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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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가는 불꽃 앞에서


필립 로스 저, ‘에브리맨’을 읽고.

“현실은 소설 같기도 하고 개연성이 없어도 되지만, 소설은 그러면 안 된다. 소설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해 준 말이다. 어렸던 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름대로 인생의 높은 점과 낮은 점을 모두 지나보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 15년 이상 살아도 보고, 한 아이의 아빠로서 10년 이상 아이의 성장과정을 옆에서 모두 지켜보기도 하며, 절망의 늪에 오래 빠져 있는 대신 소망의 가느다란 끈을 잡으려고 여전히 애쓰며 빠듯한 삶을 살아가는, 이제 나이 마흔 중반에 접어든 나는 그 말이 지니는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도 꺼져가는 즈음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숙명을 깨닫게 되는 법이다. 허구임이 분명하지만, 때론 너무 현실 같은 소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한 인간의 인생에 대하여, 아니 모든 사람(에브리맨)의 인생에 대하여 조용히 곱씹어볼 수 있었다.

이렇게 현실적인,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내 인생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 심지어 은밀하게 숨겨진 것들까지도 모두 발려져 공개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때 느껴지는 수치심과 두려움이란 마치 고백성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당혹스러운 심정까지도 들게 만들고, 실제 현실에선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인생의 무게를 더욱 실감하게 만든다. 침묵 이외에는 모든 게 경박스러워 보일 정도의 그 무게. 가끔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훑어보며 애잔한 감정에 빠지곤 할 때 문득 느껴지는 시간의 무게 또한 함께 찾아와 나를 짓누른다. 시간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방향이 세로여서 이전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켜켜이 쌓여가는 것이다. 그 인생과 시간이라는 깊은 우물로부터 물을 길어 마실 때면 언제나 나는 모든 개별적인 사람(에브리맨)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된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하룻밤이라는 아주 짧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녀온 기분이다. 그래서 아주 긴 여행을 하고 온 것만 같은 기분은 물론 여독을 풀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까지 들 정도다 (한 인생을 하룻밤에 여행했으니 오죽하랴). 오후부터 시작해서 새벽이 되어서야 마지막 장에 다다를 수 있었고, 나는 너무 피로한 나머지 곤하게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나 주인공과는 달리 나는 다시 아침의 햇살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영원한 잠들었지만, 나는 그저 매일 본능적으로 그것을 연습하는 것에 그치고는, 오히려 그 연습 때문에 재충전되어 오늘이라는 현재로 다시 돌아와 이렇게 글을 남긴다. 조금은 지혜로워진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이 책은 한 인생의 서사를 조각조각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포함한 보편적인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조용한 자리로 내몬다. 그래서 이 책은 조금이라도 나이가 든 이후에 읽으면 좀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은 새벽이나 아침에 읽기보다는 밤에 읽어야 하는 책이다. 치열했던 삶의 해가 저물어 가는 풍경을 놀랍도록 잘 절제된 목소리로 조곤조곤 들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잠에 들기 전의 이야기를 하루 정도 잠들기 전에 들어 보는 것도 해볼 만한 경험이지 않을까 한다. 어차피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 번 불이 붙었다면 점점 꺼져가는 불씨와 같아서, 두텁기만 하던 초의 높이가 갈수록 낮아져 가고, 등잔 아래를 가득 채우던 기름도 점점 사라져 가는, 한낱 유한한 육체에 갇힌 신세이니까 말이다. 하루쯤 궁극의 끝에 선 사람처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톺아보는 시간은 아마도 살면서 좀처럼 쉽게 가질 수 없는 소중한 성찰의 시간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책의 삼분의 일 쯤을 읽다가 섬광처럼 어떤 느낌이 내 기억의 저장고를 강타했다. 어딘가 흩어져있을 그 조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는 계속해서 그 조각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책을 읽어나갔다. 그 느낌. 그 애틋하면서도 쓰라린 느낌. 묵직하게 가슴 한복판을 치고 지나가, 휑한 심정으로 나를 덩그러니 외딴곳에 떨어뜨리는 그 느낌. 동시에, 지극히 평범해서, 인생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 느낌. 그렇다. 바로 작년 여름,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을 한 달가량 힘들게 읽어내며 매일 같이 느끼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이 책 ‘에브리맨’으로 내게 다가온 필립 로스의 문체는 ‘가벼운 나날’로 만났던 제임스 설터의 문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조금 더 남성적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에브리맨’의 주인공이 한 남자에 맞춰져 있는 반면, ‘가벼운 나날’에서의 주인공은 한 부부, 그중에서도 아내 네드라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다른 문체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설터와 필립 로스의 목소리는 마치 한 사람의 서로 다른 목소리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모두 비슷한 톤을 가지고 있었다. 흥분하여 격양되지도, 절망하여 허무해지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가감 없이, 때론 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할 정도로 절제된 목소리로 일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의 우물은 갈수록 깊어지지만, 인생의 우물은 언젠간 바닥이 난다. 깊어지다가 바닥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이 우리네 인생이지 않을까. 나는 언제쯤 성숙하고 눈이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그 끝을 예감한 지혜로운 사람으로 현재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 끝에 섰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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