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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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 아니 에르노의 시선이 만들어진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일기. 엿보고 싶은 노트가 책으로 - 무궁무진한 글쓰기의 세계도 볼 수 있을 듯. 기대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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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사람들
캐서린 벨턴 지음, 박중서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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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권력 구조를 파헤치는 완결판 - 푸틴의 사람들 (원제: Putin's People: How the KGB Took Back Russia and Then Took on the West). 원제의 부제도 강렬하지만, 한국어판의 부제 '러시아를 장악한 KGB 마피아와 대통령의 조직범죄'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의 서사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는 러시아의 시꺼먼 속내는 여기저기서 파헤쳐 지고 있다. 그중 '푸틴의 사람들'은 위용 있는 두께를 자랑하며 러시아의 이너서클의 모습을 완벽히 그려낸 책이다. 처음엔 부담스러운 분량(총 874쪽)이었지만, 사실 러시아는 이 정도로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는 한 이해 불가의 국가다. 그간 몇 권의 책과 컨텐츠로 러시아 관련 권력구조의 특이한 성질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은 여러 사건을 다각도로 보여주며 현재 러시아의 서사를 완벽히 알려주었다.

러시아에는 차르라는 왕권국가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연방 공산당 시절도 있었다. 현재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도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러시아를 국제 무대에서 건재한 국가로서 가장할 수 있었던 '푸틴의 크렘린'은 거대하고 기괴한 돌연변이 시스템이었다. 푸틴이 중심에 있는 사건들에 집중해서 효과적으로 권력의 여러 모습을 알아가는 것은 의외로 너무 재미있고 효율적이었다.

푸틴 시대

푸틴이 어떻게 장기집권하고 있는 걸까가 궁금했던 건 러시아를 거의 알지 못했을 때였다. 왜 푸틴이 인기가 많은지를 생각했던 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푸틴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푸틴이 러시아에 필요한지, 푸틴을 둘러싼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가는 방법은 결국엔 '푸틴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연결고리 하나씩 들춰보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푸틴을 누가 왜 만들었고, 푸틴의 역할이 무엇이 있는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푸틴이 힘을 휘두르기 시작할 때, 누구를 이용해 어떻게 권력을 공고화하는지 알아가는 것도 새로웠다.

읽을수록 독특한 사회다. KGB 안보부는 구시대적 산물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푸틴은 이 막강한 동력을 결코 사장시키지 않았다. 정보화 시대는 보편화된 지 오래지만 가치 있는 정보는 결코 보편화되지 않고 소수에게 이용될 뿐인데, 러시아는 이를 철저히 관리하고 창의적으로 이용한다. 더구나 러시아는 손쉽게 타국의 사법체계를 이용하고, 원하는 대로 부패를 심고,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 은폐하거나 폭로한다.


막대한 부를 가진 올리가르히를 막을 방법은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푸틴은 국외로도 수월하게 사정거리를 넓히고, 긴요한 것들을 동원해 재산과 신변을 가차 없이 처단한다. 이런 여러 과정이 책에 상세히 분석되어 있었고, 독특하고 은밀한 러시아의 시스템을 볼 수 있었다.



친절한 구성

1/3쯤 읽었을 때 점점 안갯속에서 걷는 느낌이 들어서 힘들었는데, 한국어판의 해제와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유용한 푸틴의 연보도 한국어판의 친절한 구성 중 하나이다. 러시아 내용이 처음이라면, 아무래도 해제와 옮긴이의 말을 읽고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친절한 구성에 힘입어, 여러 가지 주제로 러시아를 알아가고, 마지막 장으로 도널드 트럼프와 관련된 이야기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딱딱한 책이었지만, 저자의 끈기 있고 치밀한 조사와 정리가 멋졌다. 의외의 단점은.... 이제 나도 음모론을 쉽게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아 조금 우려가 된다는 점.



은밀한 국가, 20년 동안 권력을 독점하고 안일하게 도태되지 않은 채, 자신만의 방법으로 여러 나라를 위협하는 러시아, 아니, <푸틴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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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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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전쟁을 적확한 언어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

