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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평점 :
번역자에서 작가로: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언어로
파스칼 메르시어 저, ‘언어의 무게’를 다시 읽고
같은 영화를 다시 볼 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동은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다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그다음 장면이 이전보다 궁금하지 않기 때문에 줄거리 파악에 상대적으로 힘을 덜 들이게 되며, 처음 볼 때 놓쳤던 부분들까지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원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될 뿐만 아니라 단순한 관객을 넘어 스스로 감독이나 원작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단계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
같은 책을 다시 읽게 될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영화와 차이점이라면 '상상력의 능동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감독의 상상력이 기술력 및 재력과 타협한 지점에서 가시화되어 관객은 그저 수동적으로 감상하고 감동할 뿐이지만, 책의 경우는 영화에서의 감독처럼 이야기를 가시화시키는 매개자가 없기 때문에 같은 책을 재독 한다 하더라도 독자는 또다시 머릿속에서 초독 때처럼 능동적으로 상상하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이 차별적인 수고로움(혹은 번거로움)이야말로 나는 재독의 고유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몰러).
초독 시 머릿속에 그렸던 책 속의 장면들이 재독 시에도 동일하게 그려지게 될 때, 나는 마치 고향을 찾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한동안 잊고 있던 책 속의 공간과 인물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에 일종의 안도감도 느낀다. 그러나 영화의 재시청처럼 초독 때 보지 못했던 부분들도 보게 되고 그것을 기존에 머릿속에 그렸던 장면들에 더하게 되는데, 종종 이 작업은 단순한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가 될 때도 있고 대폭 수정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상상력의 재구성'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묘미는 바로 이것이다.
약 2년 전에 '언어의 무게'를 읽었을 때도 겨울이었다. 서사보다 묘사가 주를 이루고, 주인공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이 책은 분량만 해도 600페이지가 넘는다. 정신없는 서사가 빼곡한 600페이지의 장편소설과는 읽는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줄거리나 재미 위주로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아마도 충분히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이 단순히 줄거리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는 것, 그것은 깊은 사유의 열매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과 상념들과 공명을 이룰 때가 많다는 것 등을 조금이라도 아는 독자라면 이 책을 내가 왜 두 번 읽게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이 책은 재독, 아니 삼독을 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다.
이번에도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하루에 30페이지 정도씩 거의 매일 읽었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행복했다. 레이랜드와 함께 나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위치한 몰로 아우다체에 앉아 바다에 발을 담그기도 했고, 아내와 사별하기 전에는 아내가 사장이었다가 사별 후 레이랜드 자신이 사장이었던 출판사 앞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 카를로타가 가져다주는 커피도 마셨으며, 안드레이가 수감되었던 감옥 안에도, 출옥 후 감옥 같이 살던 그의 집 안에도, 그리고 레이랜드가 사준 집 안에도 거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뿐인가. 운명 같은 오진 때문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영국 햄프스테드에도 가볼 수 있었고, 그와 함께 런던 거리와 서점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 공간뿐인가. 레이랜드 옆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덕분에 레이랜드의 절친이 된 이웃 케네스 버크의 첼로 연주를 여러 번 들을 수 있었고, 그가 도움을 주고받았던 숀과 린도 만날 수 있었으며, 그가 과거에 번역을 했던 책의 저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랜드의 딸 소피아와 아들 시드니의 내외면의 성장과정을 목도하며 아버지로서의 레이랜드를 볼 수 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유지되었던 이들과의 교유가 나는 벌써 그립다.
교모세포종이 분명한 MRI 사진은 레이랜드의 것이 아니었다. 의사와 병원의 실수였지만, 레이랜드에게는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레이랜드는 자신을 병원으로 실려가게 했던 발작의 원인이 교모세포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 암은 치료가 불가능하며 시한부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출판사를 팔았고, 생을 정리하려고 했다. 날벼락처럼 찾아온 죽음의 방문 앞에서 그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 열흘만 일찍 사진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레이랜드의 인생은 과거의 연장선에 머물렀을 것이다. 출판사도 그대로 자기 소유였을 테고, 트리에스테에서 계속 살 것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러지 못했다. 딱 그 열흘 사이에 출판사를 팔고 삶을 마감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레이랜드에게 출판사는 단순한 건물이나 직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심장마비로 세상을 먼저 떠난 아내 리비아의 분신이었고, 영국에서 이탈리아로 옮겨오게 만든 이유였으며, 그의 모든 것이었다. 의사와 병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하나가 레이랜드에게서 그의 모든 것인 출판사를 빼앗았던 셈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레이랜드에게 일어난 이러한 운명 같은 사건이 결코 그를 무너뜨리지도 불행하게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담담히 보여준다. 트리에스테에서 햄프스테드로의 이동 역시 그에겐 생소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지만, 그 덕분에 그는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의대와 법대에서 각각 하얀 카스트와 검은 카스트에 신물을 느끼고 저항하며 정의롭게 인간답게 살려고 아등바등 대는 소피아와 시드니에게도 햄프스테드의 새로운 집과 그로 인해 파생된 여러 만남들은 얽기 설기 연결되어 영양분이 되었다.
이쯤에서 다시 묻게 된다. 레이랜드에게 일어난 그 황당무계한 사건은 과연 그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니면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니, 질문이 틀렸다. 불행과 행복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나는 이번에 재독을 하면서 잡아냈기 때문이다. 삶은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것,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은 소수이지만 늘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좋은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 보이고 연결된다는 것. 어쩌면 그 사건 덕에 레이랜드는 그가 작품 후반에서 그의 언어로 써 내려가는 소설 속 주인공 루이 퐁텐처럼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지 않을까. 어쩌면 그 사건 덕에 그는 암암리에 그를 잡고 있던 과거의 흔적을 뒤로하고 마침내 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번역자에서 작가로의 변화는 곧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언제든 운명 같은 사건을 맞닥뜨릴 수 있다. 그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될 때 나는 아마도 레이랜드를 떠올릴 것 같다. 그 사건이 아무리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될지라도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다 보면 거기엔 새로운 길이 있고 행복이 깃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 길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 뒤에 숨지 않고 당당히 내 목소리로 삶을 노래하고 싶다. 나만의 언어로 삶을 써 내려가고 싶다. 그때 비로소 언어의 무게를 말할 수 있으리라.
#비채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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