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북꾸 에디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절판
상상력을 넘어서는 모호함
무라카미 하루키 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무려 761 페이지 장편소설을 8시간 정도에 독파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하루키의 필력 때문일 것이다. 역시 하루키는 타고난 이야기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작품들을 수차례 시도만 했을 뿐 이 작품을 포함하여 지금껏 네 편밖에 읽지 않았는데 거기에 내 본심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너무 유명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루키 작품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몽환적이며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되는 '현실과 비현실이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는 모호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그의 작품을 끝내 읽지 않게 되는 나를 설명하기에 더 적절하지 않나 싶다.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단어는 '모호함'이다. '난해함'이 아닌 '모호함'. 이 벽돌책에 대한 나의 감상의 단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네 편밖에 읽지 않은 독자의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르겠지만,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그의 모든 작품 중 가장 (혹은 탑 3 이내) 모호한 작품이지 않나 싶다. 집중해서 읽어냈음에도 여전히 이 작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단순한 문학적 상상력이 허락하는 자유를 거뜬히 넘어서는 모호함이 내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노릇이다. 읽는 내내 지루함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오히려 책 속으로 빨려 들어 술술 읽어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하루키의 매력이지 않나 싶다.
나름대로의 해석을 펼쳐보고 싶은 생각도 잠시 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작가인 하루키 역시 어떤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쓴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필력이 좋은 이야기꾼이 자신의 상상력을 계속해서 따라가며 텍스트로 받아 적은 이 작품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어쩌면 한 편의 거대한 시라는 장르에 속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성으로 냉철하게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흠뻑 빠져들어 느끼는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의 본질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읽은 듯하다. 한 편의 꿈을 꾼 듯한 느낌이 아직 남아 있다. 몽상 속의 몽상, 관념 속의 관념, 꿈속의 꿈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강하다. 만약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이 작품을 분석하려고 시도를 한다면 정신분석학이라는 채널이 적당하지 않을까 한다. 하루키라는 이야기꾼의 오랜 세월에 걸친 집요한 상상력의 시작과 과정과 끝이 이 장편 속에 녹아있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키 자신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마음 (혹은 잠재의식)의 이야기로 이 작품을 읽고 하루키라는 이야기꾼의 정신을 분석하는 시도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작품을 읽고 한 편의 꿈같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으면서도, 그것보다는 창작자인 하루키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본 기분이다.
내가 이 작품을 '모호함'으로 압축하는 중요한 이유는 작품 속에서 사용되는 몇 가지 단어의 의미의 모호성 때문이다. 도시, 벽, 그림자, 시간, 사랑, 믿음,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비현실 등, 익숙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의미와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가항력적인 모호함이 나에겐 이 작품을 읽으며 느낀 지배적인 인상이었다. 또한, 이 단어들을 한 번에 꿰는 어떤 일관된 논리랄까 관점이랄까 하는 것도 모호하여 각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작은 메시지들이 파편적으로 산재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나의 파편적인 이야기를 읽을 땐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그것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종합하려는 시도에서 여러 번 막히고 말았다. 이것은 내가 이 작품을 읽고 어떤 하나의 큰 메시지가 잡히지 않는다고 말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역시 하루키는 하루키구나'라는 생각을 공고히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관념과 몽상으로도 인간의 본성이나 심리를 해부하여 드러내는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렸다. '하루키는 역시 하루키'라는 말속엔 뼈가 있다. 그가 뛰어난 이야기꾼인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결론에 나는 결국 다다르게 되기 때문이다. 하루키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지만, 내겐 뭔가 부족하다. 아쉽다는 마음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내가 하루키를 더 읽을진 잘 모르겠다.
* 하루키 읽기
1. 노르웨이의 숲: https://rtmodel.tistory.com/655
2.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https://rtmodel.tistory.com/820
3. 양을 쫓는 모험: https://rtmodel.tistory.com/1211
4.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https://rtmodel.tistory.com/1913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