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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무라트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평점 :
대중성이 아닌 예술성의 이면
레프 톨스토이 저, '하지 무라트'를 읽고
아바르인 산민 하지 무라트는 캅카스의 이름난 전사이자 나이브였다. 나이브는 이슬람사회 부족장 또는 장수를 뜻한다. 하지 무라트는 실존 인물이었다. 톨스토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꺾어 던져버린 '타타르 풀'이라고도 불리는 엉겅퀴의 굴하지 않는 생명력에 경탄하며 오래전에 들은 하지 무라트에 관한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과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하지 무라트가 꺾인 엉겅퀴처럼 잘린 머리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짧은 기간을 재구성했으며, 1828년생인 톨스토이가 많은 시간 깊은 애정을 들여 1904년 완성했지만 그의 의지에 따라 1912년, 그러니까 그의 사후 2년 뒤에 출간되었다.
작품의 역사적 배경은 러시아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까지 남하정책을 펼치던 시기를 조준한다. 러시아는 캅카스까지 내려왔지만 캅카스에 거주하던 이슬람교도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영토 확장이 난항에 빠지게 된다. 1834년 체첸, 다게스탄 일대의 통치자 이맘이 된 샤밀은 러시아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하지 무라트는 샤밀 휘하 아래 용맹을 떨치던 장수였다.
이후 샤밀의 독재적인 통치에 반발한 하지 무라트는 러시아에 투항하여 샤밀에게 복수를 꾀한다. 샤밀은 하지 무라트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었기에 하지 무라트는 러시아군과 동맹한다고 해도 마음껏 샤밀을 공격할 수 없었다. 하지 무라트는 러시아 측에 자신의 가족과 사로잡은 포로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가족을 구출해 달라고 요구한다. 가족 문제만 해결되면 목숨을 바쳐 러시아군과 함께 샤밀과 그 일당의 항복을 받아낼 작정이었다. 하지 무라트의 말과 행동에는 아무런 흠이 없었다. 어떤 거짓과 불의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는 탁월한 전사였으나 얼굴엔 늘 앳된 선량함이 묻어났다. 잘린 머리에서도 유지되었을 만큼. 그러나 러시아 측에 그것은 통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투항한 하지 무라트를 도와주지 않았다. 시간만 지체할 뿐이라 여겼던 하지 무라트는 차라리 러시아를 다시 탈출하여 샤밀을 직접 공격하고 가족을 구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자기와 함께 하는 정예대원이 소수 있었지만 그 계획은 성취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죽음을 각오한, 어쩌면 무모한, 결단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샤밀과의 전투를 시작도 못하고 최후를 맞이한다. 탈출하는 도중에 러시아군으로부터의 공격으로 그는 그와 함께 한 사람들과 함께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소설은 꿈을 꾼 듯 끝을 맺는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쓰고 대문호로 자리매김했던 톨스토이는 인생 중반에 순수문학에서 벗어나 종교와 윤리에 천착한 작가로 거듭난다. '하지 무라트'는 그의 말년에 완성된 작품이기 때문에 나는 종교와 윤리 선생님의 목소리가 이 작품 안에 듬뿍 담겨있으리라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내가 '하지 무라트'에서 만난 톨스토이는 설교자가 아닌 순수문학가였다. 그러나 뭔가 달랐다. 대중성은 온데간데없고 건조하게 느껴질 정도의 내용만이 가득했다. 역사책을 읽는 듯한 기분을 느낄 정도였다.
왜 톨스토이는 대중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이 작품을 그렇게나 공을 들여 완성하고 사후에 출간되도록 계획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하지 무라트가 아무리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또 그가 아무리 불의에 저항하며 끝까지 명예롭고 정의롭게 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이 작품에 대한, 혹은 하지 무라트에 대한 톨스토이의 각별한 애정을 이해하기엔 부족했다. 특히나 기독교적인 색채를 진하게 띠게 된 그의 인생 말년에 이슬람교도였던 한 사람에 대한 짧은 생을 다룬 이유가 나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찾아보면 기독교 측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설사 찾지 못했다 하더라도 허구를 더 동원하여 기독교 버전의 '하지 무라트'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실존 인물의 프로필을 그대로 사용했는지 톨스토이의 생각이 궁금했다.
톨스토이는 1910년 사망했다. 이 작품은 6년 전인 1904년 완성되었다. 왜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자신의 사후에 출간하길 원했을까? 그 이유가 혹시 위에서 말한 궁금증에 대한 답과 연결되진 않을까? 혹시 기독교적 윤리와 도덕 선생으로 말년을 살았던 톨스토이의 내면에 다른 생각이 꿈틀대고 있진 않았을까? 기독교도가 아닌 이슬람교도의 순박함, 용기, 정의로움, 선량함 등을 책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런 가치들은 한 종교 안에 갇히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진 않았을까? 생전에 출간했다면 생겼을지도 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사후 출간을 원한 게 아니었을까?
톨스토이는 동방정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당한다. 톨스토이는 기독교가 민중을 등한시한다고 여겼고 예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기독교관이 우리가 아는 그것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건 신학적인 내용이므로 여기선 언급을 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가 이 작품 '하지 무라트'를 쓰고 사후 출간을 기획한 이유가 그의 기독교관과 동방정교회의 관점 사이에 생긴 마찰과 충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 무라트'가 1896년 집필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톨스토이가 파문당한 사건이 8년간 이 작품을 집필하는 중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을 다 읽고, 감상문을 이렇게 쓰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대중성을 과감히 저버리고 문학적 예술성의 옷을 입혀 이 작품을 쓴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정말 궁금하다. 이 작품이 가진 예술성의 이면이.
도스토옙스키도 그렇지만 톨스토이 역시 내적인 변화를 크게 거친 작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책장엔 몇 년째 '전쟁과 평화'가 꽂혀 있다. 그리고 최근에 '인생이란 무엇인가'도 책장에서 나를 노려본다. 언제 읽을진 알 수 없지만 '하지 무라트' 덕분에 시기가 앞당겨질 것 같은 예감이다. 그리고 톨스토이도 모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 톨스토이 읽기
1. 고백록: https://rtmodel.tistory.com/824
2. 이반 일리치의 죽음: https://rtmodel.tistory.com/853
3. 안나 카레니나: https://rtmodel.tistory.com/1173
4.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250
5. 부활: https://rtmodel.tistory.com/1336
6. 하지 무라트: https://rtmodel.tistory.com/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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