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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평점 :
📓 래빗홀클럽 1기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수록작 서평
✒️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제목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샘플북에 수록된 인터뷰를 읽어보니, 논문과 웹소설의 제목 스타일을 참고하셨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듣고보니 논문 제목 같기도 하고 웹소설 제목 같기도 한 게 재미있는 지점이다.
소설에서는 육아 노동과 육아의 삶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거대한 분노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를 전달하는 방식이 마냥 거칠거나 직설적이지는 않다.
소설은 주인공 '미주'가 젖병 소독(기능만을 가진) AI인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를 만나며 일어나는 일화를 그려낸다. 소설 전반에 걸쳐서 육아 노동과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내제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화'를 그려내고 있는 소설로서의 소소한 분위기가 유지된다. 그 소소함 속에서 사람이 AI에게 가지는 애정에 대한 이야기도 적어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에 가장 초점을 맞추어서 소설을 감상했다.
소설 속 '미주'는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에게 정을 주게 되고, 그에 대하여 혼란스러워 한다. AI에게 정을 주는 '미주'를 보며 여러 이야기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로봇 군견에게 애정을 준 군인의 이야기나, 로봇청소기에게 이름을 붙이며 애정을 준 뭇사람들의 이야기. 인간은 정을 쉽게 주는 존재이다. 그게 로봇이나 AI일지라도 예외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AI가 사람에게 친숙한 형태로 나타난다면 누구나 AI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오래도록 믿어온 사람이고, 이 소설은 이러한 나의 가치관과 닮아있는 소설이다.
📎 사람에겐 자신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힘이 없다. - 샘플북 p. 72
✒️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제목의 '황새'는 소설 속 '황새영아송영' 서비스를 의미한다. '황새영아송영' 서비스란, 부모와 아이의 장거리 이동을 돕는 육아 보조 서비스를 말한다.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준다'라는 K-정서를, 이러한 판타지적 형태로 구상화한 점이 무척 사랑스러운 부분이라고 느꼈다.
소설의 주인공 '혜인'은 자신의 어린 딸(분유를 먹을 정도로 어린 딸) '이안'을 키우고 있다. 남편은 외국에 있어 혼자 육아를 하는 상황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악재가 겹쳐서 딸과 긴 거리를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자신의 딸 '이안'과 함께 서비스를 이용한다.
소설에는 '혜인'이 가진 육아 노동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소설은 그러한 언어들을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거칠게 적는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듯한 현실적인 문장들이 많았다. 만약 내가 육아를 겪은 여성이었다면, 함께 진심으로 분개하며 읽을 수 있을 그런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같은 여성의 고충을 머리로만 이해한다는 것이 미안할 때가 종종 있다.)
📎 세상에 태어나 겨우 100일 남짓 살아본 사람과 엄마로 겨우 100일 남짓 살아본 사람 둘이서 다 알아서 해야 했다. 이 어설픈 일상에 무슨 풍파가 닥치건 간에 말이다.
📎 제가 마주치는 일상의 신비예요. 아기가 왜 우는지는 오로지 울고 있는 그 아기만이 알 수 있다는 점이요. 그렇게 조그만 인간에기도 혼자서만 겪어야 하는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 걸까요? 불쾌하거나 아픈 곳이 없는데도 울음을 그칠 수 없다면, 그 원인은 아기의 마음속에 있을 테죠. 아니면 울고 있는 자신도 왜 우는지 몰라 무서워 우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