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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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수 없는 이유


한강 저,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새와 눈, 밤과 바다, 나무와 뼈, 꿈과 환상, 그리고 불꽃. 죽음과 추위와 고통은 물론 고립과 단절과 공포까지 느껴지는 섬뜩함을 한강만의 지극히 절제된 필체로 가까스로 눌러 담은 소설. 자동적으로 이 작품은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소년이 온다’를 떠올리게 한다. 감히 깊이를 따질 수 없는 그 작품을 통해 우리는 1980년 광주 학살 현장을 똑똑히 기억할 수 있었고, 지울 수 없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볼 수 있었으며, 과거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정의란 무엇인지, 국가와 권력의 힘이란 어떤 것인지,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에 이르기까지 우린 눈을 감고 마음을 담아 깊이 고찰할 수 있었다. 단순히 읽고 공감할 뿐 아니라 간접 체험까지 할 수 있었던 그 작품은 역사 시간에 배웠던 단편적인 교과서 지식, 신문과 뉴스 기사를 통해 접했던 많은 정보들이 이루지 못한 일을 해냈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이러한 의미들을 고려하다 보면, 그녀가 그 작품으로 부커 상을 받았던 경사마저도 작은 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작가 한강은 소설 맨 뒤에 위치한 ‘작가의 말’에 썼다. 둔한 나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나서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작품의 행간이 읽히는 것 같았다. ‘소년이 온다’에서 결핍된 그 무엇, 그것이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그리고 쓰고 나서도 지속적인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하고 나서 악몽도 사라지고 고질적인 편두통 증세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나는 그 치유의 힘이 곧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년이 온다’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사랑으로 매듭짓고 승화시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은 모든 고통과 죽음마저도 극복할 수 있는 빛이자 생명인 것이다. 그리고 그 빛과 생명이 한강 작가를 괴롭히던 망령들까지도 멀리 쫓아버린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읽고 나면 숙연해지는 두 작품 사이에 한강이 겪어냈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자리한다. 그것을 떠올리면 나는 1980년 광주와 1947년부터 제주에서 권력의 횡포와 무자비한 폭력으로 죽어간 영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 학살을,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학살 (제주 4.3 사건)을 고발하고 상기시키는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강의 몸과 마음을 통과한 진액을 통해서. 한강만이 해낼 수 있는 글을 통해서. 어쩌면 한강 작가도 운명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5월 광주’에 이은 ‘제주 4.3’도 그녀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는 운명 같은 예감을.

‘소년이 온다’와 달리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사건 자체와 독자 사이의 거리가 다르다. ‘소년이 온다’는 소년 동호를 통해 우리를 1980년 5월 광주로 곧장 인도한다. 이어서 동호 친구 정대의 혼을 통해 살육당한 주검들이 고깃덩어리처럼 매장되는 비인간적인 현장으로 우릴 안내한다. 5.18이 지난 5년, 10년, 20년 뒤에도 그때의 상처가 작별하지 않고 몸과 영혼에 그대로 남아 있는 실태를 동호와 함께 도청에서 도우미로 일했던 은숙, 진수, 선주의 눈과 입을 통해 우리에게 나지막이 들려준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살아남아 자기의 손으로 직접 아들을 묻은 동호 엄마의 사투리 독백은 5장까지 간신히 참아왔던 모든 독자들의 마음을 후벼 파고 무너지게 만든다. 그만큼 ‘소년이 온다’는 독자를 현장으로 불러들여 사건과 독자 사이의 거리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경하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자의 목소리로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기술된다. 대학 때 만난, 제주가 고향인 친구 인선의 목소리를 통해 경하는 제주 4.3 사건 현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은 얼마 전 치매로 생을 마감했던 인선의 어머니다. 인선의 어머니는 1947년 제주 4.3 사건이 발발할 때 십 대의 나이로 현장에 있었다. 가족 대부분이 학살당한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독자들은 제주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경하, 인선, 인선의 어머니, 그리고 인선의 어머니가 수집했던 옛 자료들을 통해 여러 단계를 거쳐가며 듣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사건과 독자 사이의 거리가 먼 편이다.

이렇게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두 학살의 역사를 기술한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4.3 제주’가 ‘5월 광주’보다 훨씬 더 이전의 일이라는 이유도 한몫했을 테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는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사랑’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작품 속에서 그 ‘사랑’은 주로 인선의 어머니를 통해 가시화된다. 어릴 적 인선은 어머니가 혐오스러워 가출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건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제대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 가끔 제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들려준 무수한 이야기들을 인선은 모두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몰래 모아둔 여러 자료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대대적인 자료 수집을 실행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던 인선은 그것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지만 전체의 일부만을 담았을 뿐이다. 사건의 전말을 담기에는 영화라는 도구가 너무 가벼웠던 게 아니었을까. 오직 유족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소수의 사람들만이 관심을 가질 뿐 그 누구도 과거 제주에서 있었던 그 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법. 당시 권력이 묻어두었던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사건은 5월 광주의 전신 이기라도 하듯 실로 지옥과도 같은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학살당한 수만 명의 사람들. 수만 구의 뼈들. 그 혼들까지.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으로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 끔찍했던 역사의 한 복판에서 인선의 어머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외삼촌의 생존 여부, 차후엔 그의 유골의 위치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끝내 그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서 인선의 어머니는 정신줄을 놓게 되어 치매에 걸리게 된다. 폭력과 횡포,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인선의 어머니. 신형철의 추천사는 옳다. 그녀의 삶은 곧 고통을 넘어 죽음이라는 최후의 적이 존재함에도 결코 작별하지 않고 작별할 수 없고, 대신 연약하지만 영원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그러고 보니 ‘소년이 온다’ 6장을 이루며 독자들의 마음을 무너지게 했던 동호 어머니의 독백 역시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둘은 다르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동호 어머니의 독백은 독립적인 한 사건과 그 순간이 가져온 상실과 슬픔으로 읽는 게 더 적합할 것 같기 때문이다. 대신 인선 어머니의 이야기는 삶 전체로 대변된다. 수십 년 그녀가 칠순이 넘어 치매에 걸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작별하지 않고 고군분투했던 살아있는 삶. 우리는 그 삶을 사랑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작가 한강 역시 그걸 바라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린 그 사랑으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대표적으로 세월호 사건 역시 우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360?category=751509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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