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를 위한 변론
송시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서평단(100인의 변론단) 활동을 통하여 가제본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 서평

가볍고 경쾌한 템포의 소설집이다. 수록작 중 [인어의 소송]과 [선녀를 위한 변론]은 각각 '인어공주'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고전 작품을 비튼 현대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소설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유독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와 [모서리의 메리]였다. 두 작품 모두 강아지가 중요도 높은 조연(이자 해결사)으로 등장하는데, 강아지의 따스함과 인간의 따스함을 둘 다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래는 각각의 소설에 대한 코멘트다.

[인어의 소송] _ 인어공주 이야기를 비틀어서 탄생한 소설이다. '바다 마녀와 인어의 계약은 불공정 계약이다'라는 현대적 시선이 독특했다. 왕자를 '낭만적인 결혼만이 진정한 결혼이다'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로 설정한 점이 웃겨서 기억에 남는다.

[선녀를 위한 변론] _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비틀어서 탄생한 소설이다. 어릴적부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읽으며 '선녀가 무척 가엾다'라고 생각해왔었는데, 그 지점을 제대로 꼬집은 소설을 읽을 수 있어 즐거웠다.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 _ 직장 동료를 데이트 폭력의 늪에서 나오게 해주고자 분투하는 매력적인 여성 히어로 주인공 나오는 소설이다. 여성이 여성을 구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아름답다. 주인공의 반려견 '타미'의 활약이 돋보인다.

[모서리의 메리] _ '개'라는 종의 천선적 무구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모서리를 좋아하는 강아지 메리가 특유의 선함으로 살인을 막는 이야기다. 참 따듯한 이야기. (사람에 대한 선한 기대가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_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을 근간으로 하는 소설이다. 실제 사건이 뚜렷하게 연상되는 소설이라서 개인적으로는 잘 맞지 않았다. 작가의 말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니, 살인 사건에 잠재된 '악'에 대하여 오래도록 고민하신 흔적이 엿보였다.

무겁지 않은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문장 수집

📎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여자에게 가장 위험한 곳은 집이다. (p. 139)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해요. 사람도...... 개도...... 종을 초월해서. 불안은요. 존재의 안식을 빼앗죠......." (p. 1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래빗홀클럽 1기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수록작 서평

✒️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제목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샘플북에 수록된 인터뷰를 읽어보니, 논문과 웹소설의 제목 스타일을 참고하셨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듣고보니 논문 제목 같기도 하고 웹소설 제목 같기도 한 게 재미있는 지점이다.

소설에서는 육아 노동과 육아의 삶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거대한 분노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를 전달하는 방식이 마냥 거칠거나 직설적이지는 않다.

소설은 주인공 '미주'가 젖병 소독(기능만을 가진) AI인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를 만나며 일어나는 일화를 그려낸다. 소설 전반에 걸쳐서 육아 노동과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내제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화'를 그려내고 있는 소설로서의 소소한 분위기가 유지된다. 그 소소함 속에서 사람이 AI에게 가지는 애정에 대한 이야기도 적어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에 가장 초점을 맞추어서 소설을 감상했다.

소설 속 '미주'는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에게 정을 주게 되고, 그에 대하여 혼란스러워 한다. AI에게 정을 주는 '미주'를 보며 여러 이야기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로봇 군견에게 애정을 준 군인의 이야기나, 로봇청소기에게 이름을 붙이며 애정을 준 뭇사람들의 이야기. 인간은 정을 쉽게 주는 존재이다. 그게 로봇이나 AI일지라도 예외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AI가 사람에게 친숙한 형태로 나타난다면 누구나 AI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오래도록 믿어온 사람이고, 이 소설은 이러한 나의 가치관과 닮아있는 소설이다.

📎 사람에겐 자신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힘이 없다. - 샘플북 p. 72



✒️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제목의 '황새'는 소설 속 '황새영아송영' 서비스를 의미한다. '황새영아송영' 서비스란, 부모와 아이의 장거리 이동을 돕는 육아 보조 서비스를 말한다.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준다'라는 K-정서를, 이러한 판타지적 형태로 구상화한 점이 무척 사랑스러운 부분이라고 느꼈다.

소설의 주인공 '혜인'은 자신의 어린 딸(분유를 먹을 정도로 어린 딸) '이안'을 키우고 있다. 남편은 외국에 있어 혼자 육아를 하는 상황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악재가 겹쳐서 딸과 긴 거리를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자신의 딸 '이안'과 함께 서비스를 이용한다.

소설에는 '혜인'이 가진 육아 노동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소설은 그러한 언어들을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거칠게 적는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듯한 현실적인 문장들이 많았다. 만약 내가 육아를 겪은 여성이었다면, 함께 진심으로 분개하며 읽을 수 있을 그런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같은 여성의 고충을 머리로만 이해한다는 것이 미안할 때가 종종 있다.)

