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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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 푸른숲


⌜일단, 신뢰를 좀 쌓읍시다.
당신은 아직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최소한 신발은 벗었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당신은 한 손으로 이 책을 들고 다른 팔로는 머리를 괴고서 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제는 의구심이 들지요?⌟ (p.9)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렇다면, 내가 책 속의 책인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를 언제 어디서 펼쳤는지에 따라 내용이 바뀐단 말인가?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지 않았을까? 그러면 또 책은 얘기할까? 그렇게 둘러봐도 아무 소용 없다고. CCTV 같은 건 없다고. 나는 너의 마음속에 있다고.

우연히 산 책이 나에게 능동적으로 말을 걸어온다면,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게 될까? 이런 이야기는 믿지 않아도, 그냥 무시하기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에 나의 인생을 맡기기로 선택할 것인가?


⌜우리가 ‘나’라고 말할 때의 ‘나’가 무엇인지,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 그 무엇보다도 우리 내면의 변화입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오직 우리가 인식하는 자신과 달라질 기회를 스스로에게 허락할 때, 우리가 정말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히 믿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정체성 내면의 한 부분이 드러납니다.⌟(p.97)

이 말하는 책은,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다. 즉, 나의 욕망에 따라 책의 내용이 바뀌게 되고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내재 되어있는 욕망이 나를 ‘바 없는 바’로 이끌어 준다. 그리고 그 새로운 경험은 나를 새로운 인생으로 이끈다.

⌜“그건 그렇고, 젊은이는 이름이 뭐지?”
“벤 슈워츠먼이요.” 벤이 말했다.
“으흠, 이제 인생이 바뀌게 되었네. 벤 슈워츠먼. 따라오게. 술병 가지고.”⌟ (p.122)

⌜“넌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말해주고 싶지만, 아무리 잘 전달해 봐야 그런 설명이 완전한 경험을 전달하는 데는 패하리라는 걸 알고 있어. 그 색채며 냄새, 흥분, 어쩌면 혼란까지 아무것도 전할 수 없겠지. 세상에는 말로 전할 수 없는 것들이 있거든. 하지만 울프는 한 사람의 정신에서 다른 사람의 정신으로 경험을 옮기는 방법을 발견한 거야.”⌟ (p.130)

여기에서 파는 술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담은 술이다. 이야기로 전해줄 수 없는 것을 술을 통해 체감을 넘어 체득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 술의 진짜 목적은 쾌락을 위한 경험이 아닌 경험을 통한 삶의 변화이다. 그렇기에 이 술은 ‘경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간접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책’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경험자’의 경험이라는 지름길을 선택할지 아니면 스스로 경험 해 나갈지도 결국은 나의 선택일 것이다.

⌜“경험은 완전히 다른 문제야. 경험은 사람을 변화시키니까. 우리가 파는 것도 그런 거란다. 정보가 아니라 변화.”⌟ (p.134)

나는 책의 끝 부분에 있는 ‘감사의 말’을 읽다가 불현듯 책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진짜 작가는 누구인가? 요아브가 위스키를 마신 뒤, 그 경험을 쓴 글인가? 이것은 감사의 말일까, 아니면 이 역시 책의 일부분일까? 감사의 말이 나에게는 암호를 해독하는 것과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이 떠올랐는데, 혹시 원작자가 오르한 파묵은 아닐까? 하는 나만의 해독을 해본다. 여러분도 직접 이 책의 암호해독에 참여해보시기를 권한다.


⌜모든 책은 암호를 해독하는 암호다.
책이 암호인 이유는 아무도 그 책이 쓰인 방식대로 정확하게 그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조금씩 다르게 읽는다. (...)

15년이 흐른 뒤, 나는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내가 내 이름으로 이 책을 출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이 통하려면 누군가가 자신의 등 뒤에 기꺼이 나를 숨겨 주어야 했다. 내가 작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이 바로 그 사람에게로 나를 연결해 주었고, 그 사람이 결국 그 일을 맡아 주었다. (...)

