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
박순주 지음 / 정은문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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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낸다는 것


박순주 저,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를 읽고


처음 들어보는 '진보초'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이었을까? '거대한 서점'이라는 수식어구 때문이었을까? 나의 궁금증은 결국 이 책을 구하게 만들었다. 밀린 것들을 처리하고 마침내 여유가 생긴 날,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장에 꽂힌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어나갔다. 다 읽고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흥미로웠다는 것. 다른 하나는 부러웠다는 것. 어부지리로 진보초라는 곳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동경도 생겨버렸다. 


먼저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백여 군데가 넘는 고서점들이 밀집된 지역이 21세기 오늘날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는 나는 어떤 형태로든 오프라인 서점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 외국 여행을 할 때에도 근처에 서점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구경하려 애쓴다. 생소한 언어라도 상관없다. 그 어떤 언어로 쓰였다 하더라도 책은 책이기 때문이다. 책은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는 고유한 그 무엇이며, 단순한 텍스트가 적힌 종이 묶음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 책이 특히 놀라웠던 점은 우리가 흔히 (아니, 이제는 가끔이라고 해야겠지…) 보는 동네서점처럼 신간 위주로 판매하는 서점도 아니고,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종종 방문하여 책에 대한 환상과 책 냄새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던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처럼 중고책을 주로 판매하는 서점도 아닌, 오래된 책, 즉 고서를 위주로 판매하는 서점이 백 군데도 넘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골동품, 엔틱, 진귀품이라 불러도 좋을, 오래전에 출간된 책들이, 다시 말해 절판된 지도 이미 오래된 책들이 버려지지 않고 그것들만의 역사를 머금은 채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팔릴까, 이 고서점 주인장들은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있을까, 등의 여러 가지 질문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확인하고 감동한 건 그들의 사명의식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그 책들을, 그 책들이 모인 고서점들을, 그 고서점들이 밀집된 진보초를 지켜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인터넷 발달로 인해 온라인 판매와 전자책의 보급으로 고서점만이 아닌 세계 모든 서점들이 예전보다 경기가 나빠졌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일 텐데도 그들은 지금도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면서도 빈틈을 찾아내는 전략으로 이 아름다운 유산들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문화 및 사명의식이기에 나는 흥미롭다는 인상을 넘어 고결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부럽다는 생각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셰어형 서점'이라는 컨셉이 인상적이었다. 서점에 들어가면 수많은 책장들이 손님들을 반긴다. 보통 모든 책장들은 그 서점의 소유다. 그러나 '셰어형 서점' 안에 위치한 책장들은 각기 다른 주인을 가진다. 일정 기간 대여하여 원하는 책들을 진열하고 판매할 수 있는 형식인 것이다. 일인 출판사나 뜻이 있는 작가 등 누구나 자기만의 서점을 가질 수 있는 셈이다. 책의 유통구조가 한국에선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이 독특한 컨셉이 한국에서도 적용된다면 적어도 독자 입장에서는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공간 안에서 여러 출판사와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 만남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북콘서트나 소규모 강연들이 병행된다면 사라져 가는 독서 문화를 지켜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이라는 것이 어느새 지켜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간다는 사실이 슬프다. 물론 진보초의 경우 고서 위주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확장해서 고려해 볼 때 지켜내야 할 것은 고서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면 더욱 서글프다. 인터넷과 동영상과 스마트폰의 발달과 보급으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다. 나는 책이 단지 정보라는 명제는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정보를 넘어선다. 동영상이 주지 못하는 많은 소중한 것들이 책에 있다 (이 감상문에서 그것들을 나열하기에는 부적절하니 기회가 되면 정리해서 포스팅할 예정이다). 유산이라 할 그 무엇이, 어쩌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 무엇이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가시적인 실체가 바로 책이 아닐까 한다. 책을 지켜내는 사람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나는 이들과 함께 할 것이고, 이들을 응원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진보초의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지켜낸다는 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은문고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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