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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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


미야모토 테루 저, ‘환상의 빛’을 읽고.

강렬한 잔상에 의지하여 급하게 써 내려가는 글도 나름대로의 매력을 지니지만, 그 거친 글을 묵히고 묵히면서 실 같은 잔상만이 남을 때까지 계속해서 수정을 가하며 만들어지는 글은 한층 더 깊이를 가지는 법이다. 원석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발견된 뒤 거치는 숱한 정제 과정을 초고에서 퇴고로 진행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면, 그 과정을 거쳐 탄생한 글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독자의 마음을 보다 깊숙이, 정확하게, 그리고 단번에 찌르기 때문이다. 살면서 그런 글들을 만난다는 건 값지고 멋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좀처럼 당해내지 못하는 글은 한결같이 놀라운 절제력을 가진 글들이다. 절제의 미학이랄까. 급하게 찾아왔던 예기치 않은 기쁨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한꺼번에 몰아닥친 슬픔도 모두 정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거품이 빠지기 마련이다. 인간이란 기억하는 존재이고 또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의지하는 존재이기에, 거품이 빠지는 지난한 과정은 다분히 견디는 시간으로 이뤄진다. 다행히 그 시간의 끝에 어떤 목적지가 있는 경우라면, 견뎌온 모든 시간을 기다림이라는 단어로 함축하여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견딤이 우리를 항상 목적지에 데려다 주지는 않는 법. 오래 참고 견디다가 그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우리 주위에는 엄연히 산재한다. 이는 우리가 언제나 인고의 쓴 시간이 아름답고 단 열매를 맺을 거라고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생 전체를 잠식시키는 슬픔은, 그리고 별안간 찾아와 우리가 그동안 힘들게 견뎌온 시간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슬픔은 바로 그 견딤의 과정을 이루고 있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흩어진 아주 작은 기억의 조각들, 그 기억과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어떤 뜻밖의 순간들을 만날 때 우리를 불청객처럼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신형철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1부 ‘해석되지 않는 뒷모습’이라는 꼭지에서 다룬 작품이다. 100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중편 소설이지만,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침투하여 꽈리를 튼 지독한 슬픔을 이야기한다. 결혼하고 아기가 태어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을 무렵, 작품 속 화자의 남편은 버럭 자살로 생을 마감해 버린다. 그렇다. 이 책은 남겨진 한 여자의 슬픈 독백이다. 

놀랍도록 절제된 화자의 목소리는 이미 죽은 남편에게 쏟아내는 독백 형태로 그려져 있다. 그녀는 이런 독백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해왔는지 모른다. 다소곳한 말투, 깊은 슬픔의 바다에서 이미 어떤 선을 넘어서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 폭풍 같은 감정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은 상실과 슬픔의 잔물결이 영원한 삶의 친구가 되어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 힘을 뺄 대로 뺀 작가의 글은 문장 하나하나가 독자에게 의미 있는 생채기를 내는 듯하다. 마치 보슬비가 어느새 옷을 다 적시듯. 나는 평범하고 단조로워 보이는 문장들을 읽어나가다가도 문득 어떤 한 문장에 다다를 때면 무너졌다. 그러면 책을 잠시 덮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읽어나가곤 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새로운 남편과 그럭저럭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으면서, 죽어버린 전 남편에게 이렇게 열심히 말을 걸고 있는 자신을 참 불쾌한 여자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습관 같은 것이 되어버리면 어느새 죽은 당신에게가 아니라.. 중략... 당신은 왜 그날 밤 치일 줄 뻔히 알면서 한신 전차 철로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을까요…”

“저는 와지마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바깥에 시선을 둔 채 죽어버린 당신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만, 그 무렵에는 저 혼자가 되면 무의식적으로 당신에게 말을 거는 버릇이 생겨버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을 거는 당신은, 선로를 걸어가는 뒷모습의 당신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첫아이를 낳은 지 세 달이 되었을 때 저는 이유도 알 수 없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당신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 후 허물처럼 살아왔습니다. 당신은 왜 자살을 했을까, 그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

“그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봐 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뭘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었구나,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당신은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이야…”

신형철이 정확하게 짚은 대로, 작가가 이 작품에서 은연중 힘을 주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는 ‘뒷모습’이다. 그녀에게 계속해서 떠오르는 모습도 철로 위를 걸어가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이다. 해석되지 않는 뒷모습. 그녀는 죽은 남편의 뒷모습을, 보지도 못했던 그 뒷모습을 떠올리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그 뒷모습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녀는 죽은 남편과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가난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채 그들은 결혼까지 했고 아이도 낳았다. 남편이 자살했던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었다. 심지어 남편은 그날 밤 일을 마치고 집 근처까지 와서 카페에 들러 커피까지 마셨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된다. 그런데 다시 철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왜, 도대체 왜 남편은 자살을 감행했던 것일까. 

혹시 그녀는 답이 없는 이 질문의 연쇄 속에서 남편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건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올해 여름 일주일 차이로 있는 나와 아내의 생일을 지나면서 혼자 이런 말을 떠올리며 블로그에 끄적거린 적이 있다. 

‘서로의 앞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고, 서로의 뒷모습에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읽어낸다.’ 

부부는 보통 언제나 함께 있어, 서로가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할 경우가 많지만, 어느 날 문득 배우자의 얼굴에서 그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러면 마음이 잠시 무너지면서 한없이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사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등을 돌리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 나는 종종 나의 부족함을 느낀다. ‘아, 이것밖에 해줄 수 없었던가. 더 잘해줄 수 없었던가’ 하며 나는 나의 미련함과 옹졸함과 가소로움 때문에 이내 부끄러워진다. 치장되지 않은 나의 민낯은 아내의 뒷모습에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짐하곤 했다. ‘좀 더 사랑하며 살아야지! 소중함을 알아채며 살아야지.’ 나는 아내의 뒷모습에서 아내를 본 게 아니라 나를 보았던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고 부족한 내 모습을… 하물며 자살로 멋대로 죽어버린 남편의 뒷모습이 살아남은 그녀에게는 얼마나 많은 말을 걸어왔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지면 나는 할 말을 잃고 만다. 문득 두려워지기도 한다. 부부 중 누군가는 먼저 죽는 법인데, 나의 뒷모습이나 아내의 뒷모습이 언제나 남을 한 사람에게 슬픈 형상으로 남게 될까 봐. 그 뒷모습 때문에 이 작품 속의 주인공처럼 슬픔에 잠겨 살까 봐.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들에 지금은 저항하고 싶다. 아직은 사랑하는 사람이 뒷모습을 보이며 바라보았을지도 모를 환상의 빛을 떠올리고 싶진 않다. 대신 나에게 남은 인생을 좀 더 사랑하며 살기로 다시 다짐한다. 아내가 안고 싶다.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169?category=751509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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