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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평점 :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 푸른숲
⌜일단, 신뢰를 좀 쌓읍시다.
당신은 아직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최소한 신발은 벗었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당신은 한 손으로 이 책을 들고 다른 팔로는 머리를 괴고서 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제는 의구심이 들지요?⌟ (p.9)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렇다면, 내가 책 속의 책인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를 언제 어디서 펼쳤는지에 따라 내용이 바뀐단 말인가?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지 않았을까? 그러면 또 책은 얘기할까? 그렇게 둘러봐도 아무 소용 없다고. CCTV 같은 건 없다고. 나는 너의 마음속에 있다고.
우연히 산 책이 나에게 능동적으로 말을 걸어온다면,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게 될까? 이런 이야기는 믿지 않아도, 그냥 무시하기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에 나의 인생을 맡기기로 선택할 것인가?
⌜우리가 ‘나’라고 말할 때의 ‘나’가 무엇인지,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 그 무엇보다도 우리 내면의 변화입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오직 우리가 인식하는 자신과 달라질 기회를 스스로에게 허락할 때, 우리가 정말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히 믿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정체성 내면의 한 부분이 드러납니다.⌟(p.97)
이 말하는 책은,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다. 즉, 나의 욕망에 따라 책의 내용이 바뀌게 되고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내재 되어있는 욕망이 나를 ‘바 없는 바’로 이끌어 준다. 그리고 그 새로운 경험은 나를 새로운 인생으로 이끈다.
⌜“그건 그렇고, 젊은이는 이름이 뭐지?”
“벤 슈워츠먼이요.” 벤이 말했다.
“으흠, 이제 인생이 바뀌게 되었네. 벤 슈워츠먼. 따라오게. 술병 가지고.”⌟ (p.122)
⌜“넌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말해주고 싶지만, 아무리 잘 전달해 봐야 그런 설명이 완전한 경험을 전달하는 데는 패하리라는 걸 알고 있어. 그 색채며 냄새, 흥분, 어쩌면 혼란까지 아무것도 전할 수 없겠지. 세상에는 말로 전할 수 없는 것들이 있거든. 하지만 울프는 한 사람의 정신에서 다른 사람의 정신으로 경험을 옮기는 방법을 발견한 거야.”⌟ (p.130)
여기에서 파는 술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담은 술이다. 이야기로 전해줄 수 없는 것을 술을 통해 체감을 넘어 체득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 술의 진짜 목적은 쾌락을 위한 경험이 아닌 경험을 통한 삶의 변화이다. 그렇기에 이 술은 ‘경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간접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책’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경험자’의 경험이라는 지름길을 선택할지 아니면 스스로 경험 해 나갈지도 결국은 나의 선택일 것이다.
⌜“경험은 완전히 다른 문제야. 경험은 사람을 변화시키니까. 우리가 파는 것도 그런 거란다. 정보가 아니라 변화.”⌟ (p.134)
나는 책의 끝 부분에 있는 ‘감사의 말’을 읽다가 불현듯 책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진짜 작가는 누구인가? 요아브가 위스키를 마신 뒤, 그 경험을 쓴 글인가? 이것은 감사의 말일까, 아니면 이 역시 책의 일부분일까? 감사의 말이 나에게는 암호를 해독하는 것과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이 떠올랐는데, 혹시 원작자가 오르한 파묵은 아닐까? 하는 나만의 해독을 해본다. 여러분도 직접 이 책의 암호해독에 참여해보시기를 권한다.
⌜모든 책은 암호를 해독하는 암호다.
책이 암호인 이유는 아무도 그 책이 쓰인 방식대로 정확하게 그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조금씩 다르게 읽는다. (...)
15년이 흐른 뒤, 나는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내가 내 이름으로 이 책을 출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이 통하려면 누군가가 자신의 등 뒤에 기꺼이 나를 숨겨 주어야 했다. 내가 작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이 바로 그 사람에게로 나를 연결해 주었고, 그 사람이 결국 그 일을 맡아 주었다. (...)
모두에게 이 책이 자기 것이라고 말해주기로 한 요아브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 (p.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