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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평점 :
**#김영웅의책과일상 으로 쓰인 300번째 감상문입니다**
위로와 치유: 애도의 객체가 애도의 주체에게 가져다준 선물
시몬 드 보부아르 저,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고
‘제2의 성’의 저자, 페미니즘 투사, 윤리적 실존주의 철학자 등의 굵직굵직한 타이틀보다 장 폴 사르트르의 연인으로 더 알려졌던 시몬 드 보부아르. 그녀는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던 사르트르에 이어 2등으로 프랑스 철학 교수 자격 시험에 합격하면서 사상 최연소 합격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천재 철학자였다. 사르트르라는 거대한 존재에 가려져 본인의 철학적 정체성마저 사람들에게 잊히기 일쑤였던 그녀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과 다른 실존주의 철학을 발전시킨 위대한 사상가였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존재 자체가 모순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신학적으로까지 갈 필요 없이, 인간은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타자와 어쨌거나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의식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타자의 의식이 지향하는 대상, 곧 객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타자의 존재는 나의 존재와 충돌할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야기한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갈등을 존재론적 숙명으로 규정하는 데 관심을 두었던 반면,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달리 갈등의 존재와 원인에 머물지 않고, 갈등 관계를 넘어서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보부아르의 실존주의는 존재론적 원리에 천착하지 않고 인간의 윤리적 실존을 탐구하는 데까지 나아간 철학이었던 것이다. 이를 ‘실존주의적 윤리’라고 부른다. 이로 인해 보부아르는 자연스럽게 평생 ‘참여 지식인’으로서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철학을 철학적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로 형상화했다. ‘제2의 성’은 실존의 윤리를 개념적으로 정립하려고 시도하는 철학적 글쓰기의 결과물에 해당된다. 반면, 이 작품 ‘아주 편안한 죽음’은 문학적 글쓰기의 열매에 해당되며, 인간의 실존이 지닌 ‘애매성’을 생생하게 담아낸 결과물 중 하나다. 보부아르는 실존의 애매성은 극복되거나 제거될 수 없다고 여겼기에 문학적 글쓰기로써 그러한 실존적 딜레마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재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시적인 사건은 어머니의 죽음이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보부아르에겐 가부장적 폭력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던 존재였다. 어쩌면 이러한 트라우마가 보부아르를 철학에 매진하게 만든 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철학 교수 자격 시험에 합격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했고 비로소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평생 서먹서먹했던 것 같다. 어머니 역시 보부아르의 여동생보다 지식적으로 엘리트에 속했던 보부아르를 어려워했다고 한다. 그런 관계가 평생 이어졌다. 어머니가 욕실에서 넘어지면서 병원에 입원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약 한 달간 어머니 곁에서 시간을 보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보부아르는 죽어가는 어머니와 암묵적인 화해를 하게 된다. 가해자로 여겨왔던 어머니라는 존재와의 화해였기에 더욱 의미 있는 화해였다.
그 화해의 이면에 바로 보부아르의 철학 사상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되겠다. 타자와의 갈등을 넘어서는 과정이 곧 이 작품 속에서는 어머니와의 화해로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공감과 연대와 소통이 있었다. 보부아르는 죽어 가는 어머니로부터 그동안 가해자의 대명사라는 타이틀을 어머니로부터 해체할 수 있었으며, 어머니 안에서 어머니 역시 가부장제 속에서 타자로 살도록 강요받아 온 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자기 자신의 모습까지도 보게 되면서 내적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다. 죽어 가는 어머니 곁에서의 한 달은 비록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보부아르에게는 새로운 삶을 부과한 셈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쓰인 이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고 치유를 입은 사람은 다름 아닌 보부아르 자신 아니었을까. 애도의 객체가 애도의 주체에게 가져다준 의외의 선물이 곧 보부아르가 받은 위로 및 치유이자 그녀가 구현하려고 했던 실존주의적 윤리의 한 단면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 덕분에 실존주의 철학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겼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등의 실존주의 철학자의 사상들을 살펴봐야 할까 보다.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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