모두에게 이 책이 자기 것이라고 말해주기로 한 요아브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 (p.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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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제인 오스틴 지음, 송은주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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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북에서 출간한 첫사랑 컬렉션 <설득>, <순수의 시대>, <위대한 개츠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나는, 제이나이트로서, <설득>을 집어 들었다. 윌북 첫사랑 컬렉션은 현대의 감수성으로, 이 시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문화적 차이로 발생했던 존칭등의 오해나, 차별적인 언어 등이 사라져 읽는 데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 없이 잘 읽혔다. 다만, 성별을 표현해주는 ‘그’와 ‘그녀’의 표현도 모두 ‘그’라고 칭해서 여러 등장인물이 나오는 소설에서는 혼동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제이나이트 중 한 명으로 내가 생각하는 제인 오스틴 소설이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읽힐 수 있는 것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스토리 라인이 아니다. 바로 연애와 결혼에 흐르는 당대의 관습에 의문을 갖는 한 사람이 주체적으로 그려내는 삶과, 그 마음을 꺼내 펼쳐 보여주는 듯한 제인 오스틴의 문장이다. 이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 했던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없는 그녀의 환경에서 택할 수 있던 가장 적합한 소재가 아니었을까? 그녀만의 탁월한 관찰력과 통찰력덕에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읽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에서 최근 공개한 <설득>은 두 가지 모두를 잃고 영상미와 현대성만을 추구한 것 같아 아쉬웠다.

이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라면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데 걸린 시간, 8년”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 사람이 상대방의 마음을 깨닫고, 그 전에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사회의 시선과 타협하거나 이겨내기로 결정하고, 그에 따른 결과까지 감내하기로 확신하는 일. 앤 엘리엇의 8년은 그런 시간이었다. 단순히 가난하고 전망 없는 남자라는 반대로, 실연의 아픔과 미련으로 보낸 8년이 아니었다.

<설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제인 오스틴 그녀의 분신으로 보이는 작중 주인공이 <노생거 사원>이나 <이성과 감성>과 같은 초창기 소설들보다 성숙한 모습을 가진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오해가 난무하고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주인공이지만 앤은 가정의 여건, 사회적 여건들을 생각하여 그러나 여전히 주체적으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번역은 현대적으로 했더라도 기-승-전-결혼 이라는 결말이 바뀔 수는 없는데,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되 당대의 작품을 결말만 가지고 현대의 시각으로 평가하지는 말자. 앞서 말했듯이 제인 오스틴은 결말 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작품이니.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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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19
제프리 초서 지음,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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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제프리 초서 /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캔터베리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뜻깊은 책이다. 대학 때 발췌문으로 조금 밖에 접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 우리나라에서 번역본으로 만날 수 있다니. 덕분에 대학교 때 친구들도 생각나고 공부하던 내가 좋아하던 사전 질감의 두꺼운 영미시 개론 책도 생각난다. 언어의 다름 때문에 각운을 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 같은데 그래도 간혹 보이는 ‘라임‘과 유수하고 맛깔나는 번역 덕분에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다.


1800년대의 영국 작품이다보니, 시대와 문화를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는데, 각주가 제일 뒷부분에 따로 실려있어서 이 점은 조금 불편했는데, 이 부분을 복사해서 옆에 두고 같이 읽으니 이해가 더 잘 되었다.



전체 서문


4월의 달콤한 소나기가

3월의 메마른 뿌리까지 뚫고 들어가

줄기마다 물기로 촉촉하게 적셔

그 힘으로 꽃이 피어나던 때였습니다.

서풍이 향긋한 숨결로

온 숲과 들판에 생명을 불어넣어

보드라운 새싹이 돋아나던 때였지요.

젊은 태양은 양자리를 반쯤 돌았고

자연 때문에 마음 설레던

작은 새들은 모두 노래하며

뜬눈으로 온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순례길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순례자들은 외국으로,

여러 나라에 알려진 먼 성지를 찾게 되지요. (p.9)



이렇게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켓을 기리는 성지 순례를 떠나는 30여명의 사람들이 런던의 어느 여관에 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관집 주인의 제안으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들려주는 24가지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상)권에는 12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있다. 내기 형식으로 돌아가며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그들의 여정에 합류한다.



첫 부분에는 돌아가며 이야기하기에 앞서 화자가 인물들을 하나씩 소개한다. 그의 관점에서 본 인물들과, 인물들이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귀족, 성직자, 평민, 학생등 다양한 신분의 인물들이 각자 가지고 온 이야기들을 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당대의 각각의 사회적 신분에 따른 이야기의 차이, 그리고 도드라지게 성직자들의 부패함이 묘한 위트와 함께 드러난다. 이 부분이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마치 우리나라 놀이패들이 거리에서 공연을 할 때 하던 이야기들처럼, 인간의 저속한 욕구들이 난무한다.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는 당시 남자 작가가 쓴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의 통속적이면서, 여성을 독립적인 주체로 그리고 있어서 당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혔을지 궁금해졌다. 타임슬립 해서 몰래 엿보고 오고 싶었을 정도. 바스에서 온 부인의 이야기처럼, 어떤 남자도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었을까?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야기를 시작하실 거면

어떤 남자도 신경 쓰지 말고 마음 놓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아주머니가 어떻게 하셨는지 한수 가르쳐 주세요

"라고 면죄부 판매인이 말했다.

