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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달리아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53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종인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평점 :
공포와 광기와 집착
제임스 엘로이 저, ‘블랙 달리아’를 읽고
AI나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을 뭔가 대단한 지식인 것처럼 잘도 꾸며 지껄이는 (쉽게 돈 벌려고 하는 수작 그 이상도 이하도 절대 아닌) 수많은 바람 같은 유튜버들보다 나는 책을 가까이하고 많이 읽고 깊은 통찰도 이끌어내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들의 조언을 나는 늘 귀담아듣는다. 그동안 그들에게 배우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여러 북튜버 채널도 많이 접했다. 그런데 솔직히 그들의 가벼움에 질려 대부분은 한두 번 보다가 구독을 다 끊어버렸다 (뭐가 목적인지 모호했다. 책 많이 읽었다는 걸 자랑하려는 건지, 읽고도 저 정도밖에 소화해내지 못하는 건지, 등등이 항상 의아했다. 결국 돈 때문에 저러는 건가 하는 결론으로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팟캐스트 ‘책걸상’은 지금도 즐겨 듣는다. 다른 북튜버 채널들과는 질이 다르다. 3년이 넘게 펀딩에도 참여하고 있다. 책걸상은 진짜 책을 제대로 읽고 저자의 의도는 물론 자신의 해석을 찐으로 나누는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나 가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다. 조금 꼰대스러운 진행자 한 분 때문에 가끔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책 읽고 나누는 문화를 어떻게든 지키고 확산하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의 결과 내가 이끄는 오프라인 독서모임의 결은 책걸상의 분위기와 가장 많이 닮아 있다.
진행자 중 YG님이 수차례 추천하신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달리아’를 이번 주말에 드디어 읽었다. 아니, 흡수해 버렸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마침 하루 전까지만 해도 천병희 역의 ‘오뒷세이아’ 원전을 읽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 영화를 두 번 보고, 나름대로 그것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스스로를 위해 긴 글을 썼던 탓인지 머리를 좀 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차였다. 그리고 내 생각은 한때 내가 사랑했던 추리소설(범죄소설)을 읽어볼까 하는 데까지 옮겨갔다 (내가 안경을 쓰게 된 이유가 추리소설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 스파이더맨 영화에서 ‘블랙 달리아’라는 말이 나왔던 데다 그 대사를 듣자마자 ‘아차 내가 사놓고 아직 그 책을 안 읽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번엔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책장에 파묻힌 이 책을 손에 들었었다.
두 권으로 나뉜 이 책의 분량은 약 600페이지 정도다. 그러고 보니 ‘오뒷세이아’와 비슷한 분량이다. 그러나 읽는데 소요된 시간은 훨씬 짧았다. 당연한 말일까. 나는 빨려 들어갔다. 한국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이 아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가장 흡입력이 뛰어났던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보다도 더 훌륭했다고 말해야겠다. 어지간한 책들과 마찬가지로 초반에는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느라 조금 더딘 속도였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페이지가 날아가듯 넘어갔다.
끔찍한 살인사건. 공포와 광기와 집착, 그러나 그것들을 다 합친 무게에 전혀 걸맞지 않은,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이없는 살인 동기와 살인자의 정체. 나는 허를 찔린 듯했고 작가 제임스 엘로이의 천재성과 필력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한 사람의 신체(시체 아님 주의)를 훼손하고, 내장을 다 꺼내어 포름알데히드 병에 넣어 보관하고, 피를 다 뽑고, 그것도 모자라 허리 부근에서 시체를 두 동강 내어 길거리에 버린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공포에 휩싸였고 동시에 분노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소설 끝까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살인자의 정체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것이 인간이지, 이것이 인생이지,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하는 생각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던 것 같다. 잔인함과 이해할 수 없음, 모순과 이율배반성 때문도 있지만, 그것들보다는 진실이 가진 그 가벼움에 경악했기 때문이다. 저 정도의 끔찍한 사건이라면 뭔가 거대하고 함부로 이해하기 힘든 음모라도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내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추론은 유리잔 깨지듯 박살 나고 말았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인간과 인생의 진미를 맛본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이것이 작가 제임스 엘로이의 천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읽은 스티븐 킹의 ‘빌리 서머스‘보다도 강렬했던 느와르풍의 이 소설은 솔직히 아무에게나 권하고 싶진 않다. 충분히 기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풍성한 독서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성에 대한 광기 같은 것에 흔들리지 않고 작품의 중심 결을 따라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미국의 1940년대 상황도 체감할 수 있으며, 그야말로 다채롭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음미하며 뜻밖의 성찰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블랙 달리아’는 실제로 1947년 미국 엘에이에서 발생했던 사건으로써 가장 끔찍한 미제 살인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지어진 것이다. 작품으로부터 전해지는 공포의 무게감도 아마 실제 살인사건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니 시간 나면 한 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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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책과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