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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넌 무엇을 기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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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1965년 초판을 채 팔지도 못하고 출간 1년 만에 절판된 비운의 책. 그로부터 50년만에 극적으로 세상과 다시 만난 책이다.
20세기에는 잊혀졌지만 21세기에 기억되는 소설.
김연수, 신형철, 이동진, 김중혁 등 많은 문학 애호가들이 “인생 소설”이라고 극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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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난 스토너는 1965년 출간되었던 초판본 표지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묵직함과 스토너의 쓸쓸한 인생이 느껴지는 표지였다. 마른 나뭇가지와 같았던 그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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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부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인 스토너는 컬럼비아 대학, 농과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거부할 수 없이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문학으로 전과를 하고 교수로서의 삶을 꿈꾼다. 또 한번 그의 삶을 뒤흔드는 여인, 이디스와의 결혼.
하지만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다. 이디스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 인정받지 못 하는 교수로서의 삶, 소중한 아이와 멀어지는 시간, 그리고 만나게 된 사랑하는 여인 캐서린과의 이별..
그를 괴롭히는 로맥스, 그를 엿 먹이고 싶어하는 제자 찰스 워커, 오랜시간 우정을 나눈 고든.
그들과의 관계에서 스토너는 자신을 방어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 하거나 하는 모습은 없다.
그저 관망하며 묵묵히 인내함으로 그 자리에 있다. 비겁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참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어떤 이의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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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흘러 삶을 마무리하는 스토너는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문 앞에 서서 몇 번이나 되뇌인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화려한 삶, 성공한 삶, 실패했다고 느끼는 삶이든 마지막 순간에 누구나 하게 될 질문이다.
어떤 삶을 살았든 분명 이 질문 앞에 후회라는 감정을 느낄테지..
좀 더 열심히 살걸, 좀 더 사랑할 걸, 좀 더 너그러울 걸 하는 후회 말이다.
세월의 풍파를 다 겪고 마지막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에서 어쩌면 삶은 공평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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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요즘 접하는 한국 소설처럼 독한 상황이 없다.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멋진 반전이 있는 소설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소 당혹감을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끌렸다. 무엇이 날 이끄는지 모르게 페이지를 넘기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뿐이다. 먹먹함도 안타까움도 한숨도 스토너의 삶과 함께 그렇게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저수지에 고여 있는 물 같은 그의 삶이 주는 이상한 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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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나의 삶을 뒤돌아 보게 되었다.
너무 평범한 삶, 눈여겨 볼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나의 삶. 하지만 묵묵하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도 의미있는 풍부한 삶이라는 것을 알려준 책이다.
잔잔하지만 묵직하고 감동과 울림을 주는 책.
읽어보시라. 그냥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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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0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그가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낡은 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자 표면의 거친 느낌이 사라졌다. 낡은 회색 표면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면서 나무 본래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더니, 마침내 풍요롭고 순수한 질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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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2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p.385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