감정적인 동요의 근원

2권으로 이어진 3부에서는 군인과 시민의 '전쟁 경험'을 4부에서는 '전쟁에서 벗어나기'를 다루고 있다. 읽기 전에는 트라우마나 전쟁 후유증, 잔존하는 피해들에 대한 내용이 연달아 나올 걸로만 예상했고, '읽기 힘들겠다.', '감정적으로 동요가 될 것 같다.' 정도로 우려했었다. 하지만 그런 부정확한 예상은 이 책을 읽을수록 불식되었고, 전쟁 상황을 적확한 언어로 이해해 나가면서 훨씬 복합적인 인식과 정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투 경험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체적이며, 전쟁은 강한 주관화가 이루어지는 경험이라는 점, 여타의 사회 경험과 비견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정서가 동원된다는 것과 같은 내용들은 일종의 정의(definition)로 다가오며, 전쟁에 대한 논의의 올바른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이런 내용은 무수히 많았고, 올바른 정의에서 시작한 전개를 읽는 모든 과정은 '감정적인 동요'의 근원을 파헤치고, 많은 것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근대전, 만연한 폭력

이 책의 전쟁사는 명명된 전쟁의 역사를 되짚는데 그치지 않고 근대의 폭력까지 전쟁의 양상으로 아울러 담고 있다. 더불어 군인과 시민의 전쟁 경험이 과거와 현재가 얼마나 판이한지를 다각도에서 비교해 나간다. 사망자 수 대비 부상자 수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생존자의 감각 체험이 왜 전례 없던 공포로 바뀌었는지, 새로운 시련과 혼란이 얼마나 무한하게 펼쳐질 수 있는지를 과거와 현재까지의 수많은 폭력 상황의 예와 함께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사례를 알게 되었지만, 동요되는 감정은 감상적으로 빠지기 보다는 끊임없는 폭력 상황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각 주제별로 다루는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하나같이 포괄적인 분석과 현재의 폭력 상황과 미래의 예측을 담고 있는 점도 좋았다.

극단적 폭력과 전쟁을 유지시키는 상징들

물론 전쟁에 대해 알아간다고 해서 전쟁을 옹호하게 되지는 않는다. 전쟁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폭력 상황이라는 점을 깨달을 뿐이었다. 가장 해로운 극단적인 폭력 상황으로 인한 병폐는 어느 정도 정점을 찍고 자제하는 질서를 세운 듯도 싶지만, 크고 작은 폭력 상황은 평화를 세계 곳곳에 계속 있어왔고, 우러 전쟁도 발발했다. 폭력은 과연 없어질 수 없는 것일까? 더불어, 전쟁이라는 대규모 집단 사회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분야마다 판이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한편, 의외로 계속 의문이 드는 점은 전쟁과 관련한 희생을 숭고하게 생각하고 명예롭게 만들는 상징성이었다. 전쟁을 떠받치는 것들은 여러 개이지만, 개인이 전쟁을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차원의 인식부터 달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1권보다 힘들 줄 알았지만, 더 깊게 읽을 수 있었던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였다.

전쟁의 역사를 계속 훑어나가면서 전쟁에 대해 균형 잡힌 인식을 세워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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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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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 전쟁사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권에서는 근대 전쟁이 전통적인 전쟁과 어떻게 다른지(1부)와, 전쟁 수행 조직의 기반인 군대(2부)를 다룬다.

촘촘한 책 구성

57명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말하는 전쟁을 어떻게 읽어나가야 할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전체를 아우르는 구성과 각 부의 주제가 명확해서 쉽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특히 전체 서문과 1부, 2부를 시작하는 서문은 몇 번씩 다시 읽었다. 게릴라, 테러, 무장충돌, 무력 사태, 정치 범죄 등의 계보와 변화를 알 수 있었을뿐더러, 현시대에 당면한 여러 형태의 폭력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막연하기만 했던 과거의 전쟁에서부터 현재 문제까지 아우를 수 있는 구성이다. 2018년 출간의 책이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루고 있지 않지만, 오히려 그전까지의 양상을 보며,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폐해를 생각하게 했다.


1부 - 근대 전쟁의 탄생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세부 주제는 큰 주제와 긴밀히 연관되면서도 무척 다양했다. 전쟁사를 관통하는 관점을 제시하기도, 전략, 용병, 법, 환경 파괴,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쟁의 반향을 알 수 있었다. 분명 분야별로 깊이 들어가기에 전쟁 미시사이지만, 모든 주제에서 과거부터 현재의 상황까지 정리하고 있기에 거시사로서의 성격을 가진 점도 좋았다.