📎 세상에 태어나 겨우 100일 남짓 살아본 사람과 엄마로 겨우 100일 남짓 살아본 사람 둘이서 다 알아서 해야 했다. 이 어설픈 일상에 무슨 풍파가 닥치건 간에 말이다.

📎 제가 마주치는 일상의 신비예요. 아기가 왜 우는지는 오로지 울고 있는 그 아기만이 알 수 있다는 점이요. 그렇게 조그만 인간에기도 혼자서만 겪어야 하는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 걸까요? 불쾌하거나 아픈 곳이 없는데도 울음을 그칠 수 없다면, 그 원인은 아기의 마음속에 있을 테죠. 아니면 울고 있는 자신도 왜 우는지 몰라 무서워 우는 것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민함의 힘 - 세상을 다르게 감지하는 특별한 재능
젠 그랜만.안드레 솔로 지음, 고영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서포터즈 활동을 통하여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 서평

책은 '예민'의 범위를 넓게 보며 예민함을 가진 여러 형태의 사람들을 분석한다. 예민함이라는 것은 사람의 고유 기질이고, 그것은 결국 '세상을 다르게 감지하는 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예민하다'라는 말이 통상 긍정적으로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 저자 또한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통상적 인식 속에서 저자는 예민함을 단점으로만 보는 행위를 부정한다. 관점을 바꾼다면 예민함을 충분히 장점으로 볼 수 있다는 반복적 선언이 이어진다.

어디까지나 이분법적으로, '예민'과 '둔감' 중 하나로 나를 표현해보자면 난 둔감한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9월 활동 도서로 이 책을 고른 이유도, 나 자신이 예민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나와는 다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의 세상을 엿보고 또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확실히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들이 넘치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예민한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이 책을 '예민함에 대한 찬미'와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처방'을 갖춘 책이라고 정리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창비 소설Y 클럽 9기 활동을 통하여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속에서 오직 최종장의 로맨스를 위하여 꿋꿋하게 달려가는 소설이다. '못된 세상 속에서도 결국 사람을 살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라는 다소 뻔한 내용을 매력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흥미롭게 전개한다. 웹툰으로 이미지화하며 읽는 것이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은 일곱 명이 신체 하나를 하루씩 돌아가며 사용하는 '인간 7부제'가 보급화된 세계관을 그린다. 이러한 세계관을 위하여 부가적으로 붙은 설정들이 탄탄하다. 개개인의 사용 물건은 하루마다 반납하고 대여해야 한다거나, 신체 하나를 공유하는 일곱 명의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등의 설정들이 그것이다. '인간 7부제'라는 독특하고(어찌보면 어렵고 복잡하고 괴랄한) 세계관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하여 여러모로 고심한 흔적들이 엿보였다.

주인공 '현울림'은 자신의 신체 메이트 '강지나'의 계략에 빠져 몸을 잃게 되지만, '강지나'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불법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몸을 얻는다. 즉 이 소설은 '현울림'의 복수극이다. '현울림'은 복수 과정에서 옛 사랑 '무재(이자 강이룬)'를 만나게 되는데, 옛 사랑을 현재진행형의 사랑으로 만들고자 서로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사람의 로맨스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이 급하게 진행된다고 느낀 점이다. 소설의 전체적 완급이 개인적인 취향에는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후반부에 폭풍우처럼 이야기가 한꺼번에 몰아치는 흐름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오히려 좋게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력적인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어 마이 버디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7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서평단 활동을 통하여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 서평

1

장은진 소설가의 첫 청소년 장편 소설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을 읽으며 '비정돈에서 오는 기분 좋은 풋풋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모로 정공법을 사용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인상이다. 이 소설의 특징인지, 장은진 소설가의 특징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장은진 소설가의 소설은 처음 읽어 본다.)

소설은 기후위기로 해수면이 올라가 바다가 모든 것을 삼킨 세계관을 묘사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바다는 어쩐지 아이들에게 다정한 면모가 있다. '바다'를 디스토피아의 소재로 사용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다정한 존재로 묘사하기도 한다는 점이 매력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2

제목에 적힌 '버디'의 의미는 소설 초반부에 밝혀진다. "물속에서 나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지 않게 다이빙을 하며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짝. (p. 36)" 바다가 모든 것을 삼킨 세계관 속에서 '버디'만큼 소중한 관계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디어 마이 버디』의 세계처럼 바다에 잠겨있지 않다. 하지만 다들 저마다의 재난에서 헤엄치며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 재난의 세계 속에서 나의 '버디'는 누굴까, 나는 누군가의 '버디'로 남아줄 수 있을만한 사람일까, 라는 질문을 묻기도 했다. 누군가의 '버디'로 남아줄 수 있을 사람이 되기 위하여 더욱 열심히 '읽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게 최종 결론이다.

3

개인적으로 작가의 말이 무척이나 좋았다. 기교나 추상 하나 없이, 정말 담백하고 순수한 작가의 마음만이 담겨있다. 작가의 말 때문에 소설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갈 정도로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