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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글쓰기와 소설 쓰기, 그리고 작가와 소설가
김연수 저, '소설가의 일'을 읽고
2년 전에 읽었던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가 자연스레 소환되었다. 글쓰기 대가들은, 특히 소설을 써본 작가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까?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전혀 지루하지 않게, 그것도 과하지 않은 유머를 고수하면서까지,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소설을 써나가는 과정이 어떠한 것인지 핵심적인 부분들을 쉽게 풀어주는 두 작가는 닮아도 너무 닮아 보였다. 안정효의 소설을 읽어본 적 없이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를 읽었던 것처럼, 김연수의 소설을 한 권도 읽어본 적 없이 '소설가의 일'을 읽었다. 글쓰기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분들, 읽고 쓰기가 일상이 되어 읽고 쓰지 않으면 허기를 느끼는 사람들 (나는 이들을 감히 '작가'라고 부른다), 특히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겐 그야말로 명강의가 될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주 편안하고 쉬운 문체로 쓰여 있어서 지난 두 주간 거의 매일 실내자전거를 타면서 조금씩 가볍게 읽다가 오늘 이렇게 다 읽고 소감을 남긴다.
김연수 역시 안정효 (혹은 신형철)처럼 단어 사용의 중요성에 대해 짚는다. 글쓰기를 집 짓기에 비유한 안정효와 신형철은 '정확한 글쓰기'를 강조했다. 어떤 문장을 이루는 단어는 이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가정이 바로 정확한 글쓰기의 기본 전제다. 그만큼 정확한 단어의 사용은 글쓰기에 있어서 치명적이라는 말이다. 정확한 단어 사용은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 내고, 정확한 문장들은 정확한 글, 달리 표현하자면 좋은 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김연수는 '정확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진 않지만,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단어, 좀 더 감각적인 단어 사용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소설가를 화가와 비교하면서, 소설가에게 단어란 화가에게는 색채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잠시 책을 덮었다. 뻔하고 진부한 표현을 여전히 나도 모르게 사용하는 내가 보였다. 창피했다.
소설을 쓰는 실제 삶을 설명하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김연수 작가는 하루에 세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런 그 세 시간 동안 최대한 느리게, 거의 쓰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느리게 글을 쓰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그는 글을 얼마큼 많이 썼느냐가 아니라 소설을 생각하며 세 시간을 보냈느냐 아니냐로 글쓰기를 판단한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이런 식으로 매일 소설을 쓰게 되면 가장 느리게 쓸 때, 가장 많은 글을, 그것도 가장 문학적으로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느리게 쓴다는 것은 문장을 공들여 쓰고 플롯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구성한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긴다. 내가 도스토옙스키나 헤세를 통해 느낀 소설의 본질을 그대로 관통하는 문장이라 나는 이 문장을 박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소설이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의미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 오랫동안 숙고하는 서사예술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다."
이 이상으로 이 책을 요약하거나 평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그간 여러 편의 글을 쓰기도 했으니,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이 궁금한 분들은 찾아보시면 어렵지 않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은 내가 밑줄 긋고 작가 노트에 옮긴 문장을 아래에 소개하면서 마칠까 한다.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들, 그중에서도 글쓰기의 여정 중 정체기를 맞이하고 있거나 그랬던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흔한 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너무나 특별한 일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래서 일상의 시간이 감사의 시간으로 느껴진다면, 그래서 그 일들을 문장으로 적기 시작한다면 그게 바로 소설의 미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문장이 된다."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소설 속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추잡한 문장은 주인공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인생을 뻔한 것으로 묘사할 때 나온다. 사랑하지 않으면 뻔해지고, 뻔해지면 추잡해진다."
자, 이제 김연수의 소설을 읽어볼 차례다. 책장에 몇 달째 꽂혀 있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나를 노려 본다.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