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야기의 시작 - 신화에서 계시로
정우조 지음 / 지우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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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설교의 본보기


정우조 저, '모든 이야기의 시작, 신화에서 계시로'를 읽고


신학자도 목회자도 아닌 내가 창세기 관련 서적들을 섭렵했던 주된 이유는 창조기사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창조과학, 문자주의, 근본주의에 뿌리를 둔 성경 해석이 불편했고, 나는 그것의 대안적 해석을 갈망했다. 이제는 창세기 1-2장에 소개되는 창조 순서와 방법이 내가 아는 과학 상식에 어긋나거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고 해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나의 신앙에는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이 말은 반지성적인 입장을 취하겠다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초지성적인 선택이다. 지성적으로 충분히 따져보았고, 또 앞으로도 따져볼 의향이 있지만,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전제로 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신앙과 과학은 서로 다른 영역의 언어이며, 과학으로 답할 수 없는 신앙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므로 지혜로운 분별을 하겠다는 뜻이다). 


창조기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나 문자적으로 믿으려는 시도도 모두 하나님의 창조를 어떻게든 좀 더 풍성하게 이해하고 싶어 하는 나름대로의 몸부림이었다고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게 된다. 비록 일부 진영에서는 여전히 반지성적인 개인 및 집단이 야기하는 심각한 부작용 (크게는 신앙을 잃어버리기도)이 발생하고 있지만 말이다. 


지금도 창조에 관한 여러 의문점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다양한 해석들을 낳고 있다. 이 땅에서는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는 신비로 남겨질 것 같다. 반지성적인 진영을 의지적으로 택하는,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소수의 무리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진영에 속하게 되어버린 다수의 신앙인들이 자기들의 해석만이 옳고 다른 해석들은 모두 틀렸다고 우기지만 않는다면, 이런 다양한 해석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를 더욱더 깊고 풍성하게 이해하고 싶어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창세기 1-11장, 그러니까 12장부터 등장하는 한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의 본문을 신학에서는 원 역사라고 부른다. 창조기사가 등장하는 창세기 1-2장,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3장,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소개되는 4장, 아담에서 노아까지 이어지는 계보를 보여주는 5장,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가 소개되는 6장, 홍수 심판과 노아가 지은 방주 안의 생명이 살아남는 7장, 노아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8장, 무지개 언약이 등장하는 9장, 노아의 후손들이 온 세상으로 확산되는 10장, 바벨탑 사건이 소개되는 11장까지, 성경을 한 번도 읽어 보지 못한 이들마저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유명한 이야기들이 바로 이 책이 다루는 주요 본문이다. 


저자인 정우조 목사가 바라보는 성경의 원 역사의 주인공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이 세상을 인간이 반복해서 죄에 이끌린 나머지 폭력과 살인을 동원한 반역을 행하며 황폐하게 만들었지만, 심판의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은혜와 구원의 계획을 이어 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먼저 다시 한번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고, 또 감사할 수 있었다. 저자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고 느껴졌다. 


이 책은 어려운 신학책이 아니다. '바람직한 설교의 본보기'라고 할까. 충분히 신학적 함의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충분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쓰여 있다. 회개라는 이름으로 성도의 죄책감을 자극하지도 않고, 은혜라는 이름으로 감정팔이에 머물지도 않으며,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남발하는, 의외로 많은 한국교회 안에서 자행되는 '준비 안 된 설교'와는 질적으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신학자들만의 놀이터에서 논의되는 논쟁적인 이야기들까지 가져와 소개하기도 하지만 결코 하나의 해석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적절한 선을 유지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을 풀어주는 성경교사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며칠에 걸쳐 설교를 듣듯 천천히 읽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은 저자의 시선으로 다시 숙지할 수 있었고, 잊었거나 처음 듣는 내용들은 읽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여러 곳에 체크 표시를 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해석 하나만 소개하자면 '네피림'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다. 


네피림은 창세기 6장에 소개되는 신비하게까지 느껴지는 존재인데, 4절은 개역개정으로 이렇게 되어 있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네피림은 고대의 신화적 존재라기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의 괴물 같다고, 지금도 존재하는 '세상의 지배계층'을 가리킬 수 있다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셋의 후손들을 '신앙인'으로 치환한다면 네피림은 그 둘의 혼합이라고. 또한 이는 단순히 신자와 불신자 간의 결혼 문제에 비추어보는 정도의 주제가 아니라 경건한 신자를 자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게 될 때 일어나는 비극이라고,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도 가인의 자손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매우 세속적이고 탐욕에 물든 이들이 있다고, 그들이 바로 현실 세계의 네피림이라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보다 어쩌면 더 악하고 폭력적이며 음란한, 위선과 가식으로 자신을 점철한 존재들이라고. 


네피림을 현재로 소환하는 저자의 해석을 읽으며 나는 밑줄을 그을 수밖에 없었고, 여러 번 읽으며 묵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창세기 6장에 소개되는 네피림의 역사적 존재 여부를 파헤치거나 그들의 기원에 관련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정체를 밝히는 식으로의 접근이 아닌, 우리에게 쓰인 건 아니지만 우리를 위해 쓰였다는 성경을 풀어주는 설교의 본보기를 본 것 같아 마음에 감동이 되었다. 


5-6절에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 지면에 있는 모든 생명을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8절,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저자의 네피림에 대한 해석 덕분에 이 구절이 내겐 더 큰 은혜로 다가왔다. 네피림으로 살고 있었을지 모르는 나를 돌아보게 했고,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 오늘도 거듭나기를 소망했다. 이런 예기치 못한 경험은 좋은 설교의 힘일 것이다. 


이 책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한다. 이 책을 읽기 위해 미리 읽어야 할 책은 없다. 성경과 함께 하루에 한두 꼭지씩 묵상하며 또 공부하며 읽어나가길 추천한다. 보다 깊고 풍성한 신앙으로 이끌어 줄 좋은 책이다. 


#지우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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