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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유유 / 2012년 9월
평점 :
가장 소중한 자유: 자아를 찾고 지켜내기
슈테판 츠바이크 저, ‘위로하는 정신‘을 읽고
이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미완성 유작 중 하나이며, 머나먼 타국 브라질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그가 어떤 상념들에 잠겨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츠바이크는 유럽의 16세기를 자신이 처한 20세기와 데칼코마니로 보았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자라나기 시작한 개신교는 중세 천 년을 지배해 온 가톨릭과 맞섰다. 같은 그리스도교이지만 서로 믿음과 관습이 다른 두 집단은 서로를 배척했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낭자한 전쟁을 오랜 기간 치렀다. 16세기 후반의 잉글랜드의 격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대립, 프랑스를 피로 물들인 위그노 전쟁, 그리고 스페인 절대주의에 맞서 일어난 네덜란드의 전쟁과 독립 등이 모두 종교전쟁의 성격을 띤다. 종교전쟁은 신앙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지닌 집단적 광증의 표현이라는 이 책 번역가의 문장은 츠바이크가 바라본 16세기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사랑과 평화를 설파하는 그리스도교를 위해 서로를 죽이고 전쟁까지 치렀다는 역사적 사실은 시대와 인간과 종교의 모순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츠바이크는 이러한 16세기와 20세기의 공통점을 관용의 부재, 그리고 나와 다른 신앙이나 신념을 가진 상대방에게 가하는 폭력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한다. 집단광증의 시대라고 볼 수 있는 그 시대에도 그러나 관용과 타협과 온건함을 옹호하고 끝까지 실천하려 노력했던 인문주의자가 있었다. 바로 에라스무스, 카스텔리오, 몽테뉴 같은 인물이다. 츠바이크는 16세기에 활동했던 이들로부터 자신이 처한 20세기의 문제 (인종이념에 바탕을 둔 제2차 세계대전)를 해결하는 실마리 혹은 희망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는 이들을 자신의 스승이자 동지로 여겼다고 한다. 신념이 만들어낸 전쟁을 종식시키고 싶었던 츠바이크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진다.
이 책은 츠바이크가 쓴 몽테뉴의 미니 평전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몽테뉴의 탄생 이전부터 그의 가문이 어떻게 평민에서 귀족으로 승격했는지를 설명하면서 책을 여는데, 츠바이크의 설명에 따르면 몽테뉴는 그야말로 모든 게 다 갖춰진 상황에서 시의적절하게 태어난 운을 거머쥔 인물 같았다. 즉 몽테뉴의 고유하고 탁월한 능력과 자질만이 아니라 시대를 잘 타고난 그의 운명을 그가 이룬 업적과 행보들을 평가하고 해석할 때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의 부제는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이다. 원제에는 없는 표현 같은데 아마도 한국 번역본에서 출판사가 붙인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부제의 적절성에 동의가 되었다. 그렇다면 신념이 만들어낸 전쟁이 종식되길 그토록 원했던 츠바이크가 몽테뉴로부터 얻은 힌트로써 그의 체념과 물러섬을 꼽았다는 것인데, 이게 무슨 말일까?
머리말을 제외한 총 일곱 꼭지로 이뤄진 이 책에서 츠바이크의 초점은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그리고 여섯 번째 꼭지에 있다고 보인다. 각각의 제목은 '자아를 찾아서', '자신만의 보루 지키기', '여행'이다. 이 세 꼭지를 '자아를 찾아 지켜내기'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는 츠바이크가 몽테뉴로부터 얻은 힌트인 체념과 물러섬의 자세와 직결되는 것으로써 집단광증의 시대에 맞서서 관용과 타협과 온건함과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지켜내기 위한 방법이 바로 나를 찾아내고 제대로 알고 또 지켜내는 것과 같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아마도 츠바이크는 인간 본성에 깃든 선함이랄까 하는 인간다움은 시대의 조류에 생각 없이 휩쓸려가는 광기가 아닌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여 각 개인의 고유하고 고귀한 개성을 발현하는 동시에 그렇게 생겨난 풍성한 하모니 안에 내재해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자아를 찾아 지켜내는 것을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자유로 보았던 것 같다. 다음 문장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단 한 가지만이 잘못이고 범죄다. 이 다양한 세상을 학설이나 체계 안에 가두려고 하는 것, 다른 사람을 자유로운 판단과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자기 안에 있지 않은 것을 강요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잘못이고 범죄다. 이런 사람들이 자유에 대한 경외심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정신적 독재에 미친 자들, 자기들이 얻은 새로운 것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옳은 진리라고 우기면서 자기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보다 몽테뉴가 더 미워한 것은 없었다."
자기만의 고유한 개성, 생각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된다. 지금 내가 사는 21세기는 몽테뉴의 16세기나 츠바이크의 20세기와는 사뭇 다른 시대이지만, 집단의 광기는 크기와 정도가 다를 뿐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타자의 개성을 묵살하고 파워 게임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며 자신의 세력을 부풀리는 인간들 역시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그런 시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츠바이크가 몽테뉴로부터 찾아낸 체념과 물러섬, 즉 자아를 찾고 지켜내는 것에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지켜내야 할 자유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또한 내가 먼저 그 자유를 알고 누리지 못하면 타자의 자유 역시 똑같이 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유유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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