관심 있는 주제였던 국제인도법 관련 내용은 과거 신성시되었던 전쟁의 금언에서부터 시작해서 무기의 발전으로 더욱 폭력적으로 변한 무력 충돌, 제네바 협약과 헤이그 협약의 체결 배경과 여러 국제 인도법상 중요한 조약들의 맥락을 짚어준다. 더불어 국제 군사재판소 및 국제 형사 재판소의 창설도 설명하며 완벽한 윤곽을 그려주었다. 더불어 이러한 적대 행위와 관련된 규칙이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회의적이었던 레프 톨스토이의 관점을 제시하며 현재의 시사점을 던져 주기에 전쟁과 법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2부 - 군대의 세계

2부로 가면서, 좀 더 구체적인 전쟁의 모습이 드러났다. 2부의 세부 주제는 군인 양성, 식민지의 병사, 자원병, 여군, 소년병, 포로 등 다양했고 폐단과 피해는 무궁무진했다. 2부를 읽으면서 느꼈던 이 책의 강점은 각 저자마다 논조가 조금씩 다르면서 대부분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과 관련된 여러 가지 내용을 알아가면서 치우친 견해에 빠질 위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차례로 읽어 나가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는 획일적인 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다각도에서 알 수 있었고, 군대 속의 군인들 한 명 한 명 여러 이유로 가해자이거나 피해자로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군사적 가치를 자의로 타의로 내면화하게 되는 군인들, 여전히 군인을 상징적이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선전하는 양면적이고 모호한 영향력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담담하게, 인문학적으로 접근했던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권을 마치며 -

2권은 3부 '전쟁 경험'과 4부 '전쟁에서 벗어나기'를 담고 있기에, 좀 더 힘들게 읽게 되지 않을까 한다.

'전쟁의 모든 것'에 균형 잡힌 시선을 알아가기 위해 열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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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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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의 새로운 지경이 어떤 건지 배우며, 깊이 더 깊이 소설 속으로, 작가의 세계관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던 책

소란스럽게 읽은 책

처음엔 좀 많이 멋졌고, 문득 <백치>(상)권을 펼쳐서 읽었고, 그러다 석영중 교수님의 다른 책을 찾아서 읽고, 다른 도스토옙스키 책들까지 넘보며 - 너무 소란스럽게 읽었다. 어쨌든 <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으로 돌아와서 머리에 살짝 쥐가 오는 느낌을 무시하며 소설 속의 중첩되는 이미지의 설명에 빠져들었다. 소설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 난 몰랐다. 작가를 이렇게까지 파헤치면 새로운 지경이 나오는구나, 내가 알 리가 없었다. 그냥 내가 그간 소설을 너무 쉽게만 읽었던 걸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만이 이토록 특이한 걸까?

많은 분야의 연구 주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수많은 분야의 연구자들이 천착한 작가이다. 그는 독실한 정교 그리스도교 신앙인이며, 당시 러시아 최고 과학 기술 고등 교육기관에서 수학하고 공병 소위로 임관한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또한 회화에 관심이 많아 미술 평론을 쓰기도 했고, 화가 수준의 스케치도 많이 남겼다. 그리고 간질환자이기도 했다. 이런 도스토옙스키를 도스토옙스키가 스스로 가장 아꼈던 소설 <백치>를 주제로 다각도에서 분석하는 것은 가장 적합한 일이었다. <백치>의 해설뿐만 아니라 작가에 대한 여러 분야 연구를 참조하여 다방면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개안의 강의

아마 <백치>를 미리 다 읽어봤더라도, 나는 이런 읽기는 영영 불가능했을 것 같다. 백치는 철도에서 만난 인물들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재회하고, 한 여자를 둘러싼 치정과 살인이 있고, 끊임없이 돈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심의 바보 같은 간질환자 미시킨 공작이 있다. 여러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며 긴 대화와 다양한 갈등 상황은 도스토옙스키 소설 읽기의 즐거움이자 난관이다. 줄거리는 요약할 수 있을지라도, 크고 작은 상황 속에서 도스토옙스키가 그려는 인간상과 섬세한 시선은 한 줄 한 줄 읽으며 느낄 수밖에 없다.

<백치>는 비록 아직 다 못 읽었지만, <죄와 벌>은 청소년기 때 읽은 걸 포함하면 다섯 번은 읽었을 것 같은데, 가장 최근에야 그 묘미에 푹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을 읽고서 <백치>를 읽으면 좀 더 여유롭게 묘미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 가지 이미지, '철도', '칼', '그림'을 중심으로 여러 장면들을 중첩해서 해석하는 석영중 교수님의 해설은 스포일러와는 전혀 다른 유용한 사유 방법, 일종의 개안이었다. 다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유용할 것 같고, 특히 <백치>를 읽으면서 이 이미지들을 떠올린다면, 좀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도의 강생(신이 인간으로 태어남)이라는 범상치 않은 이미지를 구현한 소설 <백치>를 제대로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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