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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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닌 함께, 내가 아닌 우리


루리 글, 그림, '긴긴밤'을 읽고


밤의 길이는 영혼의 상태를 반영한다. 짧은 밤은 단잠과 함께 치유와 회복을 의미하는 반면, 긴 밤은 불면에 시달리거나 선잠을 자면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긴긴밤을 통과했다는 것은 생사를 오가는 삶의 극한 순간을 간신히 넘어섰다는 표현이리라. 작품 속 주인공 코뿔소 노든과 펭귄 치쿠는 이러한 긴긴밤을 숱하게 통과한다. 이 작품의 방점은 단순히 고난과 역경을 극복했다는 데에 있지 않다. 그 긴긴밤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는 데에 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말이다. 같은 코뿔소끼리도, 같은 펭귄끼리도 아닌, 코뿔소 한 마리와 버려진 알을 든 펭귄 한 마리가 함께 하는 공동체. 이 작품이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닌 이유다. 


코뿔소와 펭귄의 연대는 강자와 약자의 연대다. 이들은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잠시 연합한 계약 관계가 아니다. 코뿔소는 화염 속에서 무너진 철조망을 넘어 그가 원하는 천국으로 뛰어갈 수 있었다. 바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말이다. 그러나 노든은 그러지 않았다. 버려진 알이 담긴 양동이를 물고 졸졸 따라오는 치쿠를 모른 체하지 않았다. 그는 치쿠의 느린 걸음에 기꺼이 보조를 맞추어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걸어야만 하는 긴긴밤을 선택한다. 그에게 천국인 곳이 아닌 치쿠와 알에게 천국인 바다를 향해서 노든은 혼자가 아닌 함께를 선택한다. 이 동화를 읽으며 내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그리스도인인 나는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천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든도 치쿠도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고아로 성장했다. 노든은 야생 생활에서 인간의 폭력 때문에 아내와 딸을 잃기도 했다. 죽기 직전 구조되어 잠시 살게 된 동물원에서 그는 앙가부라는 친구도 잃었다. 역시 인간의 폭력 때문이었다. 생존자였던 노든은 인간에 대한 복수로 동물원을 떠났다. 그런 상황에서도 노든은 치쿠를 모른 체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든은 조그맣고 약한 치쿠와 치쿠가 들고 품고 다니는 알을 위해 그의 유익을 기꺼이 포기하고 그들을 보호하며 돕기로 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만약 노든이고 치쿠가 곁에 있다면 과연 나는 노든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치쿠가 죽고, 다행히 때맞춰 태어난 아기 펭귄 '나'는 (이 작품의 화자다) 노든의 목숨 건 도움과 희생으로 혼자 마침내 바다에 다다른다. 험한 절벽을 혼자 넘으며 '나'는 '나'를 살게 하고 여기까지 있게 한 많은 이들의 진정성 어린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나'의 천국은 공짜가 아니었다. '나'를 사랑했던 이들의 땀과 눈물과 피의 열매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천국 입성이 이 작품의 화룡정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일지 모른다. 여기서도 연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의 바다 도착이 이루지 못한 목적으로 작품이 끝났다 하더라도 이 작품의 메시지는 약해지지 않는다. 천국에 먼저 간 치쿠와 저 멀리 초원에서 늙어가는 노든의 마음에 안타까움이 더해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작품을 읽고 뻔한 격언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혼자라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라면 멀리 갈 수 있다.' 천국은 빨리 갈 수 있는 곳이기보다는 멀리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 믿는다. 혼자가 아닌 함께, 내가 아닌 우리에게 허락된 곳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 노든이나 치쿠와 같은 존재가 있는가. 나는 혼자인가, 함께인가.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동지가 있는가.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내 것을 기꺼이 내려놓고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걸 내놓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있는가.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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