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의 여행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빛소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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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함일지도 모르는 긴장 섞인 서먹함

슈테판 츠바이크 저, ‘과거로의 여행’을 읽고

한 남자가 프랑크푸르트 역에서 그가 부인이라 부르는 한 여자를 만나 함께 기차를 타고 하이델베르크를 향한다. 두 사람 사이엔 애틋함일지도 모르는 긴장 섞인 서먹함이 감돈다. 이 묘한 감정은 사랑, 열정, 초조, 혼란, 그리고 자제가 낳은 열매이자 이 작품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유지되는 감정선이다. 약 십 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헤어지기 직전 금지된 사랑을 막 시작했었다. 그러나 남자의 멕시코 장기출장 때문에 둘은 반강제적으로 헤어져야만 했고, 마침 유럽에서 터진 전쟁으로 말미암아 이별의 기간은 더 길어졌었다. 유일하게 둘을 이어주던 편지까지 전쟁 때문에 불가능해지면서 남자의 마음에선 점점 여자가 잊혀갔다. 남자는 멕시코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는다. 세월이 흘러 전쟁이 끝나자 남자의 마음속엔 다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 한동안 잊었던 여자에게 장문의 편지를 쓴다. 2년 뒤 남자는 업무회의차 베를린을 찾게 되고, 여자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의 남편이자 남자의 보스였던 사람은 이미 죽었고 여자는 혼자였다. 둘은 과연 십 년 전 못다 한 사랑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인가. 스포를 하지 않기 위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략하기로 한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남자는 겸연쩍은 마음으로 잡은 호텔방에 간신히 부인과 함께 들어가지만 이내 답답함을 느끼고 탈출하듯 산책을 나와 회상에 잠긴다. 십 년 전 여자가 읽어주던 시가 떠올라 남자의 기억의 저장고를 열어젖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 시는 예언과도 같았다. 다음과 같다. “얼어붙고 눈 내린 옛 공원에서 두 그림자가 과거의 흔적을 찾고 있구나.”

막 불이 붙었지만, 장작개비 하나 태우지 못했던 금지된 사랑이 십 년이라는 기간을 통과하며 어떻게 변모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슈테판 츠바이크는 단지 그 변화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순간순간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감정선에 독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를 원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결과보다는 과정이랄까.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선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도 알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열린 결말을 갖는 작품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미완성이라고 할 수 없는 까닭은, 독자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남자와 여자의 그 애틋하고도 서먹하고 도무지 어찌할 바 모르는 그 묘한 감정선을 함께 타며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미완성 이야기로 완성을 이룬 것이다.  

어찌 보면 삼류 연애소설 같은 냄새가 살짝 풍기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이 작품은 너무 우아하다. 상상할 수 없는 시공간과 상황 속으로 나를 데려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힘. 나는 다시 한번 겸허한 마음으로 슈테판 츠바이크 앞에 서게 된다. 그의 전 작품을 읽을 이유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귀재임이 틀림없다.

*슈테판 츠바이크 읽기

1. 감정의 혼란: https://rtmodel.tistory.com/1608
2. 환상의 밤: https://rtmodel.tistory.com/1615 
3.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https://rtmodel.tistory.com/1625  
4. 과거로의 여행: https://rtmodel.tistory.com/1652

#빛소굴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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