"그러고말고요. 원하신다면 말이죠.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할게요.

제가 만약 제 맘 가는 대로 이야기하더라도

기분 나빠 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저 재미있자고 하는 것이 제 의도이니까요.

여러분, 이제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포도주를 마시건 에일 맥주를 마시건

저는 진실만을 말씀드릴 겁니다.

제가 결혼했던 남편들 가운데

세 명은 착했고 두 명은 나쁜 놈이었지요.

그 세 명은 착하고 돈도 많고 나이도 많았어요.

그들은 저에게 갚아야 할 빚을

갚을 능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다 아시죠 어휴, 환장하죠!

그러니 어쩌겠어요.

밤이면 남편들을 얼마나 진땀 흘리게 만들었는지

그 생각을 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네요.

하지만 제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저한테 땅도 주고 재산도 주었으니까요.

저는 남편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고

존경할 필요도 없었어요. (p.284-285)

바스에서 온 부인의 이야기


번역의 힘 덕분인지, 이야기의 힘인지 끝까지 막힘없이 술술 재미있게 읽었다. 많은 분들이 어렵게 생각말고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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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인간입니까 - 인지과학으로 읽는 뇌와 마음의 작동 원리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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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것은 인간입니까>
엘리에저 J. 스턴버그 / 심심

생각, 마음, 즉 의식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걸까?

우리의 몸과 같이 감각을 느끼는 몸의 체계와, 우리의 뇌와 같이 정보를 처리하는 뇌를 만들어 나와 똑같은 형체의 무언가를 만든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나일까? 그것은 내가 아니고 오로지 나만이 ‘나’라면, 과연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책은 과학적 논제인 것 같은 질문에 대해 때로는 철학적으로, 때로는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또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두루 살펴본다. 관념론, 이원론, 유물론등의 관점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어 단순히 어떤 하나의 논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저자는 우리를 생각으로 초대한다.

📖 이 책의 목표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들을 꼼꼼하게 다루고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의식의 어떤 부분이 불가사의인지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독자들이 스스로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던져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자들이 마음과 뇌를 둘러싼 아주 흥미로운 대화에 참여하기를 독려한다. (p.246)

나와 똑같은 복제인간인 레플리카는 내 기억까지 가지고 있고, 그 레플리카는 자신이 ‘나’라고 믿는다. 이것은 나인가?또 다른 경우로, 나의 뇌의 아주 작은 부분을 기존의 것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다른 물질로 바꿔치기하고, 점점 더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결국 나의 몸 전체가 대체된다. 나는 이전과 똑같다고 느낀다. 나의 정체감이 온전하며 나는 수술 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렇다면 이것은 나인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기계와 우리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추론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알고리즘이 아닌 추론능력. 하지만, AI가 딥러닝을 하듯이 사람도 어린시절부터 수년, 수십년동안 학습을 한다. 인간이 이렇게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인간이어서 고유하게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험, 즉 무수한 데이터의 축적을 통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비헤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아는 일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책을 읽어나가면서 가장 의문이 들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계도 사람처럼 실수하고 헷갈리거나 변덕을 부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결점'이 인간의 고유함을 증명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미' 말이다.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의 뇌와 같이 학습하고 작용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아주 먼 미래에는 우리의 몸과 같이 감각하고 반응하는 유기체일지 기계일지 모를 그 무엇을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기엔 윤리적인 문제가 존재하지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인류는 경제적 이득이 있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키므로 이 기술이 돈이 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언젠가 우리와 똑같은 존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클라라와 태양>에서 A.F. (artificial friend)에게 자신의 딸과 똑같은 외모를 만들어 자신의 딸이 병으로 죽었을 때를 대비했던 엄마처럼, 그리고 딸이 무사히, 건강히 성인이 되었을 때 클라라를 유기했던 그녀처럼 그들과 우리를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저자가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논쟁의 답을 찾는 것 보다는 이 문제 그 자체로도 매력이 넘치는 이야기였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구체화 시켜주어 저자가 마지막에 자신의 견해를 밝혔듯이 이제 내 생각을 정리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읽고 나서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토론이 하고 싶어졌다. 이 책이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듯이 누군가와 이 책을 읽고 같이 토론을 한다면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목표는 이 논쟁이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문답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신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p.012)


이 책에서는 기계를 물리적인 각각의 부분이 상호작용하여 형성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도록 하자. (p.017)


