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 읽기의 새로운 지경이 어떤 건지 배우며, 깊이 더 깊이 소설 속으로, 작가의 세계관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던 책

소란스럽게 읽은 책

처음엔 좀 많이 멋졌고, 문득 <백치>(상)권을 펼쳐서 읽었고, 그러다 석영중 교수님의 다른 책을 찾아서 읽고, 다른 도스토옙스키 책들까지 넘보며 - 너무 소란스럽게 읽었다. 어쨌든 <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으로 돌아와서 머리에 살짝 쥐가 오는 느낌을 무시하며 소설 속의 중첩되는 이미지의 설명에 빠져들었다. 소설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 난 몰랐다. 작가를 이렇게까지 파헤치면 새로운 지경이 나오는구나, 내가 알 리가 없었다. 그냥 내가 그간 소설을 너무 쉽게만 읽었던 걸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만이 이토록 특이한 걸까?

많은 분야의 연구 주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수많은 분야의 연구자들이 천착한 작가이다. 그는 독실한 정교 그리스도교 신앙인이며, 당시 러시아 최고 과학 기술 고등 교육기관에서 수학하고 공병 소위로 임관한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또한 회화에 관심이 많아 미술 평론을 쓰기도 했고, 화가 수준의 스케치도 많이 남겼다. 그리고 간질환자이기도 했다. 이런 도스토옙스키를 도스토옙스키가 스스로 가장 아꼈던 소설 <백치>를 주제로 다각도에서 분석하는 것은 가장 적합한 일이었다. <백치>의 해설뿐만 아니라 작가에 대한 여러 분야 연구를 참조하여 다방면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개안의 강의

아마 <백치>를 미리 다 읽어봤더라도, 나는 이런 읽기는 영영 불가능했을 것 같다. 백치는 철도에서 만난 인물들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재회하고, 한 여자를 둘러싼 치정과 살인이 있고, 끊임없이 돈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심의 바보 같은 간질환자 미시킨 공작이 있다. 여러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며 긴 대화와 다양한 갈등 상황은 도스토옙스키 소설 읽기의 즐거움이자 난관이다. 줄거리는 요약할 수 있을지라도, 크고 작은 상황 속에서 도스토옙스키가 그려는 인간상과 섬세한 시선은 한 줄 한 줄 읽으며 느낄 수밖에 없다.

<백치>는 비록 아직 다 못 읽었지만, <죄와 벌>은 청소년기 때 읽은 걸 포함하면 다섯 번은 읽었을 것 같은데, 가장 최근에야 그 묘미에 푹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을 읽고서 <백치>를 읽으면 좀 더 여유롭게 묘미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 가지 이미지, '철도', '칼', '그림'을 중심으로 여러 장면들을 중첩해서 해석하는 석영중 교수님의 해설은 스포일러와는 전혀 다른 유용한 사유 방법, 일종의 개안이었다. 다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유용할 것 같고, 특히 <백치>를 읽으면서 이 이미지들을 떠올린다면, 좀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도의 강생(신이 인간으로 태어남)이라는 범상치 않은 이미지를 구현한 소설 <백치>를 제대로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