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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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일상


켄트 하루프 저, '축복'을 다시 읽고


깊은 어두움을 통과한 자만이 가느다란 한 줄기 빛 앞에서도 감사함으로 무릎을 꿇을 수 있듯이, 일상의 소중함도 그것을 잃어본 자만이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일까? 켄트 하루프의 '축복'에 따르면 그런 것 같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일상을 '잃은 자'가 아닌 '잃어가고 있는 자'와 그 주위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이 어떤 건지 덤덤히 보여준다. 나아가, '잃어가고 있는 자'는 자신이 '잃은 자'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발견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나날을 참회의 순간들로 보내게 된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깨닫게 되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라는 것을 조용히 말해준다. 우리는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대드 루이스가 되기도 하고, 그의 사랑하는 아내 메리가 되기도 하며, 그들의 여러 이웃이 되기도 하면서 고르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내리는 평범한 일상의 축복을 다각도에서 다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2년 전에는 느끼지 못했으나 재독 하며 깊이 와닿았던 '축복'의 장면들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써볼까 한다. 


먼저 암에 걸려 한 달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은 남편을 보살피다가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메리가 자신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의사가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뚜벅뚜벅 먼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어떻게 병원에서 나왔냐고 걱정하는 남편에게 메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당신한테 제대로 된 저녁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전혀 진부한 표현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 밥 한 끼를 차려주는 것. 이 사소한 행위가 내게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까닭은 단순한 밥 한 끼 식사에 있지 않을 것이다. 죽어가고 있는 남편과 어떻게든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마치 대드 루이스가 된 것처럼 아내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라일 목사가 심란한 마음으로 밤에 마을 산책하면서 어떤 집 안을 마치 염탐이라도 하는 듯 주시하다가 경찰에 신고되어 출동한 경찰에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왜 그랬는지 말하는 장면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밤에 자기 집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이런 평범한 삶. 그들이 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는 삶이지요. 나는 거기에서 뭔가를 되살리기를 바랐습니다. 소중한 일상을요."  


라일 목사는 자신의 신념이랄까 믿음이랄까 하는 것 때문에 스스로와의 화해도 하지 못한 상태로 살아왔다. 목사라는 직업을 가지기엔 적어도 현실세계에서는 적당하지 않은 인물로 그려진다. 자신과의 화해를 하지 못한 자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원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내와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의 관계에서조차 평화를 누리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한밤중에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가족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머릿속에서 했을 생각들은 예상하기가 그리 어렵진 않다. 그는 소중한 일상을 이미 잃어버린 자였다. 경찰에 신고를 당하면서까지 이웃의 집안을 들여다보며 그는 그 이웃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보았을 것이다. 상실감과 죄책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신념 사이에서 그는 여느 때처럼 또다시 고통 속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라일 목사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걸까. 나 역시 나만이 추구했던 어떤 신념을 위해 가족과 같은 일상의 소중함을 잃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혹시 지금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삶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진 않을까. 나는 무너져가는 라일 목사의 불안정한 모습들을 보며 내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가장 감동이 되었던 장면인데, 초독 땐 이 부분을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냥 지나쳤던 장면이기도 하다. 노년의 윌라, 중년의 에일린과 로레인, 그리고 어린 소녀 앨리스, 이렇게 네 명이 무더운 여름날 오후 가축용 수조에서 수영도 하며 야외에서 소풍을 즐기는 장면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윌라는 네 명이 모여 각자가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는 정오의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다채로운 명암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 모두 생각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감사 기도 비슷한 걸 해보고 싶네요. 이 여름날을 주신 것도, 이런 맛있는 음식을 주신 것도, 이 특별한 날 특별한 장소에 우리가 함께 있도록 해주신 것도 모두 축복임을 알고 감사드립니다. (발췌 및 수정)" 


나는 윌라가 왜 저런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치 윌라에 빙의가 된 것처럼 나도 저 자리에 앉아 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해졌다. 어떤 특별한 경사가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현재의 삶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면 이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너무나도 평범해서 평소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순간들을 우주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숨겨진 진실과도 같은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소망했다. 매 순간을 윌라의 마음으로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네 번째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네 여자의 소풍을 묘사하는 저자 켄트 하루프의 문장이다. 다음과 같다. 


"앨리스는 사람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말하는 사람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로레인이 자신의 음식을 잘라 먹는 것을 보고 앨리스도 똑같이 따라 했다. (중략) 앨리스의 귀에 윌라가 코를 고는 소리, 그보다 작은 에일린의 코 고는 소리, 그리고 그녀의 오른쪽에 누워 있는 로레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앨리스는 다시 한번 냅킨 아래에서 눈을 떠보았다. 냅킨 위로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깬 앨리스는 그동안 자신이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어른들은 일어나 앉아 있었는데, 아이가 깨기를 기다리며 말없이 헛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몹시 무더워졌고, 뜨거운 바람만 간간이 불어올 뿐이었다." 


