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이블 - 신과 인간이 만들어온 이야기
필리프 르셰르메이에르 지음, 레베카 도트르메르 그림, 전경훈 옮김 / 니케북스 / 2023년 1월
평점 :
다섯 살때부터 교회를 다녀온 내게 성경이야기는 익숙하면서도 때때로 아주 새롭게 다가오는 글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인간에 의해 쓰여진 이 책은 오랜 시간 동안 내려오면서 인간의 삶에,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한 탓에 서양 고전이나 미술, 음악, 철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면 신화와 더불어 성경을 알아야 한다. 주석을 보지 않아도 알아지는 은유! 그 쾌감을 알기에 성경은 신자, 비신자를 떠나 읽어보길 권하게 된다.
필리프 르셰르메이에르에 의해 쓰여진 “바이블”은성경의 주요 장면들을 모티프로 새롭게 구성한 책으로 희곡, 시, 우화, 노래, 아포리즘 등 다양한 문화적 코드를 사용한 문체 실험이 돋보인다. 거기에 예상과 다른 삽화는 기존에 갖고 있던 성화에 대한 생각을 무너뜨린다. 책 곳곳에 실려있는 그림을 통해 들려주는 세밀한 이야기를 보다보면, 글이 미처 말하지 못하는 바를 그림이 전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그림이 아름답고 굉장히 몽환적이다. 다양한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책 커버의 삽화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제목이 바이블이다. 성경.. 그런데 이 그림은 무엇인가? 한참을 읽다보니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고지를 (성령으로 인해 네가 임신을 할 것이다. 이름을 예수라하라) 한 가브리엘 천사를 그린 것이다. 천사 뿐 아니라 아담도 내가 상상한 아담이 아니었다. 여러가지 피부색이 층을 이루고 있다. 인종에 대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듯한 그림. 한참을 보고 있는데 마음이 뭉클해진다.
성경이 경전이기 때문일까?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성경을 읽다보면 구체적인 지명, 구체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천지창조를 시작으로 에덴, 아담, 대홍수, 노아, 아브라함, 출애굽, 물고기에게 잡아먹힌 요나, 장자권을 뺏은 야곱, 지혜의 대명사 솔로몬 왕, 알 수 없는 고난으로 몸부림치는 욥…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면서도 인간이 겪는 보편적 문제와 실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을 구원할 예수의 탄생과 고난 죽음 부활의 여정까지…
종교적 색채가 강할까 겁이 날 수도 있다. 일단 성경이라는 제목 자체도 거부감을 주기 충분하니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잠시 넣어두시라. 이 책은 인간과 신이 상호작용을 하며 만들어낸 이야기,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늘 놓여있는 갈등과 선택의 상황, 이 책도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의 심리와 모습을 부각시켰다. 텍스트 너머의 텍스트, 그림 너머의 그림을 보게 만들어준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