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 일기 헨리 나우웬 영성 모던 클래식 3
헨리 나우웬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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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수도원


헨리 나우웬 저, '제네시 일기'를 읽고


이 책은 헨리 나우웬이 일곱 달 동안 머문 제네시 수도원에서 거의 매일 써나갔던 기록이다. 그는 1974년 6월부터 12월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제네시 수도원은 기도와 참회, 침묵과 노동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전 세계에 흩어진 약 85개의 가톨릭교회 소속 트라피스트 수도원 중 하나로써 미국 뉴욕주 북부 피파드에 위치한다.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 헨리 나우웬은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성찰한다. "하나님과 더불어 지내기보다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했는지 모른다. 기도에 관한 글을 쓰기에 바빠서 기도할 여유가 없었는지 모른다. 주님의 사랑보다 인간의 칭찬에 관심이 많았는지 모른다. 거룩한 언약에 기대어 자유를 누리기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기대에 얽매인 죄수 신세로 전락했는지 모른다." 그는 삶에서 뒤로 물러서야 할 때가 되었다고 쓴다. 영적으로 갈급한 상태임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 도중 잠시 들린 켄터키 주에 위치한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우연찮게 존 유드 신부와 만나게 된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의 축복이었다. 헨리 나우웬은 존 유드로부터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뛰어난 통찰력과 따뜻한 마음을 갖춘 영혼의 안내자'로서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그 후 유럽에서 3년간 머물던 시기에 존 유드 신부가 제네시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렇잖아도 삶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탓에 그는 짧은 기간이라도 좋으니 존 유드 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단기수도사로 생활할 수 있는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존 유드 원장으로부터 예외적인 상황이지만 일곱 달 동안 수도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헨리 나우웬에게는 예기치 못한 축복이었을 것이다.


일기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을 다 읽는 데에는 약 1년이 걸렸다. 정작 텍스트를 읽는 시간을 다 합치면 10시간 정도 되겠지만, 한 번에 읽지 않고 책상 옆에 항상 놓아두고 일부러 조금씩 천천히 읽었다. 누군가의 일기를 단숨에 흡입해 버리는 건, 그것도 영성이 느껴지는 텍스트를 그런 식으로 대우한다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 나가며 밑줄을 그은 부분이 많았다. 헨리 나우웬의 수도원 경험담 정도의 내용이었다면 아마도 이 책은 그리 가치가 높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경험담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삶 전반에 걸친 근원적인 질문들을 다시 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뒤돌아보며 솔직하게 답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시공을 초월하여 언젠간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할 물음들을 하나씩 마음에 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얼마나 육신에 치우친 삶을 살고 있었는지, 얼마나 가식적으로, 이중적으로, 위선적으로 살아왔는지를 정직하게 뒤돌아 볼 수 있었다. 시끄럽던 내 안의 소리들이 잠잠해지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가질 수 있었다. 회개하는 마음이 되었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을 다시 다잡는 시간이 되었다. 동시에 이 책에는 헨리 나우웬이라는 영성가 역시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과정을 겪어나가는 모습이, 한 인간의 모습이 솔직 담백하게 담겨 있어 은근한 위로도 받을 수 있었다. 정도가 조금씩 다를 뿐 아마 진지한 모든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읽고 한동안 멈춰야 했던 문장들을 추려보았다. 나의 반응도 짧게 덧붙인다.


1. "영적인 삶에 관한 책을 읽는 건 좋아하면서도 실제로 그런 생활을 하려 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 헨리 나우웬이라는 위대한 영성가도 이런 질문을 한다는 사실로부터 의외의 위로와 함께 나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다. 위선을 가장하여 영적이고 선한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2. "가장 신령해 보이는 행동들조차도 허영심에 오염될 가능성이 있음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 역시 위선에 관련된 문장이다. 헨리 나우웬의 성찰이 예리하고 깊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성경구절도 생각이 났다. 두 주인을 섬기면서 마치 아닌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지혜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 세대가 두렵다는 생각도.


3. "육체노동은 환상을 벗겨낸다. 내 벌거벗은 실체와 무기력함, 유한성, 연약함 따위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흥미롭고, 신나며, 정신을 쏙 빼놓은 만한 활동들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따분한 단순작업은 무방비상태의 밑바닥을 공개해서 더 연약한 심령을 갖게 한다. 이 새로운 연약함이 두려움이나 분노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마음을 활짝 열도록 이끌어주길 소망하며 기도한다."

>>> 제네시 수도원에서 헨리 나우웬이 일곱 달 동안 실행했던 루틴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육체노동이었다. 그는 빵 만드는 작업과 암석을 채취하고 나르는 작업을 번갈아 가며 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글을 쓰고 상담하는 일로 언제나 바빴던 그가 노동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서툰 손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낯설지만 반갑게 느껴졌다. 그가 느꼈던 감각이 저 문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4. "적잖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는 사이에 내 삶에서 침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었다. 침묵이 사라져 간 곳에 내면이 오염되었다는 감각이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어째서 자꾸 지저분하고, 찜찜하고, 불순한 느낌이 드는지 몰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침묵의 결핍이 주원인이라는 걸 또렷이 알 수 있었다."