가장 나이가 어린 소녀 앨리스는 부모가 없는 고아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이런 사실만 보면 앨리스는 축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삶을 살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저 문장들을 읽으며 저자의 바람이랄까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앨리스 역시 축복 속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부모가 없어도 이웃에 거주하는 마음 좋은 세 명의 여자들로부터 가족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어른들로부터 하나씩 배워나갔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물 위에 뜨는 것도 그들로부터 배웠다. 축복은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이웃들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을 저자는 이런 아름다운 장면을 묘사하면서 독자들에게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저 장면에서 평화를 느꼈고, 앞으로 더 무럭무럭 자랄 앨리스가 정서가 안정된 아름다운 숙녀로 자라길 기도했다.


다섯 번째는 윌라가 라일 목사에게 하는 질문이다. 다음과 같다. 


"오랜 세월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고 나중에 그때를 떠올리고 비교하면서 상실감을 느끼는 편이 좋은 걸까요.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걸까요. 그러면 예전이 어땠는지를 기억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라일은 저 질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편이 분명 더 나을 거라는 대답을 한다. 나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 켄트 하루프는 아마도 독자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상실감 자체는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인간은 단순히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고통과 환란이 갖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고통과 환란을 원하는 자는 아무도 없지만 그것들을 통과해 내야 내면의 성장과 성숙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상실감을 느끼는 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상실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보다 나는 더 나을 거라고, 더 인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 중 하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을 얻어 보기도 하고 잃어 보기도 하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아는 것만큼 인간에게 주어진 큰 축복이 또 있을까.


여섯 번째는 자녀에게 가지는,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죄책감에 대해서다. 아들 프랭크와의 관계는 죽기 직전 경험하는 섬망 상태에서도 해소되지 않았다. 딸 로레인에게는 용서를 구하고 사랑했고 사랑한다는 말을 뒤늦게 한다. 대드 루이스가 로레인에게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용서하거라. 나는 많은 일들을 놓쳤어.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난 언제나 너를 사랑했단다."


많은 일들을 놓쳤다는 문장에서 나는 큰 심호흡을 해야 했다. 나도 일상에서 종종 느끼곤 하는 생각이기 때문인데, 바보처럼 아내와 아들에게 잘못했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언제나 가슴 한 편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용서를 구하는 대드의 모습에서, 그리고 딸에게 용서를 받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어떤 해소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했다. 대드처럼 죽기 전에 저러지 말고 지금 더 잘하겠다고, 반드시 그러고 말 거라고. 


마지막으로 마침내 대드가 마지막 숨을 내쉬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이 닥쳤을 때 메리가 외쳤던 문장이다. 


"준비가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아, 누군가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설사 배우자라 할지라도 그것이 가능할까. 나는 메리의 저 문장이 가슴 깊이 이해가 되었다. 부부는 누구나 이별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부부 중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언젠간 먼저 떠난 자와 남겨진 자로 구분되는 날이 온다. 이 장면에서는 남겨진 자인 메리가 자신이 준비가 안 되었다는 걸 고백하지만, 아마도 먼저 떠난 자인 대드 역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준비가 된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상을 이루는 대부분의 큰 일들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들에게 닥치는 것 같다. 우린 그렇게 닥친 일들을 처리해 나갈 뿐, 우리에겐 그것들을 피하거나 그것들의 시기를 달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준비 안 됨', 나는 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태 역시 축복의 일환이라는,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인생 자체가 모름의 연속이고 우린 언제나 모든 순간에 연습 없이 무대에 서는 배우라는 운명에 속해 있기 때문인데, '축복'이란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고 그것은 받는 사람이 '모름'의 상태에 있을 때 진정한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바로 그럴 때 우린 '신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이런 '준비 안 됨'과 '모름'의 상태는 탄생과 죽음, 사건과 사고 같은 어떤 특별한 일들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들에도 적용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신비함을 느끼지 못하거나 축복을 찾아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모든 순간들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모름에도 불구하고 반복으로 인해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즉 '축복'은 언제나 '준비 안 됨'과 '모름'의 상태에서, 신비의 상태에서, 그리고 익숙함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자기 객관화를 통해 낯섦을 체험하며 나와 내 일상을 대상화할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일상이 축복이다. 비록 고르지 않을뿐더러 규칙적이지도 않고 늘 갑작스럽지만, 그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 부디 일상의 소중함을 가능한 많이 가능한 자주 알아챌 수 있기를! 그 숨겨진 축복을 늘 발견하고 누릴 수 있기를!



* 켄트 하루프 읽기

1. 밤에 우리 영혼은: https://rtmodel.tistory.com/1478

2. 축복: https://rtmodel.tistory.com/1671

3. 플레인송: https://rtmodel.tistory.com/1832


* 켄트 하루프 다시 읽기

1. 축복: https://rtmodel.tistory.com/2076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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