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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ㅣ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조조 모예스 저, '미 비포 유'를 읽고
몇 년 전 일이다. 그 당시 나는 가족과 함께 매주 서점에서 한 시간 정도를 보냈다. 책 구경도 하고 한두 권씩 사기도 했다. 갈 때마다 매대에 놓여 있던 책이 있었다. 멋진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와 빨간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숙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사진이 책 표지에 띠지처럼 붙어 있었다. 상업성 짙은 3류 소설 티가 강하게 나서 나는 일부러 멀리 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책이 공교롭게도 '그믐'에서 진행 중인 웰다잉 오디세이 9월 도서로 선정되어 버린 것이다. 책을 중고로 구매해 놓고서도 한참을 읽을까 말까 망설였다. 읽을 책들이 쌓여 있는 마당에 5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는 데 내 아까운 시간을 써야 하나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나 그믐 모임방에서의 여러 글들을 훑어보며 간을 보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혹시 나의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좋은 작품을 코앞에 두고도 놓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래서 보름이 지나고 나서야 적어도 십 분의 일 정도는 읽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스스로를 타이른 뒤 책을 펼쳐 들었다.
나의 경솔한 판단이었음이 증명되는 데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줄거리는 물론 설정과 결말까지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조조 모예스라는 낯선 작가의 문체와 필력에 감동까지 하면서. 역시 나 혼자만의 선택과 판단만 의지하면 많은 소중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사건이었다. 함께 읽기의 힘, 독서 모임의 힘은 그것들을 다년간 경험한 나조차도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신비인 것이다. 언제나 귀를 열고 눈을 열고 마음을 열고 있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사랑했던 부유한 엘리트 청년 윌 트레이너는 어느 비 오는 날 길거리에서 오토바이에 치여 치명적인 C4/5 척추 손상을 당한다. 가슴 아래, 그러니까 거의 전신 마비에 가까운 상태로 평생 고통 속에서 숱한 감염증에 시달리며 휠체어에서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겨우 연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의 삶은 오토바이 사고 전후로 나뉘었다. 오토바이 사고 전의 삶은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누리던 자기 자신의 고유한 삶이었다. 반면 오토바이 사고 후의 삶은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더 살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니었다.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사는 게 오히려 고통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손목도 그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의 의지는 충분히 스스로에게도 가족에게도 알린 셈이었다. 총명했던 그는 스스로 조력자살의 방법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는 실행에 옮기기 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부모에게 허락한다. 부모에 대한 나름대로의 배려였던 것 같다. 부모는 그 기간 동안 아들이 마음을 되돌리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우리의 주인공 루이자 클라크가 등장하여 활약하는 주무대가 된다.
윌 트레이너에 비하면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할 수 있는 루이자 클라크에게 윌의 남은 6개월간 간병인 역할이 맡겨진 건 운명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윌의 어머니 카밀라 역시 루이자에게서 뭔가 다른 인상을 받았던 걸로 보인다. 간병 경험이 전무하고 전혀 전문적이지 않아 보이는 루이자를 선택했던 건 카밀라의 신의 한 수였던 걸로 보인다. 카밀라는 끝까지 루이자에게 따뜻하지 않게 대하는데, 그건 루이자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카밀라가 자라온 환경 탓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과연 카밀라가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했다.
이야기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다. 처음에 루이자는 윌이 6개월 뒤 스위스로 가서 죽음을 선택하는 계획을 몰랐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찮게 윌의 가족의 대화를 엿들으며 알게 된다. 그리고 루이자는 즉시 일을 그만두려고 한다. 조력자살을 돕고 싶은 마음도 없었거니와, 자신의 간병 행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떤 가치가 있는지 용납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갈 만한 이유를 발견하게 하고 윌을 행복하게 해주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결국 윌의 자살로 수렴한다는 사실은 제삼자인 나 같아도 끔찍하게 여겨졌을 것 같다.
여동생과의 대화를 계기로 루이자는 마음을 오히려 바꿔 먹는다. 자기 때문에 말도 많아지고 좀 더 활발하게 변하고 있는 윌을 보며 여러 가지 경험을 함께하면 윌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처리하는 것처럼 루이자는 윌의 부모와 간병인 네이선을 설득하여 여기저기 여행을 다닌다. 모리셔스 제도에서 며칠을 보내며 루이자는 자신의 계획이 얼추 이루어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루이자는 윌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윌이 행복해하는 모습도 확인한다. 그러나 윌은 단호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미리 예고했던 6개월이 끝나고, 그러면 곧장 스위스로 가려는 계획을 루이자에게 실토한다. 윌은 루이자가 자신의 스위스행을 모르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루이자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감정의 혼란을 겪는다. 자신의 무가치함과 무기력함에 화가 났을 것이고, 윌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루이자는 윌이 계속 살아가길 그 누구보다도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윌은 오히려 루이자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고수하게 된다. 사랑하는 여자를 바로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자의 그 좌절감과 절망감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모두 앗아갈 만큼 컸을 것 같다. 반복되는 감염과 쉬지 않고 찾아오는 고통이 부수적으로 느껴질 만큼 말이다.
루이자의 마음도, 윌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갔다. 삶에의 의지, 죽음에의 의지, 이 정반대의 마음이 교차하면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삶과 죽음의 정반대 되는 마음을 하나로 묶는 사랑. 결국 이 사랑 때문에 루이자는 한 발 늦게 스위스를 향하고 죽음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윌의 곁을 지킨다.
정해진 레퍼토리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루이자가 되기도 하고 윌이 되기도 하면서 인간의 다양한 심리와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연민과 사랑, 삶과 죽음, 이성과 감정, 이런 대립되는 것들에 대한 사유도 진지하게 할 수 있었다.
뻔한 이야기를 전혀 뻔하지 않게 전개해 나간 작가 조조 모예스의 필력에 박수를 보낸다. 여성 특유의 문체도 곳곳에서 통통 튀어나와 읽는 재미를 더했다. 지극히 현대적인 소설이지만, 고전 같은 느낌을 선사해 준 참 드문 작품이었다.
참고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윌이 아닌 루이자다. 꺼져가는 윌의 생명이 루이자에게 전달된 덕분에 루이자가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축을 놓치면 안 된다. 아마도 6개월 동안 루이자 덕분에 윌이 행복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자기의 도움으로 루이자가 알을 깨고 나와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 부분이 묵직하게 강조되는데 소설의 마무리로써 완벽한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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