>>> 침묵의 결핍이 지금 현대인의 삶에서 얼마나 부재했는지, 그러면서도 감히 거룩한 척, 믿음 좋은 척, 괜찮은 척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불필요한 말과 생각들로 나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도 오염시켰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5. "가난한 삶을 살려는 일정한 노력 없이 진실한 크리스천을 자부한다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얘기다."

>>>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청빈해야 하느냐,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가난해야 하느냐, 하는 말들이 한때 유행이었다는 걸 기억한다. 그때에도 나는 그 무리에 동조하지 않았다. 가난한 삶을 살려는 일정한 노력은 정말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렇게 한다 해도 가난한 이들을 백 퍼센트 공감할 수 없겠지만, 내 입이 기름지고, 내 허리가 비갯덩어리로 출렁대면서 구제를 한다는 게 나로선, 특히 진실성 여부를 따지면,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6. "비가 아름답지 않나요? 어째서 다들 비를 피하려고만 할까요? 비에 푹 젖어야 할 순간에도 왜 햇살만을 원하는 걸까요? 자녀들이 은혜와 사랑에 푹 빠지길 하나님은 바라세요. 이처럼 다채로운 경로를 통해서 그분을 느끼고 점점 더 잘 알아갈 수 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지금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 가운데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죠."

>>> 허를 찌르는 문장이다. 비를 맞아야 할 때 맞을 줄 아는 것. 비를 내리시는 분도, 햇살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 마치 햇살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것처럼 프레임을 씌우는 건 우리가 하나님을 박스 안에 가두는 행위와 같을 것이다. 우린 모든 것들로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원하고 편한 방식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7. "살아오면서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해 늘 거절당하고 고립된 느낌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관심을 가지고 돌봐주는 이를 만난 사람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런 이들에게는 상대방의 보살핌에 진정과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어진 사랑을 받아들이고 의혹과 불신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내면의 확신을 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커다란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

>>> 그렇다.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한없는 사랑을 받게 될 때 의심하게 된다.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내면의 확신, 그것을 위한 믿음의 결단,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이신 예수 이름으로 의인으로 칭해졌다는 사실도 함께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후자로 연결되지 못하고 전자에만 머물면 자기 자신에게 갇힌 신세가 된다. 그건 믿음이 없는 것과 같다. 후자를 고백해야 한다. 가치 없던 자가 가치 있는 자로 옮겨졌다는 고백 말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고백 말이다.


8. "공동체에 받아들여지고, 실수해도 매서운 비판을 당하지 않으며, 훌륭한 일을 해도 유난히 칭찬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고, 성공이나 실패와 상관없이 한 차원 높은 사랑을 받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하나님과 무척 깊게 접촉할 수 있었다."

>>> 이게 공동체의 힘이지 않나 싶다. 이런 공동체가 우리의 교회 공동체이길 바라마지 않는다.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 믿음과 신뢰가 가는 공동체, 늘 새로워질 수 있는 공동체 말이다.


9. "일곱 달을 보낸 뒤에 내가 완전히 달라져서 훨씬 일관되고, 신령하며, 의로우며, 긍휼히 여기며, 온유하고, 유쾌하며, 이해의 폭이 넓은 인간이 되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나는 다시 예전의 삶의 패턴으로 돌아가는 데 몇 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 기억은 단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관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앞장서서 인도해 준다. 온갖 충동과 환상, 비현실성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이 기억은 언제나 헛된 꿈을 몰아내고 정확한 방향을 가리켜 보인다."

>>> '맺는 글'에 적힌 문장들이다. 제네시 수도원 생활을 마친 지 반년 남짓한 시기에 쓴 글이다. 그의 솔직하고 정직한 문장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일곱 달 수도원 생활로 인해 바뀐 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그러나 그 기억은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가늠하는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준다는 것. 이 문장을 읽고 문득 우리도 굳이 수도원에 가지 않더라도 수도원 생활의 효과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스마트폰을 단 몇 시간만이라도 내려놓는 것, 단 하루라도 인터넷과 동영상으로부터 훌쩍 떠나 있는 것, 등등의 작은 실천이 그런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잠깐 멈춤의 시간들도 분명 우리의 현재와 미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바빠지고 혼란스러워진 이 시대에 일상 속 수도원 생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헨리 나우웬이 제네시 수도원에서 이 일기를 썼다면, 우리는 우리가 만든 일상 속 수도원 생활 (온라인 디톡스 같은)로부터 우리만의 일기를 쓸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드는 이 시대의 급류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절제하면서 지켜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삶의 작은 습관의 변화가 침묵의 결핍을 채워주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지 않을까 싶다. 성 베네딕트가 말한 대로, 예배의식과 영적인 독서, 그리고 육체노동으로 바로 그 시간을 채워 넣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매일 십 분씩이라도 이러한 일상 속 수도원을 맛보고 그 시간을 지켜내기 위해 애쓸 수 있다면 말이다. 


#포이에마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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