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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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저녁 사이에 충만하기


욘 포세 저,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고


낯선 작가의 책을 손에 들고 낯선 세상에 처음 발을 내민다. 용기 내어 조심스럽게 첫 발만 디디면 어느새 나는 숙련된 여행자가 되어 이국의 냄새를 맡고 이국의 소리를 듣고 이국의 사람과 사물과 자연을 보면서 모든 시공간을 향유하기 시작한다. 독서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이다.


문학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책 한 권으로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로 대체된다. 옹졸하고 편협했던 나는 조금은 더 너그러운 마음과 조금은 더 깊은 눈을 가진 사람으로 확장된다. 문학은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낮은 자세로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귀 기울이고 멈추고 가만히 살피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간다. 하지만 문학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익숙함을 떠나 낯섦을 맞닥뜨릴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것에 함몰되지 않는 용기, 나아가 그것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 용기, 마침내 그것을 감싸 안는 용기. Embrace. 보이는 것만을 의지하지 않고, 시대의 조류에 생각 없이 편승하지도 않고,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 문학은 나를 성장시킨다. 잘 만난 문학작품 하나는 똑똑한 사람 열 명의 말보다 낫다. 


어젯밤 나는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를 만났다. ‘아침 그리고 저녁‘이라는 짧은 책은 곧장 나를 노르웨이의 어느 외딴섬으로 안내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조용히 내려놓고 기꺼이 순례자가 되어 그곳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는 경이로운 순간을 함께 했다. 한 생명의 탄생. 나는 저자가 제목에서 말하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그다음 문장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뛴다. 인생의 낮 시간은 이리도 짧은 것일까. 낯선 세상에서 아침을 맞이하자마자 곧바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되다니. 인생의 황혼은 금세 불어닥쳤다. 태어난 아기는 어느새 손자까지 본 노인이 되었다. 아니, 노인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 지 몇 시간 채 되지 않은 존재가 되어있다. 곧 막내딸이 그날따라 아버지의 집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걱정 가득한 채 자신의 차가워진 육신을 만나러 올 것이었다. 


작품의 팔 할은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평상시와 같지만 뭔가 다른 낮 시간을 보내는 혼령의 이야기다. 죽은 자가 맞이하는 오전과 오후의 이야기. 하지만 그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단 하루만 허락된 시간이다. 작품 마지막에서 그는 살아있을 때 가장 친했던 친구 (이미 죽은, 그러니까 친구의 혼령)의 인도 하에 저 세상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인생의 아침부터 저녁을 모두 보여주고 주인공은 마침내 사라진다. 그는 덤덤하고, 또 덤덤하다. 마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것처럼.


인생을 하루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에 빗댄다면 나는 몇 시쯤에 있을까. 절반은 넘긴 것 같아 보이니, 정오가 지난 지 한 시간 정도 되지 않을까. 이른 여섯 시에 태어나 아침을 맞이하고, 늦은 여섯 시에 자다가 조용히 저녁을 맞이한 요한네스가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겨우 오후 한 시에 위치한 나는 과연 여섯 시 저녁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게 될까. 내가 마침내 저녁을 맞이하게 될 때 나를 기억해 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요한네스의 아침과 저녁을 함께 하며 순례를 마친 나는 결국 현재의 나로 돌아온다. 그리고 좀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좀 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넉넉히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 욘 포세는 먼 이국땅 한국에서 이런 뜻밖의 열매를 거둔 사실을 알기나 할까.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일 뿐이다. 내가 위치한 낮 시간을 혼령이 아닌 지금의 내 모습으로 충만히 채우고 싶다. 늦은 여섯 시가 되기 전에 저녁을 맞이해도 좋을 만큼.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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