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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평점 :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저, '죽음을 배우는 시간'을 읽고
죽음은 언제나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특히 주위에 죽어가는 사람이나 최근에 죽은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누구나 죽는다는 걸 알고, 나도 언젠간 죽는다는 걸 알지만,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게 대부분 우리들의 현실이다. 이 책은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에 죽음을 맞이하거나 죽어가고 있는 시점에 쓰였다. 저자 역시 의사이고 일반인과 달리 상대적으로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가져온 '비일상' 앞에서야 죽음을 배우는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고 고백한다. 지금은 2026년 여름이다. 코로나19가 지구를 휩쓸고 간 지 불과 4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다시 인간들은 망각이 일상인 듯 죽음을 생각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일상 아닌 일상으로, 그 익숙한 거짓된 세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아, 우린 언제쯤 철이 드는 걸까. 죽음을 멀게 느끼지 않고 겸허하고 낮은 마음으로 죽음을 진지하게 배울 수 있기나 한 걸까. 또다시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을 겪어야 가능해질까.
누구나 죽음을 겪게 되지만, 아무나 죽음을 공부하진 않는다. 인간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고대부터 관심을 가져왔지만, 정작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 순서상 죽음 이후보다 죽어가는 과정이 먼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죽음에 대한 무지.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이다. 공부 못하는 걸 그렇게나 부끄러워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죽음에 대해 모른다는 건 그리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죽음이 한 발자국 현실로 침투한다. 죽음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준비해야 하는 사건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준비하는 과정이 어떠해야 바람직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비로소 무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저자는 이 시대가 죽음을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점점 더 부자연스러운 사건으로,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의료의 실패로, 의료의 적으로 둔갑시키고 있다고 쓴소리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이 아닌 병원에서 삶을 마치는 것도 모자라 적어도 서울대학병원을 포함한 소위 빅4 병원(서울대학교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 정도는 되는 곳에서 삶을 마쳐야 제대로 보냈다는(혹은 보내졌다는) 인식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 삶의 어떤 순간에도 죽음은 찾아온다는 것을 이 책의 가장 첫 메시지로 던지는 저자는 이러한 뒤틀린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 해야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준비 과정을 현실적으로 차근차근 알려준다. 덧붙여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 나쁜 일들이 일어난다는 거부할 수 없는 묵직한 말을 하면서 병원의 '죽음 비즈니스' 실태를 보여준다. 이어서 "자,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평소에 죽음을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이들도 숨을 죽이고 자리에 앉아 진지한 얼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웰다잉은 낭만적이지 않다. 이 책 덕분에 죽음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33만여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지만 그 뜻에 따라 생을 마감한 경우는 725명에 불과했다고 저자는 쓴다. 지금은 나아졌을지는 몰라도 (자료를 찾아보니 지금은 10퍼센트대로 올라왔다고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4년 전(혹은 더 과거)에는 겨우 0.2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알다시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문서로 남겨두는 법적 효력이 있는 공식 문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정부가 지정한 공식 등록기관을 방문하여 작성해야만 하고, 건강한 사람을 포함한 만 19세 이상의 성인이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문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그대로 실천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에는 병원 측에서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는 법적인 책임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 환자의 가족들과의 반대나 소통의 부재, 임종기와 말기에 대한 모호한 기준으로 인한 판정의 연기 등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답답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병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 죽음은 치료해야 할 질병이 되고 말며, 생사결정권을 병원에 넘겨주게 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쓴다. 참고로 나는 인공호흡기를 단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연명치료와 완화의료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꼭 알아두면 좋을 듯하다. 연명치료는 죽음의 각 단계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모두 치료해야 하는 질환으로 보는 반면, 완화의료는 이 모든 증상을 죽음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그 과정에서 환자가 통증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것을 최소화하는 치료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흔히 완화의료라고 하면 환자를 포기하는 치료 정도로 폄하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큰 오해라고 한다. 존엄한 죽음, 사람다운 죽음, 아름다운 죽음 등 웰다잉은 연명치료에 있지 않고 완화의료 쪽에 기울어져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의 개혁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단지 죽음을 기다리는 당사자나 그 가족들만이 아닌 병원 관계자들까지 모두 죽음을 질병이 아닌 삶의 마지막 단계라고 보는 자연스러운 관점을 견지했으면 한다. 존엄한 죽음은 결코 방치한 죽음이 될 수 없다.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행위는 결코 죄를 짓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와 맞물려 이제는 어느덧 죽어가는 부모를 향한 효도의 정석이 되어가는 듯한 빅4 병원 중환자실행은 결코 바람직한 마무리가 될 수 없다. 이런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참고로 책의 마지막에는 저자의 엔딩노트가 에필로그로 달려 있다. 지금은 건강한 저자가 자녀에게 쓴 유언 같은 글이다. 연명치료 여부, 장례 절차,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이 특정한 양식 없이 기술되어 있다. 나는 아직 유언장을 써본 적이 없다. 올해엔 이 엔딩노트를 참고로 하여 나도 이런 글을 한 번 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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