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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 상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9
제프리 초서 지음,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평점 :
<캔터베리 이야기>
제프리 초서 /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캔터베리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뜻깊은 책이다. 대학 때 발췌문으로 조금 밖에 접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 우리나라에서 번역본으로 만날 수 있다니. 덕분에 대학교 때 친구들도 생각나고 공부하던 내가 좋아하던 사전 질감의 두꺼운 영미시 개론 책도 생각난다. 언어의 다름 때문에 각운을 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 같은데 그래도 간혹 보이는 ‘라임‘과 유수하고 맛깔나는 번역 덕분에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다.
1800년대의 영국 작품이다보니, 시대와 문화를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는데, 각주가 제일 뒷부분에 따로 실려있어서 이 점은 조금 불편했는데, 이 부분을 복사해서 옆에 두고 같이 읽으니 이해가 더 잘 되었다.
전체 서문
4월의 달콤한 소나기가
3월의 메마른 뿌리까지 뚫고 들어가
줄기마다 물기로 촉촉하게 적셔
그 힘으로 꽃이 피어나던 때였습니다.
서풍이 향긋한 숨결로
온 숲과 들판에 생명을 불어넣어
보드라운 새싹이 돋아나던 때였지요.
젊은 태양은 양자리를 반쯤 돌았고
자연 때문에 마음 설레던
작은 새들은 모두 노래하며
뜬눈으로 온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순례길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순례자들은 외국으로,
여러 나라에 알려진 먼 성지를 찾게 되지요. (p.9)
이렇게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켓을 기리는 성지 순례를 떠나는 30여명의 사람들이 런던의 어느 여관에 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관집 주인의 제안으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들려주는 24가지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상)권에는 12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있다. 내기 형식으로 돌아가며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그들의 여정에 합류한다.
첫 부분에는 돌아가며 이야기하기에 앞서 화자가 인물들을 하나씩 소개한다. 그의 관점에서 본 인물들과, 인물들이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귀족, 성직자, 평민, 학생등 다양한 신분의 인물들이 각자 가지고 온 이야기들을 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당대의 각각의 사회적 신분에 따른 이야기의 차이, 그리고 도드라지게 성직자들의 부패함이 묘한 위트와 함께 드러난다. 이 부분이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마치 우리나라 놀이패들이 거리에서 공연을 할 때 하던 이야기들처럼, 인간의 저속한 욕구들이 난무한다.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는 당시 남자 작가가 쓴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의 통속적이면서, 여성을 독립적인 주체로 그리고 있어서 당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혔을지 궁금해졌다. 타임슬립 해서 몰래 엿보고 오고 싶었을 정도. 바스에서 온 부인의 이야기처럼, 어떤 남자도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었을까?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야기를 시작하실 거면
어떤 남자도 신경 쓰지 말고 마음 놓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아주머니가 어떻게 하셨는지 한수 가르쳐 주세요
"라고 면죄부 판매인이 말했다.
"그러고말고요. 원하신다면 말이죠.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할게요.
제가 만약 제 맘 가는 대로 이야기하더라도
기분 나빠 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저 재미있자고 하는 것이 제 의도이니까요.
여러분, 이제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포도주를 마시건 에일 맥주를 마시건
저는 진실만을 말씀드릴 겁니다.
제가 결혼했던 남편들 가운데
세 명은 착했고 두 명은 나쁜 놈이었지요.
그 세 명은 착하고 돈도 많고 나이도 많았어요.
그들은 저에게 갚아야 할 빚을
갚을 능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다 아시죠 어휴, 환장하죠!
그러니 어쩌겠어요.
밤이면 남편들을 얼마나 진땀 흘리게 만들었는지
그 생각을 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네요.
하지만 제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저한테 땅도 주고 재산도 주었으니까요.
저는 남편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고
존경할 필요도 없었어요. (p.284-285)
바스에서 온 부인의 이야기
번역의 힘 덕분인지, 이야기의 힘인지 끝까지 막힘없이 술술 재미있게 읽었다. 많은 분들이 어렵게 생각말고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