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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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충실한 설명, 여백의 부재

이승우 저, ‘생의 이면’을 읽고

너무 늦게 읽은 탓일까, 아니면 아직도 이 책을 이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일까. 몇몇 지인들에게 인생의 책으로 꼽히곤 하는 이승우의 ‘생의 이면’을 마침내 다 읽었지만, 나는 이렇다 할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기대가 컸던 탓일지도 모른다. 실망이 큰 걸 보면 말이다.

작가의 기독교 세계관이 녹아든 이 작품이 내게는 억지스럽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니,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듯 싶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한국 기독교에 대한 실망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정도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뉘앙스가 반영된 문학이 내겐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만 더 강화시킨 것 같은 기분도 들어 괜히 모래를 씹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 작품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지 못한, 보다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건 작가의 문체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 속에는 내가 실제로 밑줄을 그은 문장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문장들을 비롯해 다른 문장들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표현들로 이뤄져 있다고 느꼈다. 여백의 미학이랄까, ‘표현하지 않음의 표현함’이랄까 하는 신비가 부족한 것 같았다. 말하지 않음으로서 더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그렇게 세세하고 친절하게 다 설명해주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사람 내면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를 정신분석학자처럼 통찰해내어 문장으로, 때론 통쾌함이 느껴질 정도로, 탁월하게 풀어내는 필력은 훌륭했다. 그러나 내가 읽은 이승우는 ’너무 친절했다.’ 마치 생의 ‘이면’을 ‘표면화’해버린 느낌이다. 비록 작품 속에는 여러 장치를 동원해 작가가 직접 드러나지 않게 해놨지만, 내 눈엔 그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독자로서만이 아니라 작가로서도 이 작품을 읽었기 때문인지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사항 때문에 나는 이 작품 속 줄거리 속으로 온전히 빠져들지 못했으며, 그 결과 실컷 무게만 잡았을 뿐 변죽만 울리는 꼴이 된 듯한 허무함과 아쉬움에 속을 달래야 했다. 이 작품을 ‘인생의 책’이라고 꼽거나, 이승우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감상문이 불편하게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만 이 글이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이라는 점을 감안해주길 바랄 뿐이다.  

#문이당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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