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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하려던 말들 - 예수의 비유에 관한 성서학적·철학적 사색
김호경 지음 / 뜰힘 / 2022년 9월
평점 :
비유가 담고 있는 깊고 풍성한 진리의 말씀 맛보기
김호경 저, ‘예수가 하려던 말들’을 읽고
문장은 짧고 간결하며 거침이 없다. 그래서인지 힘이 느껴진다. 읽고 나면 마음도 시원해진다. 권력 혹은 재력의 눈치를 보느라 어중간한 경계에 서 있는 문장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극단적인 주장을 펴지도 않는다. 단호한 문장들 뒤에 묻어나는 저자의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지 않고 끝까지 차분함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호소력이 짙다. 이 책은 자연스레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진리로 둔갑한 비진리의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급진적인 진리를 말하던 그 누군가를. 예수다. 예수일 것이다. 저자의 글은 어딘지 모르게 예수의 말과 닮았다.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들은 많은 비유로 이루어졌다. 일상을 소재로 하지만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그야말로 오묘한 비유다. 전복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지 비유. 읽고 또 읽어도 그때마다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비유. 나는 바로 여기에 예수의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들을 수 있지만 아무나 이해하지 못하는 예수의 말들. 누구에게나 귀가 있지만, 진짜 귀가 있는 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 그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말들. 예수는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걸까. 제목 ‘예수가 하려던 말들’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 김호경은 이 책에서 많은 비유들로 이루어진 예수의 말들이 가진 참 의미를 풀어준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신학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신약학 교수답게 글을 풀어나가는 기술이 예사롭지 않다. 신학이 가지는 필연적인 딱딱함이 문학적 내공으로 인해 부드러워졌다고나 할까. 여느 신학책을 읽을 때와는 달리 가독성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도 쓸 수 있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수준의 묵상이나 성찰의 에세이도 아니다. 열아홉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각 장은 충분히 훌륭한 한 편의 설교로 읽힐 수 있을 정도의 깊이를 가진다. 각 장은 사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비유를 하나씩 다룬다. 독립적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순서대로 읽길 권하고 싶다. 책 전체에 걸친 논리와 이야기의 전개가 여러 장에 걸쳐 통합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학과 신학만이 아니다. 저자는 각 장에서 다루는 예수의 비유에 적합한 철학적인 개념을 하나씩 소개하며 예수가 하려던 급진적인 말들의 의미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풀어준다. 이를테면, 1장에서 저자는 회개를 설명하면서 후설의 현상학에서 말하는 ‘판단중지’를 소개한다. 회개는 여태껏 몸담아온 세상의 당연함에 질문을 던지지 않고는 불가능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회개는 회심의 시작이다. ~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다. 8장에서는 들뢰즈의 ‘리좀’을 설명하면서 하나님 나라는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중앙집권적 체계가 아닌 ‘천 개의 고원’으로 이루어진, 개별적인 모든 존재의 차별 없는 존엄성이 보장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한편, 13장에서는 아렌트가 발견하고 정리한 개념인 ‘악의 평범성’을 소개하며, 저자는 비판적 성찰을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악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통찰해 낸다. 이외에도 저자는 베이컨, 레비나스, 소크라테스, 니체 등의 철학자가 정립한 핵심 개념들을 쉽게 풀어주면서 예수가 비유로 말한 메시지들의 의미를 해석해 준다. 문학과 신학과 철학의 하모니. 수작이다.
사복음서를 지금까지 수십 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말씀들이 있다는 건 언제나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나의 부주의함이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개별적이고 상황적인 차이 때문이라기보다는 예수가 말한 비유들이 가지는, 신비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고유한 힘 때문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책을 읽고 조금은 더 정리된 기분이다. 물론 저자의 해석 역시 진리가 아닌 해석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해석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다음에 사복음서를 읽을 때 다시 들춰보며 내 부족한 신학적 지식과 좁은 생각 때문에 해석에서 제자리 걸음하거나 방황할 때 길잡이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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