그 기계가 우리의 뇌와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물리적으로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처럼 생각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처럼 느낀다고 할 수 있을까? (...) 그렇다면 그 기계 또한 의식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p.018)


뇌가 없으면 의식도 없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할 테지만, 뇌는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의식이 있는 상태로 만드는 걸까? 사람들은 어떻게 저마다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 자기 (self)란 대체 무엇일까? 자유의지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p.019)


의식의 주요한 특징 – 언어와 이해 능력, 자기와 자유의지, 정서를 경험하는 능력


여기에서 의식의 또 다른 두 가지 특성이 드러난다. 바로 자기와 자유의지다. 자기란 생각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주체로서,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곧 자신의 정체성이며, ‘나’라고 말할 때 지칭하는 대상이다. 자유의지란 자신의 생각과 신체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p.30)


가령 ‘분리 뇌 수술’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수술은 뇌의 두 반구 사이를 이어주는 신경섬유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간혹 환자의 마음이 두 개가 되는 경우, 즉 자기가 두 개가 되는 경우도 발행한다. 뇌의 좌우 반구가 이어져 있을 때처럼 어느 한쪽이 다른 쪽 반구에 종속당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각기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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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초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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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스 / 을유문화사

이기적 유전자』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 『마법의 비행』은 동물의 비행 원리를 진화 과정과 과학적 증거를 통해 설명한다. 날개가 있는 조류와 곤충에서부터 날개가 있다가 없어진 동물들, 날개가 없지만 날고자 하는 모든 비행체를 다룬다. 그리고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삽화가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위트있게 책의 이해를 돕는다.

나에게 날개 달린 것들 중에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은 철새였다. 어떻게 지구 반대편까지 매년 정확히 날아와 머물다 갈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왜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인지. 저자는 나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과 증명을 제시하며 설명해준다. 심지어 새들은 작년에 만들어 두었던 둥지까지 정확히 찾아올 수 있다고 한다. 지리적 이정표를 이용하거나 별자리를 이용하거나,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하거나, 태양의 호를 이용하거나 하는 등의 그들만의 지도가 존재한다. 통신수단이 존재하지 않았을 시절에 비둘기로 편지를 주고 받았던 일이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새들의 지도 설명을 듣고나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부분이었다.

개미의 조상은 날개 달린 말벌이었다. 현대 개미는 진화 과정에서 날개를 잃었다. 일개미의 부모, 즉 어미와 아비 개미들은 날개가 있었다. 모든 일개미는 여왕의 유전자들을 온전히 다 지니고 있는 불임 암컷이며, 다르게 키워졌다면, 즉 여왕을 키우는 방식으로 키워졌다면 날개가 돋았을 것이다. (.p.62)


나는 작년 봄쯤에 집 앞 화단에서 여왕개미로 보이는 큰 개미 한 마리가 스스로 날개를 떼는 광경을 목격했다. 얘는 대체 왜 이러는걸까? 하며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나중에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니 신혼비행을 마친 여왕개미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날개를 떼어내고 땅속으로 들어가 알을 낳을 곳을 찾으러 간다는 것이었다. 개미가 일개미와 여왕개미로 나뉘어지는 과정에서 일개미는 날개를 만들지 않고, 여왕개미는 날개를 만드는 것. 그리고 필요 없어진 날개는 떼어버린다는 것. 이런 자연의 현상들이 굉장히 신비로웠다.

식물의 날개도 매우 흥미로웠는데, 스스로는 날개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가지지 못했지만, 식물은 동물이나 바람을 이용해 멀리 멀리 날아간다. 벌과 나비가 데리고 가는 꽃가루, 바람이 날려주는 그리고 가끔은 사람들이 재미로 후후 불어 날리기도 하는 민들레 홀씨. 어릴 때 단풍 잎에서 똑 떼어 하늘 위로 던지면 프로펠러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던 단풍나무 씨앗.

사람은 식물, 동물, 심지어 바람에서도 힌트를 얻어 끊임없이 날고자 한다. 사람은 어째서 날개도 없으면서 그토록 날고 싶어 했을까?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우위에 있고 싶은 욕망 중 하나였을까? 고도 측면에서 보나, 이동의 편리성에서 보나 난다는 것은 무언가를 점령하기에 최고의 위치를 선사한다. 비행은 이렇게나 유리한 것인데 어째서 우리는 날개가 없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 것일까? 인간들의 비행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날개가 있는 쪽으로 진화하지 않을까? 정말 언젠가의 먼 훗날에는 사람의 어깨에 날개가 돋아나는 일이 가능할까?

분명한 건, 우리의 상상력에 돋은 날개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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