 더 많은 역사가들이 사마천의 [사기]식 '기전체'와 사마광의 [자치통감]식 '편년체'를 교차하고 넘어서는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역사서술을 무궁무진하게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물론, 어느 역사기록이든 거젠슝의 말대로 공자의 '춘추필법'의 본성을 감출 수는 없을테지만.

진실이 그러하니 역시,
'만변'의 역사를 꿰뚫는 '불변'의 진리를 추려내는 무기는 사료의 맥락 속 역사적 진실을 볼 수 있는 비판적 관점이다.

***

1. [불변과 만변(不變與萬變)](2021), 거젠슝, 김영문 옮김, <역사산책>, 2022.
2. [후한서 - 범엽의 인물열전], 범엽, 유홍유 편저, 이미영 옮김, <팩컴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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