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뒷모습 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 2
안규철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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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의 순간들이 글이 될 때


안규철 저, '사물의 뒷모습'을 읽고


'뒷모습'이라는 단어에 끌렸다. 미리 보기로 '책머리에'를 읽었다.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제목이었다. 읽고 나서 생각했다. 아, 이런 단락으로 책을 열다니. 수집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아래에 옮긴다.


|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끊기고 낯선 정적이 흐르는 순간을 독일어나 불어에서는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을 빌리면 이 책의 글들은 내 안에서 천사가 지나간 시간들의 기록이다. | (4페이지 첫 단락 발췌)


이어지는 단락에서 나는 그가 미술을 전공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작업실에서 혼자 침묵 가운데 보내는 시간,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단순한 침묵이 아닌 정적의 시간이 찾아올 때 그는 모든 사물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고 적는다. 그 시간이 곧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고, 그는 그 시간 속에서 세밀한 예술가의 눈으로 모든 것을 관찰하고 성찰하여 그만의 고유한 통찰을 내놓았다. 어떤 분야 전문가의 눈으로 나와 타자와 세상을 바라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통찰을 이끌어내는 글을 나는 사랑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동일한 사물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재해석되며 때론 새로운 의미까지 부여받게 된다. 미처 몰랐던 그 사물의 존재 의미를 고요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조용히 드러내는 것. 나는 이것이 작가가 해야 할 사명이라 느낀다. 이 책의 저자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이런 면에선 명백한 작가였다. 이렇게 다른 관점에서 우러나온 통찰을 발견한 이상 어찌 읽지 않고 지나칠 수 있으랴.


한 꼭지를 이루는 분량이 A4 한 페이지 채 되지 않는 짧은 단상들의 모음이지만, 나는 여백이 풍부한 이 책을 일부러 천천히 일주일에 걸쳐 읽었다. 짧은 글은 보통 농밀하고 내밀한 경우가 많고 나는 그 농축된 진액을 음미하길 좋아한다. 그러려면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인 여유가 필수인데 그 준비가 되어 있다면 비로소 저자와 말 없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물의 뒷모습이라는 표현은 그 사물에 대한 고유한 재해석을 의미할 것이다. 기존의 알고 있던 사물의 해석이 아닌 낯설고도 새로운, 그리고 살아온 인생의 굴곡과 흘러간 시간을 관조하며 거치게 되는 재해석은 그 사물의 뒷모습으로 침투하여 본질을 꿰뚫는 힘이 있다. 그 시선에 따른 재해석을 통찰로 우려내어 글로 담아내는 것.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나도 나만의 고유한 통찰을 글로 담아 보편성을 깊숙이 터치하는 에세이를 쓰고 싶다. 


#현대문학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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