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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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지대에 아주 조금의 바람과 파도를


박찬국 저,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읽고


어쩌다가 읽게 된 책. 올해 1월부터 동녘에서 나온 '처음 읽는 독일 현대 철학'을 통해 2주마다 철학자 한 명씩 훑는 프로젝트를 지인 두 명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철학을 읽는다고 하면 일견에 대단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2주 동안 두세 시간만 내면, 비록 여전히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정도에 만족해야 하지만,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철학을 전공하고 싶지도 않고, 철학적인 지식을 더 많이 머릿속에 축적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고 하는 것과도 같은, 행위는 나도 모르게 젖어 버린 익숙함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낯섦과의 조우를 만들고, 그 결과 자칫 무풍지대가 될 수도 있을 내 마음과 생각에 아주 조금의 바람과 파도를 가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함께 하는 두 명의 지인도 나와 같은 고백을 하는 걸 보면 이런 나의 믿음은 현실에서 어느 정도 잘 작동하는 듯하다. 


총 열두 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는 책인데, 지난주에 여섯 번째로 만난 철학자가 하이데거였다. 박찬국 교수가 쓴 스무 페이지 정도의 그 글을 읽다가 뭔가 클릭이 되었고, 인터넷 서치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제목도 근사하지 않은가.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라니. 삶을 짐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자는 인간밖에 없다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고스란히 담으면서 동시에 삶을 짐으로 느껴본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흠칫하며 살펴보고 싶어 할 책인 것 같다. 


두세 시간이면 후루룩 다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처음 읽는 독일 현대 철학'의 하이데거 편,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을 읽은 사람이라면 훨씬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은 그 스무 페이지의 확장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이데거와 에리히 프롬, 그리고 소로까지 연결시키는 논리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다. 박찬국 교수의 말마따나 하이데거의 철학 혹은 사상은 기존의 서양 철학이 이성 중심이었던 것과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철학을 전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이데거가 폄하를 받기도 하고 오해를 받기도 했다는 말도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철학을 전공한 적도 없고 전공할 마음도 없는 내 눈에는 하이데거의 철학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도스토옙스키에게 배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일맥상통했으며, 이성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 즉 하이데거는 '존재'라고 표현한, 숭고함이랄까 성스러움이랄까 하는 것에 대한 고찰이 솔직하게 드러나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철학보다 문학을 더 사랑하는 내겐 하이데거가 훨씬 문학적이기도 했다. 다른 철학자들처럼 인간을 마치 다 파악한 것처럼 군림하는 듯한 인상도 주지 않았을뿐더러. 인간을 신비 가운데 그대로 두고 그 자체를 존중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 같아서 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때론 어떤 대상을 술어로 단적으로 풀지 않는 편이 그 대상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도모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에리히 프롬에 대한 책도 구해놓았다. 하이데거와 연결시켜 읽어보면 좀 더 깊고 풍성한 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월든'의 정체를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인지, 소로는 여전히 마음이 가지 않는다. 물론 여러 책에 발췌된 '월든'에 등장하는 소로는 정말 매력적이고 설득력이 있지만 말이다. 언젠가 마음을 좀 더 비우고 내가 아량이 좀 더 넓어지면 '월든' 완독도 가능해질 수 있겠지.


박찬국 교수의 해설이 쉽고 편해서 좋다. 어려운 전공 지식을 대중어로 쉽게 풀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아주 조금 안다. 하물며 하이데거라는 거인을 이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건 아무래도 저자의 탁월한 내공 덕분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른 책들도 천천히 읽어 봐야겠다. 이런 식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하지만 적은 시간을 활용하는, 공부는 언제나 즐겁고 유익하다.


#21세기북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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