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앞에서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평점 :
예약주문


머뭇거림은 믿음으로, 믿음은 확신으로


최은영 저, '백지 앞에서'를 읽고


신간을 구매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주로 작가에 대한 신뢰, 출판사에 대한 신뢰, 그리고 책의 제목, 이렇게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최은영의 여섯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산문집 '백지 앞에서'는 이 셋을 모두 충족시켰다. 


마흔을 넘길 무렵 나는 다시 독서의 세계로 들어왔다. 매일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그리고 신간을 훑어보곤 했다. 그즈음이었다.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이 2년의 시간차를 두고 출간되었다. 최은영이라는 낯선 이름이었다. 문학을 막 다시 읽기 시작했던 시기였고 단편집보다는 호흡이 긴 장편을 선호하는 나는 두 책을 보관함에만 두고 장바구니에 담진 않았다. 2021년이 되어 '밝은 밤'이 출간되었을 땐 미국인데도 불구하고 곧장 구매해서 읽었다. 내겐 이름을 기억해 둘 만한 한국 작가가 나왔다는 강한 인상을 준 작품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출간되었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단편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밝은 밤' 때문에 생겨난 최은영 작가에 대한 신뢰로 인해 바로 구매해서 읽었다. 아무래도 호흡이 짧은 단편들이 모인 책이어서 장편이 주는 충만한 기분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최은영 작가의 문체와 사상 정도를 파악하기엔 충분했고, 나는 최은영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일주일 전 즈음이었을 것이다. 신간을 훑어보는 습관을 따라 무심코 온라인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 책의 예약 판매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특히나 소설이 아닌 산문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나는 최은영 작가의 장편, 단편, 산문, 이렇게 세 가지 다른 유형의 글을 모두 섭렵하게 되는 것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일부러 읽지 않았다. 신뢰하는 책을 읽기 전의 자세는 철저한 조사가 아닌 신비여야 한다는 게 나만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책을 순수하게 만날 수 있으니까.


제목이 가진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백지 앞에서'라니. 읽고 쓰는 일이 일상이 된 사람에게 이 문구는 골수를 찔러 쪼갤 정도로 깊고 아프게 다가가리라 생각한다. 내게도 그랬다. 백지 앞에서 언제나 무력해지는 내 모습, 동시에 그 자리를 결코 피할 수 없다고 여기는 내 모습, 결국 그 자리 앞에 정직하게 섰을 때 생겨나는 또 해낼 거라는 작은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성취될 거라는 조용한 확신을 얻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최은영 작가도 이런 마음으로 제목을 정한 게 아닌가 싶었다. 머뭇거림만이 아닌, 머뭇거림에서 믿음으로, 믿음에서 확신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자신의 삶을 통해 그려 내 보이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하루 만에 책을 다 읽고 내 추측이 얼추 들어맞았다는 걸 알았다. 언제나 소설 뒤에 숨어 있는 최은영 작가가 이번 산문집에서는 앞으로 나와 목소리를 낸다. 필터를 제거한 채 처음 들려주는 진성으로 그렇게 성큼 최은영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며 다가간다. 마치 잘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내게도 그랬다. 특히 최은영 작가가 학창 시절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나는 텍스트로 미처 전달하지 못하는 90년대 상황을 직접 겪은 사람이라 그런지 조금은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84년생인 최은영 작가는 나와 7년 차이가 난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그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것이다. 그 시대 학교 안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선생들의 훈계는 너무나도 쉽게 폭력으로 발현되었고, 그 폭력은 당연한 일상이 되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은 선생들로부터의 구타에, 그 폭력에 저항할 수 없었고, 그것은 폭력의 암묵적인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근간이었다. 나는 내 눈으로 한 선생이 한 학생을 말 그대로 개 패듯이 구석에 몰아넣고 패는 현장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너무도 강렬했던 나머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 시대의 아들이었다. 개 패듯이 맞는 개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의 눈에 잘못된 사회구조적 문제가 잘 보일 리 만무했겠지만, 왜 나는 그때 겁에 질린 채 그 광경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은영 작가 역시 이런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듯했다. 그리고 정도는 크게 다르겠지만, 피해자 위치에 놓인 적도 있는 것 같아 그 부분을 읽을 땐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은 여러 꼭지로 이뤄져 있다. 공통적으로 흐르는 기운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마치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하는 듯한 모습까지 그려질 정도로 최은영 작가는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여겼던 것,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그 오래된 상처가 어른이 된 이후까지 남아 영향을 미쳤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작가가 되어 글을 쓰게 되면서 그 억눌린 자아와 정직하게 대면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마침내 그 모습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고 담담히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또한 글쓰기의 힘은 필연적으로 치유로 나타난다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또 한 번 확인할 수도 있었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는 법. 그녀의 마음뿐 아니라 몸도 어려움을 겪었다. 대표적으로는 최근에 수술까지 했던 갑상선암이다. 목디스크에 위경련까지 겪어냈던 최은영 작가. 거기에 이혼이라는 과정까지 넘어서야 했다. 와장창 무너지는 듯한 기분에 그녀의 우울함이 내게도 전염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백한다. 소설 쓰는 일은 인생의 숨구멍이었고, 소설을 썼기 때문에 힘든 상황들을 버틸 수 있었다고. 그리고 소설을 쓰는 것은 인생을 걸 만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최은영 작가의 인생에 글쓰기가 있어서, 그것이 구원의 통로가 되어주어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는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어서. 그녀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 겪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가 닿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최은영의 글을 읽은 게 아니라 최은영을 읽었다고 느낀다. 두 번은 쓸 수 없는, 가슴 저 깊숙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써 내려간 글은 곧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고 따라 할 수도 없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면의 어려움을 극복해 낸, 그리고 계속 극복해 갈, 최은영 작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움츠릴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현재의 최은영만이 아닌 과거의 최은영에게도.


더 써주길 바란다고 덧붙이고 싶다. 스스로 작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최은영 작가에게 계속 써주길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의 아픔과 상처, 이어진 치유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선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최은영 작가가 그중 하나라고 믿는다.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 최은영 읽기

1. 밝은 밤: https://rtmodel.tistory.com/1408

2.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https://rtmodel.tistory.com/1747

3. 백지 앞에서: https://rtmodel.tistory.com/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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