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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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감과 이질감


권여선 저, ‘각각의 계절‘을 읽고


수년 전에 출간되었고 이미 다른 지면에 실렸던 일곱 편의 단편소설의 모음집이지만, 내겐 권여선 작가의 첫 책이다. 대표작으로 보이는 첫 소설 '사슴벌레식 문답'은 단편만의 매력을 느끼기에 완벽한 작품이었다. 첫 권여선의 글이었음에도 나는 단번에 저자가 탁월한 스토리텔러이자 치밀한 설계자라는 사실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어디로 들어와?'라는 질문에 '어디로든 들어와'라는 답으로 이어지는 대화의 삽입은 화자와 저자의 의도를 넘어 인간 일반의 심리와 감정을 다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열쇠 혹은 저자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치트키로 보였다. 또한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장편에 비해 단편이 갖는 특유의 어정쩡한 미완성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완성도가 탁월한 소설이었다. 권여선 작가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첫 작품을 포함하여 나머지 여섯 단편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노년에 접어든 여성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서치를 해 보니 권여선 작가는 1965년생, 현재 예순을 갓 넘긴 나이다 (나랑 띠동갑 누님이시다ㅋ). 어떤 작품을 쓰더라도 작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들, 이를테면 시대와 문화라는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는 정서, 사상, 유행 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일곱 단편 모두에서도 저자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 주요한 목소리를 낸다. 이 점은 한 편으로 내게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는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론 1977년생 남성인 내게 약간의 이질감도 선사해 주었다. 특히 586 세대 특유의 정서와 여성이라는 점은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인지적인 방법 이상으로 공감할 수 없었으므로 권여선의 작품들을 온전히 음미하기에는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서 노년의 여성이 주로 상대하는 사람 역시 주로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여성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감정 혹은 정서들이 작품 전반에 진하게 배어 있어서 남성 독자인 나는 일종의 소외감이랄까 하는 벽을 느껴야만 했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숨에 다 읽고 이렇게 감상문까지 남기게 된 까닭은 저자가 충분히 깊고 세밀하게 보여준 인간과 인생의 보편성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 그 죽음 배후에 연루된 사람과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 분노와 체념, 여전히 기억 저편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들, 알다가도 모르겠는 인간관계의 신비, 그리고 나이 들면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여러 징후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들여야만 하는 덤덤함까지, 저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맞닥뜨리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말이나 글로 쉽게 담아내기 어려운 인생의 조각들을 미세하고 예리한 관찰자의 눈으로 포착하여 텍스트로 변환시킨다. 권여선 작가의 소설가로서의 관찰력과 그것을 내면적으로 소화하는 성찰력, 그리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하여 이끌어낸 탁월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이 단편집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관점에서 저자의 글은 후자에 무게를 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특수성으로부터 충분히 보편성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할까, 보편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특수성의 사례를 조금 과하게 사용했다고나 할까, 책을 다 읽고도 내게 남은 이질감이 여전히 걸리적거린다. 그의 다른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도 읽어 봐야겠다.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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